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아침에 바쁘게 출근하려고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때마침 엘리베이터가 멈추면서 문이 열렸다. 그런데 지방 일정이 있어서 짐이 좀 많아서 그랬는지 핸드폰을 안 챙겼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엘리베이터 안에 있는 분한테 죄송하다고 빼먹은 것이 있어서 다시 집에 들어가야 한다고 먼저 내려가라고 하고 집에 들어갔다. 들어가서 찾다 보니 핸드폰은 가방에 들어있었다. 허둥지둥 다시 나와서 보니 반갑게도 엘리베이터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입장을 바꿔보면 필자는 분명히 바쁘다며 내려갔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엘리베이터를 잡아 준 그분께 감동이 밀려왔다.

몇 년 전에 지인들과 라오스에 간 적이 있다. 롱테일보트를 타게 됐는데 천천히 평화롭게 떠내려가는 것을 답답하게 생각한 일행은 경주를 하기로 했다. 5달러씩을 걷어서 1등을 주기로 했는데 그것은 노를 저은 현지인에게 갈 것이었다. 출발을 했고 우리는 누구나 할 것 없이 “빨리, 빨리”를 외쳤다. 그런데 우리 보트 노를 젓던 분이 여유있는 미소를 지으면서 “천천히, 천천히”라고 했다. 물론 현지인이었다.

우리는 경쟁이 습관화 돼 있다. 경쟁하지 않아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경쟁하고, 혼자 다닐 때조차도 급하기만 하다. 심지어 책을 읽을 때도 그렇다. 필자는 정독을 하는 편인데 그러니 가끔은 느리게 읽는 나 스스로가 답답하기만 하다. 그런데 얼마 전에 TV에서 ‘난독시대’라는 프로를 본 적이 있다. 대부분 난독증이 급하게 읽는 데서 비롯된다는 내용이었다. 그 이후 느리게 읽는 것이 편안해졌고 오히려 가끔은 생각할 시간을 가지며 읽는다. 좋은 내용은 다시 한번 더 읽고 새기면서 말이다. 독서의 질이 훨씬 높아졌음을 느끼니 행복하다.

인디언들은 한참을 걷고 나면 멈춰 서서 영혼이 따라오는 시간을 기다려준다는 말도 생각이 난다.

사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는 시간부자이다. 예전에 조선시대로 올라가 보자. 빨래를 하고 음식을 하고 집안일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겠는가? 그리고 지금 움직이는 것을 그때 했다고 생각하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겠는가? 아마도 그 때의 시간으로 환산하면 이미 200년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면 이제라도 좀 여유를 갖고 살아보는 것은 어떨까? 신호가 바뀌었다고 서둘러 건너지 말고 천천히 걸으면서 자연도 즐기고, 보고 싶은 사람들도 가끔 보면서 말이다. 문득 ‘보름달이 한 달에 한 번 뜨는 것이 맞나? 도대체 살아오면서 보름달을 몇 번이나 보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작년 가을에는 감사하게도 하늘이 아름답다는 것을 충분히 느끼면서 살았다. 그래서 ‘올해 하늘이 유난히 예쁘다’며 여러 사람에게 말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전해에도, 그 전전해에도 하늘은 그렇게 예쁘고 아름다웠을 것이다. 그런데 아주 가까운 지인분이 “그래? 하늘? 난 본적이 없어”라고 이야기를 해서 충격이었다. 하지만 사실 그 분만의 문제는 아니지 싶다. 우리 모두의 문제이며 그렇게 바쁘게 산다고 우리가 생각한대로 삶이 살아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제라도 좀 여유를 갖고 살려고 노력해보자. 하늘도 보고, 꽃도 보고, 옆에 있는 사람들도 보면서 말이다. 책도 충분히 소화하면서 천천히 읽고, 다른 사람의 인생에도 관심을 가진다면 조금 더 질 높은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천천히, 천천히”를 외쳤던 그 총각은 지금도 느리고 여유 있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경쟁이 이미 생활화 돼버린 외부 관광객들에 의해서 빨리빨리병이 생기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부터 다시 ‘느리게 살기’에 도전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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