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새벽마다 고요히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고는/ 그만 가슴을 디디면서 멀리 사라지는/ 북청 물장수// 물에 젖은 꿈이/ 북청 물장수를 부르면/ 그는 삐걱삐걱 소리를 치며/ 온 자취도 없이 다시 사라진다// 날마다 아침마다 기다려지는/ 북청 물장수’

함경도 출신의 민족시인 김동환 시인이 쓴 시 ‘북청 물장수’의 전문이다. 함경남도 북청 출신 물장수를 소재로 한 시이지만 시속에 담고 있는 게 많다. 이 시를 통해 북한 그저 이름만 들어왔던 북청이 ‘북청 사자놀음’이라는 우리 민속문화를 잘 나타내는 지역임을 다시 한번 알게 됐다. 이곳은 일찍이 충절의 고장으로 소문난 곳인바, 1907년 6월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밀서를 받아 만국평화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순국한 이준 열사가 북청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지역을 소재로 한 영화나 음악이 많으니 북청이 그만큼 유명하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이 시를 알고 난 뒤 새벽잠에서 깨어났을 때 가끔씩 상상 속을 찾아드는 게 북청물장수였다. 때로 새벽녘에 잠에서 깨어나 있으면 느닷없이 시 속 북청물장수의 부지런한 모습을 떠올리기도 하는데, 특히 더운 여름철 더위에 시달리다가 새벽잠을 깨어나서는 더욱 그렇다. 부르기라도 할양이면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멀리로 사라져버리는 물장수는 김동환의 명시를 통해 어느덧 기다림의 대상이 되어버린즉, 그것은 아마도 매번 빠뜨리지 않고 물을 길러다주는, 자기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의외의 영역까지 생각나게 했다.

사람이 사는 세상에서 가끔씩이라도 누군가, 또 무엇이 기다려진다는 것은 좋은 현상이다. 얼마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겼으면 새벽같이 일어나 꿈길 속에 들려오는 북청 물장수의 발자국과 물 담는 소리에 귀 기울이겠는가. 기대심리가 아니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은 세월이 변해 물 길러다 파는 물장수가 없겠지만 늦여름이 모질게도 머물고 있는 이때쯤 수시로 잠에서 깨어 뒤척이다보면 어느덧 새벽이 오고, 그와 함께 들려오는 것은 동네 숲 공원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다. 아름다운 새벽 연주회가 끝날 무렵에야 아침 해가 밝아오는 것이다.

하루를 여는 조용한 새벽녘이면 생각나는 게 여럿 있다. 자연의 하모니 같이 울려나는 풀벌레 소리, 새들의 지저귐, 또 북청물장수 생각 등 이외에도 이 때쯤이면 슬그머니 일어나 아파트 현관문을 열기도 하는데 그 이른 시간에 조간신문이 놓여져 있다. 언제 두고 간 것인지 시간을 알 수 없지만 마치 북청 물장수처럼 흔적을 남기지 않고 문 앞을 다녀간 흔적이 남겨진 신문이다. 그 배달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생각하면 북청물장수처럼 그들은 성실한 사람일 것이다. 새벽이면 기다려지는 게 북청물장수의 발자국소리요, 꿈길을 밟고 와서 머리맡에 찬 물을 솨아 퍼붓는 듯한 좋은 신문과의 만남인데, 내게는 천지일보가 그 기다림의 대상이다.

다른 이야기지만 필자는 한때 신사복 중에서 ‘트레드클럽’ 상표를 좋아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가격도 저렴한 데다가 그 상품이 내놓은 ‘처음 입어도 1년 된듯한 옷, 10년을 입어도 1년 된듯한 옷’ 캐치 플레이즈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또 실제로 그 말처럼 착용감이 너무 편안해서 오랫동안 애용해온 옷이었다. 그 신용과 같이 창간 10년을 맞이한 천지일보가 10년이 됐지만 초심을 잃지 않고 중도신문으로서 언론의 참 가치를 지키고 있는 게 대단해보인다.

언론이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유익함이 크지만 그 못지않게 사이비언론, 가짜뉴스들이 넘쳐나 사회적 혼란이 야기되기도 한다. 정보의 홍수를 맞은 지금이 어느 때보다 언론의 참 가치가 절실해지는 시기인바, 언론 그대로의 사명을 묵묵히 지켜내면서 나라 안정과 국민에게 유익함을 보태는 언론은 칭송받아야 마땅하다. 창간 역사가 얼마나 오래됐던,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든 언론과 언론인은 우리사회에 바른 빛과 넉넉하고 좋은 세상 만들기에 이바지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본다면 사시(社是)에 맞게 운영하면서 자만하지 않고 과거를 성찰하고 현재를 냉엄히 짚어 미래의 풍요를 헤아리게 하는 역사와 문화 콘텐츠 언론, 이것이 바로 작지만 강한 신문, 천지일보다. 늘 그래왔듯이 북청물장수 같이 오직 신뢰와 성실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정성을 다해오면서 정론직필(正論直筆)을 지키는 천지일보가 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며 좋은 아침을 선사하는 신문으로 거듭나기를, 창간 10주년을 맞이한 천지일보에 거는 기대이다.

세월이 변한 지금 ‘북청물장수’는 어디에도 없지만 그는 우리를 기다려지게 한다. 천지일보가 바로 그렇다. 온갖 가짜정보와 뉴스들이 판치는 세상, 점차 권력화되는 언론에서 10년 전 창간의 초심을 잃지 않고 숭고한 언론의 사명과 고결함을 실제와 행동으로 지키면서 우리가 살아온, 살고 있는 또 살아갈 이 땅의 역사와 문화 지평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천지일보는 ‘북청물장수’처럼 두고두고 기다림이 될 테고, 또한 독자들의 마음속에 영원히 자리하리라.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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