겸재 정선이 정양사에서 바라본 금강산 일반이천봉을 그린 작품 정양사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겸재 정선이 정양사에서 바라본 금강산 일반이천봉을 그린 작품 정양사도(제공: 국립중앙박물관)

 

국립중앙박물관, 실경산수화 특별전

‘정양사도’ 등 16건 51점 교체전시

[천지일보=이지수 기자] “우리나라의 산수가 천하에 이름이 높은데 금강산의 기이한 형상은 가장 으뜸이다. 또 불경에는 담무갈보살이 이 산에 머물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데 세상 사람들은 인간세계의 정토(淨土, 불교 이상향)라고 일컫는다” (고려 후기 학자 이곡의 ‘가정집’ 中)

화엄경 속 담무갈보살(금강산에 머무는 보살)이 1만 2천 보살을 이끌고 나타났다는 금강산. 이렇듯 예부터 이 산을 사람들은 신성한 영역으로 여겨왔다. 아마도 마치 시간이 멈춘 듯 아름답고 신비한 비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 비경에 매료된 조선 시대 화가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 절로 붓을 들고 그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한 폭에 그림으로 담아내고자 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화가가 겸재(謙齋) 정선(鄭歚, 1676~1759)이다. 시원하게 펼쳐진 부채 위에 왼쪽으로는 아담한 전각들이 나타나고 전각 위로 둥긋한 산들이 솟아있다.

오른쪽 뾰족한 암봉들은 무수히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올라 찌를 듯이 보인다. 그 위에 ‘정양사 겸노(正陽寺 謙老)’라고 적힌 글씨는 노년기의 정선이 그린 ‘정양사도’임을 알려준다. ‘정양사도’는 금강산 내에 있는 유명한 절인 정양사에서 본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그린 작품이다. 정양사는 금강산의 주봉인 비로봉으로부터 내려오는 금강산의 정맥에 위치한 절이다. 정선은 능숙한 솜씨로 정양사가 있는 토산의 부드러운 모습을 둥긋한 산의 형태로 잡아내고 수풀이 울창한 모습은 붓을 뉘어 그린 미점(米點)으로 빽빽하게 찍어 표현했다.

암봉이 서려 있는 오른쪽 경치는 강한 필세를 가진 수직선으로 그려 냈으며 중향성과 혈망봉, 소향로봉, 대향로봉, 비로봉 등 봉우리의 모습도 날카롭고 각지게 표현해 왼쪽의 토산과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러한 표현은 금강산을 음양오행이 무궁하게 전개되는 신비한 영산으로 본 정선의 해석이 반영된 화풍이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부채 위에 그렸다는 점이다. 굴곡지고 휘어지는 화면 위에 그려야 한다는 점은 때로는 극복해야 하는 어려움을 주지만 의도하지 않은 의외의 탁월한 효과를 낳는 장점이 된다.

겸재 정선의 ‘정양사도’에서 장대하게 펼쳐지는 금강산의 봉우리들을 가로로 아치를 이뤄 휘어지는 선면 위에 그려 넣음으로써 금강산은 부채의 윤곽선을 따라 아치 형태로 펼쳐져 열린 구도이면서도 정돈된 느낌을 준다. 정선은 누구보다 금강산을 사랑했다고 전해진다.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도 나타나는데 현재로서 가장 금강산을 많이 그린 화가로 손꼽힌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지난 7월 23일부터 시작해 오는 9월 22일까지 ‘우리 강산을 그리다: 화가의 시선, 조선 시대 실경산수화’라는 주제로 특별전을 진행한다. 절반이 지난 이달 23일부터는 전시품 중 정선의 ‘정양사도’를 포함한 총 16건 51점에 이르는 작품을 교체 전시했다. 산과 강 등의 자연경관을 소재로 그린 동양화의 한 종류인 산수화. 그중에서도 ‘실경산수화’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화가가 직접 경험한 경치를 그려 그가 느꼈던 감흥을 고스란히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

이번 전시에서는 우리나라 실경산수화의 흐름, 화가가 경험한 실제 경치가 어떻게 그림으로 옮겨졌는지 화가들의 창작과정을 따라가며 화가의 시선과 해석을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됐다. 화가의 치열한 구상과 예술적 실험 끝에 완성된 실경산수화의 바탕에는 우리 땅에 대한 애정이 깔려있다.

진경산수화로 잘 알려진 겸재 정선이나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뿐 아니라 고려시대 화가 노영(盧英), 조선 시대 설탄(雪灘) 한시각(韓時覺), 진재(眞宰) 김윤겸(金允謙), 유당(蕤堂) 김하종(金夏鍾), 학산(鶴山) 윤제홍(尹濟弘)은 따뜻하게 우리 강산을 바라보고 자기 방식으로 실경을 표현했다. 특히 이번 전시에는 금강산을 주제로 한 작품이 다수 포함됐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실경산수화 전통은 이전부터 있었고 겸재와 단원 때 꽃을 피웠다”며 “새롭게 공개되는 작품 중 눈여겨 볼 것은 김응환의 파격적 금강산 60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원과 김응환은 같은 금강산을 보고 다르게 표현했다”며 “이번 전시 의미 중의 하나가 김응환의 우리 강산을 보는 눈, 우리 강산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미감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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