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일본제국주의의 패망과 함께 조선을 점령한 미국은 당시 남조선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틀 지워 나갔다. 미국은 한국현대사 국면마다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다. 독재자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집권 시기는 물론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망라한 모든 분야에 걸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미국은 한일관계에도 깊숙이 개입해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국을 요리하고자 했고 대부분의 경우 뜻을 관철했다. 한국전쟁이 한참 진행될 때조차 미국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압박했다. 이후에도 이승만 정권, 장면 정권에 지속적인 압력을 행사했다. 일본의 침략전쟁 사죄와 배상 문제로 타결이 지연됐다. 박정희 군사정권이 들어서자 압박은 더욱 세졌다.

쿠데타로 정통성이 취약했던 박정희 정권은 정당성 확보의 근거로 경제성장을 내세웠고 목표한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본 자금을 덥석 받았다. 식민지배의 불법성과 배상금이라는 말을 어디에도 넣지 못한 굴욕적인 협정을 체결했다. 그때 잘못 끼운 단추 때문에 오늘 후손들이 고통 받고 있다.

밀약까지 하면서 독도에 대한 영유권 문제를 줏대 없이 처리하고 어업 권역이 대폭 축소된 탓도 있지만 한일협정이 침략지배에 대한 면죄부를 주는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학생들과 민중들은 박정희가 나라 팔아먹었다고 비판했던 것이다.

박정희 정권이 민족정기를 팽개치면서까지 한일협정을 맺은 것은 정권 스스로의 욕구도 있지만 미국의 압력이 크게 작용했다. 지난 2015년 이른바 ‘위안부 합의’도 미국에서 배우 조종했다. 2017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역시 미국이 배후 조종했다. 박근혜 정권이 탄핵정국을 맞아 정신없을 때 체결했다. 탄핵 보름 전이다. 시민단체들과 국민들이 크게 반대했다. 기자들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취재를 거부했다. 국회의 동의도 받지 않고 정부 간 속전속결로 해치웠다.

우리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를 결정했을 때 미 국무장관 폼페이오는 “실망했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대변인 오테이거스와 미 국방부 대변인 이스터번 또한 “깊은 실망과 우려”를 표했다. 니혼게이자이의 보도에 따르면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 차관보는 한국정부에게 재고를 촉구했다. 미 고위당국자는 11월 공식 종료되기 전에 생각을 바꾸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을 수 없는 모욕이고 주권침해다. 대한민국 정부의 의지로 규정에 맞춰 협정을 종료시키는데 왜 제3국인 미국이 깊이 우려하고 실망한다고 말하고 철회를 요구하나? 미국은 이전에는 가능하면 배후에서 조종하려했는데 이제는 대놓고 상전노릇을 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과 한국 국민을 졸로 보고 있다.

미 국무부는 독도방어훈련에 대해 “한일 간 계속 진행 중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생산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독도라고 부르지도 않고 사실상 일본의 입장에 기울여져 있는 표현인 리앙쿠르드암석이라고 표현했다. 미국이 한국에게 어떤 나라인가 잘 보여주는 근거이다. 미국은 일본의 독도 침탈 문제와 일본의 경제침략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인 척 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일본 편을 든다.

주한 미 대사도 한국 내정에 개입하기를 밥 먹듯 한다. 지난 6월 한 시민단체는 ‘내정간섭 일삼는 주한 미 대사 해리스는 이 땅을 떠나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기까지 했다. 미 국무부 장관 폼페이오와 주한 미 대사 해리스는 자신들이 한국의 총독이나 되는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한국 정부와 국민을 지금처럼 함부로 대하다가는 큰 코 다칠 것이다. 내정간섭과 주권침해에 대해 한국 국민이 언제까지 참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미국은 상전 노릇 당장 멈춰라.

한국은 주한미군에게 미군기지를 무상 사용하게 해 주고 있다. 주한미군에게 한 해 직간접으로 지원하는 돈이 무려 4조원이다. 평택미군기지 건설에는 5조원 가까운 혈세가 지원됐고 미국에서 천문학적인 규모의 무기를 사오고 있음에도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경제 전쟁, 외교 전쟁을 벌일 때는 일본 편을 든다. 한국이 부당한 일본에 대한 대응책의 하나로 내어 놓은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대해선 공개적으로 맹비난한다.

오만방자한 태도를 보이고 내정 간섭을 밥 먹듯 하는 건 문재인 정부의 줏대 없는 외교 탓이 크다. 집권이후 미국에 ‘아니오’라고 말한 적 있나? 매사 미국의 승인을 얻어서 행동해야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청와대와 정부에 똬리를 틀고 있는 탓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도 재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니 미국이 속국 대하듯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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