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눔의 행복 박해식 회장 ⓒ천지일보(뉴스천지)

“봉사활동이 살려준 목숨인데 계속 이어가야죠”

팔도 먹거리 장터 열어 전국에 무료 급식소 세울 계획
[천지일보=김예슬 기자] “단순히 내가 가진 것을 이웃에게 나누기만 하자는 게 아닙니다. 제대로 된 봉사정신을 배우려면 십시일반(十匙一飯)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는 한국에 와야 한다는 것을 세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박해식 나눔의 행복 회장이 30여 년간 봉사활동을 해오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다면 나눔, 즉 봉사는 ‘지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열사람이 한 술씩 밥을 보태면 한사람이 먹을 분량의 밥이 된다는 뜻인 십시일반. 한사람의 힘은 쉽게 고갈돼도 많은 사람이 조금씩 함께 나눈 티끌 같은 힘은 태산처럼 커져 이웃에게 전달된다.

재정적 여유와 상관없이 누구나 실천할 수 있는 한국의 문화이자 정신인 십시일반을 박 대표가 강조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러한 나눔의 정신을 강조해서인지 아직 사단법인으로 승인되지 않은 단체임에도 무려 3만 명이라는 적지 않은 회원이 박 대표를 도와 크고 작게 각자의 위치에서 봉사하고 있다.

때론 물질로, 시간과 재능으로, 칭찬과 배려로, 밝은 미소로….

회원 중에는 한 때 100억 가까운 재산을 잃고 나서 거동이 불편해진 박 대표가 의지와 끈기 하나로 몇 년간 산을 오른 모습을 지켜본 사람도 있다. 일반인과 다른 자신의 모습에 소외감을 느끼다가 박 대표의 설득으로 자신감을 회복한 지체장애인도 여럿 있다.

이렇게 하나 둘 인연을 맺은 회원들은 박 대표에게 둘도 없는 소중한 가족이 됐다. 이제 이 회원들과 박 대표는 더 큰 나눔의 행사를 앞두고 있다.

바로 ‘전국노래자랑’처럼 전국을 순회하면서 여는 ‘팔도 먹거리 장터’다. 장터를 통한 수익은 그 지역에 무료 급식소를 만들어 독거노인, 소외계층 어린이 및 그 가족을 위해 사용할 생각이다.

하지만 누구나 와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무료 급식소를 열고자 함이 아니다. 장터가 열리는 지역 내 구청을 방문해 여러 가지 사정으로 기관에서 지원받지 못하는 아이들과 노인 및 그 가족의 명단을 받아 무료 급식소 이용카드를 만들어줄 계획이다.

박 대표는 수십 년간 봉사활동을 통해 이 사람 저 사람 접하면서 이 같은 꿈을 마음에 키워왔다.

그가 만나 인연을 맺은 사람들 중에는 가족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한 지체장애인은 자신에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건강을 되찾는 것 보다 여태까지 값없이 돌봐준 가족에게 좋은 선물 하나를 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또 한 초등학생은 박 대표와 얘기를 나누던 중에 자신은 학교에서 매일 밥을 먹기 때문에 주말 하루는 안 먹어도 상관없지만 집에 계신 할머니는 좋은 밥과 반찬을 못 드시기 때문에 죄송스럽다고 말하기도 했다.

소식조차 없는 가족이나 무용지물인 재산 때문에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도 봤다. 최근에는 무료급식소가 점점 문을 닫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 박 대표는 마음이 무겁다. 매번 밥을 제공하던 곳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접하지 못해 평소처럼 밥 먹으러 왔다가 쓸쓸히 돌아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회원 절차는 신중하되 한번 회원이 되면 이들이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예를 들어 무료 급식소는 가족과 언제든지 떳떳하게 밥 먹을 수 있는 공간으로, 인증마크가 찍힌 미용실에서는 무료로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도록, 가게에서는 생필품을 무료로 구입할 수 있게 할 계획이다.

장터를 열려면 많은 사람이 모여야 한다. 관심을 끌만한 소재도 필요하다. 박 대표에 따르면 주변에서 도와주겠다는 분이 많아 단체가 사단법인으로 승인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장터에서 장사할 상인들도 꾸려진 상태다. ‘전국노래자랑’ 국민 MC로 잘 알려진 송해 등 연예인으로 구성된 ‘나눔의 사랑회’도 힘을 보태기로 했다.

박 대표는 “송해 선생님은 장터를 열 수 있게끔 상인을 모으는 데 큰 도움을 주셨다”면서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는 장터를 만들어 한 달에 2번씩 전국을 순회하며 열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터가 잘 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서 멈출 수 없다고 박 대표는 말한다. 마을의 기능을 갖춘 의료 마을을 만드는 것이 박 대표의 최종 목표이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이 모든 계획이 좋은 취지로 진행되다보니 조금씩 길이 열리고 있다”면서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지금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었던 것은 해야 할 ‘봉사’가 남아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대표는 건강이 나쁘고 삶이 어려울 때마다 ‘봉사’라는 두 글자가 생각났다고 한다. 특히 그가 봉사라는 것을 본격적으로 생각한 것은 고등학생 때이다. 17세 때 박 대표는 심장판막증이라는 판명과 함께 3개월밖에 살 수 없다는 사형선고를 받았다.

박 대표는 “처음에는 웃음 밖에 안 나왔지만 괴로워서 몇 번이고 자살을 시도했다”면서 “그렇게 세월을 보내다 시장에서 우연히 다리가 없어도 열심히 살고 있는 장애인 한 분을 보고 부정적이었던 생각이 전환됐다”고 말했다.

이 장애인은 박 대표에게 자신이 작게나마 돕고 있는 고아원 한 곳을 소개해줬다. 아무생각 없이 고아원을 방문한 박 대표는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백혈병 등에 걸려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는데 너무 마음이 아파 남은 기간 이 곳에서 봉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부터 아픈 자신을 잊은 채 열심히 아이들을 돌봤다. 박 대표는 “내가 만약 살게 된다면 이같이 어려운 형편에 놓여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다닐 수 있는 병원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의료 마을을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런 박 대표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생겼다. 2개월이 지나고 6개월이 지나도 아프거나 숨 쉬는 데 이상을 못 느끼고 여전히 살아있는 자신을 발견한 것이다.

박 대표는 “의사조차도 내가 어떤 것을 먹고 생활했는지 물어볼 정도로 심장이 회복됐다”면서 “당시 봉사한 것 밖에 없다고 답했던 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봉사를 통해 삶의 의미를 찾고 건강도 회복한 박 대표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도우며 살 계획이다.

박 대표는 마지막으로 “30여 년간 생각하고 계획한 일들이 이제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결실을 이루는 시기에 도달했다”면서 “앞으로 나와 이 봉사단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서로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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