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박춘태 세계한국어교육자협회(WATK) 수석부회장ㆍ한글세계화운동총본부 뉴질랜드 본부장
 

마운트 쿡 가는 길목에 위치

호수 면적 83㎢ 바다처럼 넓어
 

알프스 빙하 녹아 내려와 형성

밑바닥 다 보일 정도로 깨끗

뉴질랜드 최고봉인 3754m의 마운트 쿡(Mt. Cook)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뉴질랜드 최고봉인 3754m의 마운트 쿡(Mt. Cook)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뉴질랜드 남섬에 있는 정원의 도시, 크라이스트처치(Christchurch)시에서 서쪽 방향으로 자동차로 3시간가량 달리면 눈 덮인 산봉우리들이 펼쳐진다. 뉴질랜드 최고봉인 3754m의 마운트 쿡(Mt. Cook)과 450㎞에 이르는 서던 알프스(Southern Alps) 산맥이다.

마운트 쿡은 마오리어로는 아오라키(Aoraki)산으로도 불리며 만년설의 산으로서 여름에도 눈이 녹지 않는다. 자동차로 크라이스트처치시에서 마운트 쿡으로 가는 과정은 대체로 평지로 이어진 듯하나, 실제로는 상당한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다. 해발 700m의 고지대에 이르면 거대한 호수가 나타난다. 테카포 호수(Lake Tekapo)다. 이 호수는 남섬의 맥킨지 분지(Mackenzie Basin)와 우뚝 솟은 마운트 쿡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 잡고 있다. 테카포 호수는 맥킨지 분지에서 남북으로 뻗어있는데, 여기서 마운트 쿡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 호수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맥킨지 분지는 뉴질랜드에 있는 분지 중에서 가장 큰 타원형 분지이다. 이 분지의 명칭을 ‘맥킨지’로 정하게 된 것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이민자였던 ‘제임스 맥켄지(James Mckenzie)’라는 사람 이름에서 유래됐다. 그는 이민자로서 대단한 양치기이자 양 도둑이었다. 많은 양을 도둑질한 그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곳으로 도망 와서 양을 방목하는 일을 했다.
 

물이 맑아 밑바닥이 보이는 테카포 호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물이 맑아 밑바닥이 보이는 테카포 호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테카포 호수는 면적이 무려 83㎢에 달한다. 광활하게 탁 트여 있어 호수라기보다는 차라리 바다를 연상할 정도다. 보통 호수의 형성은 거대한 화산 폭발로 이뤄진 경우가 많다. 그러나 테카포 호수는 좀 색다르다. 빙하수가 모여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 호수의 발원지는 어디일까. 바로 근처에 있는 마운트 쿡을 비롯한 서던 알프스 산맥이다. 마운트 쿡에서 빙하가 녹아 내려오면서 강을 형성했는데, 그 강이 ‘고들리(Godley)’라는 강이다. 이 강으로 내려온 빙하의 퇴적물이 계곡에 모이게 됐고 그 계곡이 점점 커져 바다 같은 호수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형성된 호수의 빛깔이 특이하다. 맑은 청록색인데, 파란색에다가 하얀색을 섞어 놓은 부분도 있다. 이렇듯 테카포는 아름다운 풍광을 갖춘 호수여서 매료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 호수 가까이 가서 물을 보면 워낙 깨끗해 밑바닥이 다 보일 정도다. 오염이란 찾아볼 수가 없다. 마운트 쿡의 아름다운 설경을 보면서 테카포 호수에서 신선한 바람을 쐬고 들이키는 기분을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가.

호수의 빛깔이 유난히 청록색을 띠는 이유 또한 마운트 쿡과 연관이 있다. 마운트 쿡이 만년설의 산이기는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강한 햇빛에 노출되다 보면 일부는 녹을 수밖에 없다. 산 위의 녹은 빙하가 테카포 호수로 내려오는 과정에서 수많은 암석들과 부딪치게 된다. 하강 경로와 속도에 따라 때로는 강하게, 때로는 약하게 부딪침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빙하와 부딪친 암석 표면이 조금씩 깎이게 된다. 호수의 색깔이 청록색을 띠는 것은 바로 이때 깎인 암석의 분말, 석회 물질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결국 물에 혼합된 석회분말이 빛을 굴절시켜 청록색을 띠게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테카포 호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테카포 호수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테카포 호수는 잔잔하기에 평화로울 뿐만 아니라 투명하며 아름답다. 거기서 낚시를 즐기는 것은 한가로움을 즐기는 데 안성맞춤이다. 그러나 때로는 기후 변화가 심한 곳이기도 하다. 유럽 이민자들이 이곳에 정착하기 전, 호수 주변에 살았던 사람들은 누구였으며 무엇을 하였을까. 원주민인 마오리족이 살았는데, 그들은 테카포 호수에서 물놀이와 고기잡이를 했다. 그것이 그들 삶의 원천이자 취미였다. 이후 19세기 중반에 유럽에서 이주해 온 제임스 맥켄지를 비롯한 백인들은 호수 주변에서 많은 양을 방목하기 시작했다. 수익성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뉴질랜드는 오늘날에도 양의 숫자가 인구보다 15배나 많다. 벼농사를 지을 수 없던 그들은 양을 방목하는 것만이 유일한 일이었으며 이를 천직으로 여겼다.

호수 입구에 동상 하나가 세워져 있다. 특이하게도 양몰이 개의 동상이다. 이 동상은 상당한 의미를 자아내게 한다. 양의 방목이 이민자 및 마오리족들에게 물질적 풍요와 여유로움을 가져다 줬지만, 사람이 많은 양을 관리하고 기르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우선 양의 숫자가 증가함에 따라 양을 모으고 이동시키며 우리에 넣는 일이 중요했다. 일반적으로 양은 겁이 많다. 그래서 사람이 조금만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갈 준비부터 한다. 이런 양의 특성 때문에 사람이 양을 제대로 관리하고 기르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가끔 맹수가 양들을 공격하거나 위협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 맹수에 맞서 보호가 필요했다. 이러한 면에서 양몰이 개가 필요했으며, 그 가치를 높이 사게 됐다. 양몰이 개 한 마리가 보호할 수 있는 양의 수는 평균 약 100마리 정도다. 이런 까닭에 이들을 활용하는 것은 절대적인 도움이 아닐 수 없었다. 이민자들이 호수 주변에 정착한 후, 방목하는 양의 수는 점점 증가하게 됐으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양몰이 개와 함께 생활하게 됐다. 양몰이 개는 총명했으며, 양을 기르는 주민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동물이자 가족이었다. 1960년대 중반에 지역민들은 회의를 열어 양몰이 개의 공적에 대해 의견을 모으게 됐다. 그 결과 1968년 3월 7일 호수 주변에 개의 동상을 세우게 됐다. 동상 아래에는 “만약 네가 없었다면 목장을 운영하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너의 도움에 감사한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테카포 호수 근처의 선한 영치기 교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테카포 호수 근처의 선한 영치기 교회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8.30

호숫가 언덕에는 특이한 건축물이 세워져 있다. ‘선한 양치기 교회(Church of the Good Shepherd)’라는 작은 교회인데 앙증맞은 장난감 같다. 이 교회는 1935년 1월에 세워졌으며 세계에서 3번째로 작은 교회다. 어려운 환경에 굴하지 않고 살아가는 목동들의 정신력을 이어 받자는 뜻에 세워졌다. 좌석에 앉을 수 있는 인원은 성인 20명 정도에 불과하다. 작은 교회의 유명세 때문인지 뉴질랜드에서 가장 많이 사진이 찍힌 교회가 됐다. 호수 주변에 양을 많이 방목했음을 상징이라도 하듯, 교회 이름이 ‘선한 양치기 교회’다. 그렇다면 교회를 건축하는 데 사용된 자재는 무엇이었으며 그 자재는 어디에서 조달된 것일까.

바로 호수 주변의 돌과 흙을 사용해 지었다. 이렇게 해서 지어진 선한 양치기 교회는 녹색 잔디를 배경으로 청록색의 호수와 어우러져 환상적이다. 선한 양치기 교회를 설계한 사람은 영국에서 온 이민자 R. S. D. 허먼(Harman)이었다. 그는 아치형 창문에다가 부벽(扶壁)도 만들었다. 비록 이러한 것들이 기능을 하지 않는 장식에 불과하지만, 그 정교함은 사람의 마음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테카포의 인구는 400명 내외로 작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교회에서는 매주 일요일에 20명 정도의 사람들이 모여 실제 예배를 진행한다. 이런 면에서 선한 양치기 교회와 양몰이 개 동상의 존재는 맑고 아름다운 테카포 호수를 지키는 파수꾼이라는 의미 또한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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