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초평왕이 정간공과 위령공에게 사기궁(虒祁宮) 낙성식에 참석하라고 명했다. 위령공은 복수(濮水)가의 역사에서 누군가 금을 타는 소리를 들었다. 가늘었지만 청아했다. 음악을 매우 좋아했던 그는 음악에 능한 사연(師涓)을 데리고 다녔다. 사연은 하룻밤만 더 묵자고 요청했다. 다음 날 밤에 사연은 그 음악을 모두 익혔다. 초평왕은 사기궁에서 자신의 악사 사광(師曠)과 함께 사연이 복수에서 익힌 청상(淸商)이라는 곡을 듣고 환호성을 지르며 감탄했다. 사광은 은나라 말기에 사연(師延)이 주왕(紂王)에게 들려주어 나라를 망하게 한 곡이라고 연주하지 못하게 말렸다. 초평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끝까지 연주하게 했다. 소리의 높고 낮음이 마치 호소하는 듯, 흐느껴 우는 듯 했다. 평공이 사광에게 더 슬픈 곡도 있느냐고 물었다. 사광은 청징(淸徵)이라는 곡이 있는데 덕과 의를 갖춘 군주만 들을 수 있다고 대답했다. 사광이 금을 타자 8쌍의 검은 학이 날아와 춤을 추었다.

평왕이 더 훌륭한 곡도 있느냐고 물었다. 사광은 청각(淸角)이라는 곡이 있다고 대답했다. 평왕이 연주하라고 명하자 사광은 옛날 황제(黃帝)가 모든 귀신을 불렀던 곡이므로 감당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평왕이 거듭 부탁하자 사광이 마지못해 청각을 연주했다. 연주가 시작되자 검은 구름이 서쪽에서 일어나더니 광풍이 천지를 흔들었다. 놀란 평공은 위령공과 함께 복도에 엎드려 벌벌 떨었다. 놀란 평공은 심장병에 걸렸다. 꿈속에서 자라처럼 생겼는데 앞다리가 2개, 뒷다리가 1개인 괴물을 보는데 발이 닿는 곳은 모두 물이 용솟음쳤다. 아무도 해몽하지 못하고 있을 때 정간공이 자산(子産)과 도착했다. 초의 양설힐이 자산에게 해몽을 부탁했다. 자산이 말했다.

“다리가 셋 달린 자라를 능(能)이라 합니다. 하를 창건한 우(禹)의 아버지는 곤(鯀)이 황하의 치수공사에 실패하자 순(舜)이 그를 동해의 우산(羽山)에 감금했다가 주살하고 다리 하나를 끊었습니다. 곤은 능으로 변했습니다. 제위에 오른 우가 능을 위해 제사를 올린 이래 해마다 제사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당진의 군주께서 황능에 제사를 지냈는지요?”

평왕이 한기(韓起)를 보내 곤의 사당에 제사를 올리자 병세가 잠시 진정되었다. 자산이 귀국하면서 양설힐에게 말했다.

“당진의 군주는 백성들의 괴로움은 외면하고 사치에 빠져 민심이 떠났습니다. 병이 재발하면 죽을 것이요. 전에 드린 말씀은 안심시키고자 잠시 말을 돌려 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산 밑에서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잡석 10여 개만 있었다. 놀라서 마을사람들에게 물어 보니 모두 알고 있었다. 사광이 말했다.

“귀신들이 돌을 빌려 말합니다. 귀신은 백성들에게 붙어있습니다. 백성들의 원한이 모이면 불안해진 귀신들이 요사스러운 짓을 합니다. 주군께서 화려한 궁실을 짓느라고 백성들의 생활이 피폐하자 귀신들이 돌에 붙어서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귀신이 노하고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하니 주군께서는 오래 사시지 못할 것입니다.”

한 달 남짓 후 평왕은 결국 죽었다. 사기궁을 짓고 3년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후세의 사관이 시를 지어 이를 한탄했다.

숭대광하주신성(崇臺廣廈奏新聲), 갈진민지원독영(竭盡民脂怨黷盈)

높은 대를 지어 음악을 들었지만, 고혈을 빨린 백성들의 원성만 가득 찼네!

물괴신요최명거(物怪新妖催命去), 사기공자비경영(虒祁空自費經營)!

괴물이 임금의 목숨을 재촉하고, 사기궁은 비었으니 고생만 하고 말았구나!

민심이 결국 귀신을 부린다고 하니 잘 살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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