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창간10주년 기획] 직지부터 BTS까지 “문화강국은 내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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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방탄소년단 단체 사진(제공: 사랑하는 그대여) ⓒ천지일보 2019.9.2
그룹 방탄소년단 단체 사진(제공: 사랑하는 그대여) ⓒ천지일보 2019.9.2

최초 금속 활자부터 한지까지
수준 높은 문화 가졌던 민족
86아시아, 88올림픽 등으로
‘아침의 나라’ 韓, 세계 관심↑
BTS, 드라마 등 한류 문화
전통을 알리는 또 하나의 계기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세계 속으로 뻗어나가는 한국. ‘방탄소년단’ ‘한국드라마’ ‘축구열풍’ 등은 이를 증명하고 있었다. 세상은 한국의 다양한 문화에 점점 더 관심이 커지고 있다. ‘조용한 아침의 나라’가 그야말로 반전 매력을 뽐내는 때이다.

그런데 역사를 더 자세히 들어다보면, 작은 땅덩이의 문화가 주변 국가보다 더욱 우수한 사례가 많았다. 한민족의 우수한 DNA를 인정받는 순간이었다. 그렇다면 언제부터 세계인은 코리아 문화에 감탄하기 시작한 걸까. 역사 속에 담긴 문화 우수성과 세계에 빛이 되는 코리아 문화를 들여다봤다.

충청북도 흥덕사지. 이곳은 직지가 만들어진 곳이다. ⓒ천지일보DB
충청북도 흥덕사지. 이곳은 직지가 만들어진 곳이다. ⓒ천지일보DB

◆세계최초 금속활자(직지심체요절)

서양에서는 구텐베르크가 서양 최초로 금속 활자를 발명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수십 년 일찍 발명한 금속활자가 있다. ‘직지심체요절’이다. 1377년 충청북도에 있는 흥덕사에서 발행한 금속활자는 상·하 2권을 찍어냈다. 중심 주제인 ‘직지심체(直指心體)’는 사람이 마음을 바르게 가졌을 때 그 심성이 곧 부처의 마음임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간행 후 500여 년간은 행적을 알 수 없었다. 그러다 19세기 말 주한 프랑스 공사 콜랭드 플랑시에 의해서 직지의 존재가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본은 하권만 전해지고 있고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돼 있다. 이 금속활자는 2001년 승정원일기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한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1000년의 한지 문화

문자의 발달은 종이 발달에도 영향을 줬다. 오랫동안 변하지 않고 보존이 쉬운 질 좋은 종이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중국에서 종이 제작 기술을 들여왔다. 하지만 우리 천연의 재료인 잿물과 닥풀 등을 사용하는 독창적인 기술을 개발했고,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중성지인 한지가 탄생됐다.

당시 중국은 고려지(高麗紙)의 우수성을 예찬하는 기록을 많이 남겼다. 중국 기록인 ‘계림지(鷄林志)’ ‘고려도경(高麗圖經)’ ‘고반여사(考槃餘事)’ 등을 살펴보면 알 수 있다.

이 중 ‘고반여사’에는 “고려지는 누에고치로 만들어서 비단 같이 희고 질기며, 글을 쓰면 먹이 잘 먹어 좋은데, 이것은 중국에 없는 것으로 진품이다”라고 기술했다. 즉, 종이는 중국 한 나라의 채륜이 발명했으나 새로운 기술의 적용으로 명품 종이를 개발한 것은 우리 민족임을 알 수 있다.

팔만대장경 (출처: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9.2
팔만대장경 (출처: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9.2

◆조선 500년 기록문화의 우수함

우리나라의 기록문화도 빠질 수 없다. 500년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왕조실록’이 대표적이다. 조선왕조실록은 공정성과 객관성을 지켜내기 위해 매우 엄격한 규율에 따라 작성됐다. 사관은 늘 임금을 따라 다녔다.

왕의 실록은 반드시 해당 왕의 사후에 작성됐고, 어떤 경우에도 실록을 열람할 수 없었다. 불교 경전을 종합적으로 모은 ‘팔만대장경’도 있다. 몽골이 고려를 침입하자 부처의 힘으로 몽골군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 팔만대장경은 16년간의 대역사 끝에 간행됐다.

◆언제부터 한국 문화 알려졌나

언제부터 세계인은 한국에 주목했을까. 한국 역사의 큰 획을 그은 ‘86서울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이 대표적이다.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세계인은 한국을 알아가기 시작했고 몇몇의 전통문화가 소개되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문화의 세계화가 논의된 것은 1990년 문화부 출범과 함께 수립된 ‘문화발전 10개년계획’ 때문이었다.

이는 한국문화의 세계화를 정책적 차원에서 천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1992년 이후 세계화 확산과 서비스 개방이 더욱 가속화됐다. 1990년대 후반부터 중국을 중심으로 일본과 대만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한류(韓流)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대교(1987년), 서울반세기종합전 ‘88 올림픽과 서울’.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잠실종합운동장과 올림픽대교(1987년), 서울반세기종합전 ‘88 올림픽과 서울’. (출처: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캡처)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까지는 한글과 한식, 한복 등 6대 분야를 육성하고자 계획한 ‘한(韓)스타일’ 정책이 핵심이 됐다. 이는 전통문화 콘텐츠의 세계화 전략이다. 이후 정부의 지속적인 정책이 이어지면서 한국의 문화는 더욱 세계에 홍보됐다.

그런가 하면 지구 반대편 나라의 문화까지 알게 해준 ‘글로벌’도 큰 영향을 줬다. 디지털기술과 다양한 미디어, 인터넷이 결합한 ‘유비쿼터스’의 발달도 한몫했다. ‘유튜브’를 통해 한국 가수 동영상도 확산됐다. 2011년 자료에 따르면, ‘한국 가수 동영상’ 총 조회수는 7억 9357만여 건이나 됐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13개국 조사 결과 총 94개국에 1843개(2018년 12월 기준)의 한류 동호회가 결성돼 있었다. 전체 회원수는 총 8919만명에 달했다. 덕분에 피겨스케이팅선수 김연아, 방탄소년단, 싸이, 한국 축구 등을 모르는 국가가 없을 정도가 됐다. 우리 고유의 문화에 이제는 현대 문화가 세계 속에 꽃피운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 의미와 가치는 오늘날 더욱 빛을 발하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가운데 문화를 사랑했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굳건히 지키고 이어가는 것이 이 시대의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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