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경찰이 지난 25일 췬완 지역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홍콩 경찰이 지난 25일 췬완 지역에서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대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홍콩의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가 홍콩의 최장기 민주화 시위를 기록했으나 시위 동력이 전혀 사그라지지 않은 채 주말 시위에 돌입할 예정이다.

29일 기준 홍콩 시위는 82일째를 맞았다. 지난 27일 80일째로 2014년 79일 간 지속했던 ‘우산 혁명’을 넘어섰다.

우산 혁명은 2014년 9월 28일부터 79일 동안 대규모 시위대가 홍콩 도심을 점거한 채 홍콩 행정장관 완전 직선제를 요구한 민주화 시위다.

우산 혁명은 홍콩 정부가 강제 진압에 나서면서 79일째 되는 날 무너졌지만 송환법 반대 시위는 주말을 앞두고 대규모 집회를 예고하면서 경찰과의 충돌이 더욱 격렬해질 조짐마저 보인다.

송환법 반대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재야단체 민간인권전선은 오는 31일 또 대규모 시위를 열 예정이다. 또한 홍콩 내 10개 대학과 100여개 중고등학교 학생들은 다음 달부터 수업 거부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송환법 반대 시위는 지난 6월 9일 주최측 추산 103만명의 홍콩 시민이 모여 ‘송환법 철폐’를 외친 빅토리아 공원 집회에서 시작됐다.

이는 홍콩이 1997년 중국으로 반환된 후 일어난 최대 규모 시위였으며 그 다음 주인 16일에는 홍콩 정부가 시위를 ‘폭동’으로 규정한 데 분노해 주최 측 추산으로 200만명이 모였다.

홍콩 정부가 추진한 범죄인 인도 법안은 중국을 포함해 대만,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조약을 체결하지 않은 국가나 지역에도 사안별로 범죄인들을 인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

대규모 시위에 놀란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은 6월 15일 송환법 추진을 “보류한다”고 밝힌 데 이어 7월 9일에는 송환법이 “사망했다”고 밝혔으나 법안의 공식적인 철회는 거부해 성난 민심을 달래기에는 충분치 않았다.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24일 정치인, 전직 고위 관료 등 홍콩 유력 인사들과 회동에서 ‘송환법 철폐’와 ‘경찰 강경진압 조사’라는 시위대의 일부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는 제언이 쏟아지자 “나는 송환법 철회라는 말을 내뱉을 수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홍콩 시위대의 5대 요구 사항은 ▲송환법 완전 철폐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이다.

하지만 홍콩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7월 들어 시위는 점차 폭력적인 양상으로 바뀌었다. 

지난 주말 쿤통과 췬안 지역 시위에서 벌어진 충돌로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86명, 부상자는 40명이 넘는다.

시위가 장기화하고 격렬해지면서 홍콩 경제에도 타격이 큰 상황이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송환법 반대 시위가 홍콩 경제에 미친 영향은 우산 혁명 때보다 더 심각하다”며 “금융, 관광, 소매, 부동산 등 모든 부문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이달 홍콩을 찾는 관광객 수는 지난해보다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소매업 매출도 급감하는 추세다. 

이번 송환법 반대 시위가 우산 혁명 때보다 더 길게 지속하는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분석이 나온다.

무엇보다 우산혁명 당시보다 훨씬 심각해진 집값 문제, 사회적 불평등 등으로 인해 시위의 주력인 젊은층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관측이 많다. 

중국 중앙정부의 압박으로 홍콩에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가 잠식되고 보통선거권 등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한다는 인식이 큰 상황에서, 경제적 문제마저 커지니 중국에 대한 반감은 날로 고조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캐리 람 장관이 젊은 층과 대화를 나서면서 홍콩 사태의 해결에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 컨설턴트 앨리스 우는 “시위대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경찰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며 “캐리 람 행정부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바로 시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에 나서는 ‘통치’”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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