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북부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의 조용한 나라 튀니지, 이 나라는 수리파 이슬람교도가 98%나 차지하고 있는 아랍인으로 구성된 대표적인 이슬람국가다. 이 나라는 외국인들이 관광지로 선호할 정도로 꽤 살기 좋은 나라로 손꼽혀 왔다.

이러한 나라에서 1987년 권력을 장악한 이래 23년째 장기집권을 해 온 벤 알리 전 대통령과 그의 일가가 누려온 철옹(鐵甕)정권이 한 순간에 무너지고,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로 야반도주하기에 이른 사태가 얼마 전 순식간에 발생했다.

그리고 세계는 이 나라를 주목하고 있다.

튀니지는 그간 알려진 것과는 달리 장기집권과 그 일가의 탐욕, 극심한 청년 실업난과 빈부 격차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그에 따른 분노가 고조돼 있던 나라였다.

국민들의 분노에 불을 지핀 것은 26세의 청년 ‘모하메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 사건이었다.

수도 튀니스에서 약 200킬로미터나 떨어진 중․소도시 ‘시디 부 지디’에서 가정의 생계를 책임진 컴퓨터 공학도인 청년 부아지지는 극심한 청년 실업난으로 인해 전공을 뒤로하고 취직 대신 청과물 노점상을 선택했다.

노점상을 하던 부아지지는 경찰관의 노점단속에 ‘유일한 생계수단임을 항변’해 봤지만, 끈질긴 단속에 분을 참지 못하고 끝내 분신을 택하고 말았다.

1960년대 평화시장 봉재공장의 재봉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다 분신 자결한 한국의 ‘전태일’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이 소식은 트위터와 페이스 북을 통해 순식간에 수도 튀니스까지 전해지고 시민들의 분노는 극렬시위로 이어지며 눈 깜짝 할 사이에 철옹성의 권좌를 무너뜨린 것이다.

쫓겨나는 그들은 끝까지 깨닫지를 못하고 조금 남은 권력의 힘마저 이용해 중앙은행으로부터 금괴 1.5t을 빼앗아 도주한 것으로 알려져 듣는 이들의 가슴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우리는 부적절한 명예와 권력과 탐욕의 끝이 주는 경종에 귀 기울여야 할 것 같다.

뿐만이 아니다. 이웃한 나라 알제리에서도 튀니지 사태의 영향으로 유사한 일들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아프리카에선 살만한 나라로 알려져 온 이 나라 역시 장기집권으로 인해 청년 실업률이 70%에 육박하는 등 정치와 경제적인 면에서 튀니지와 흡사하다.

1999년 군부의 지지로 정권을 잡은 압델 부테플리카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후에도 2004년과 2009년의 두 번에 걸친 부정선거로 장기집권에 성공했다.

이 나라에서도 튀니지 혁명 다음날부터 몇 차례에 걸친 분신자살소동에 이어, 일자리와 주택문제를 의논하기 위해 시장면담을 요구하다 거절당한 ‘부테르피푸(37세)가 급기야 분신 후 숨지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알제리 역시 청년들의 시위천국이 되고 말았다.

이번 튀니지와 알제리 등의 소요가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은 과연 무엇일까.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이들 나라와 같은 입장이라는 얘기는 결단코 아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분명 없지는 않다는 사실도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다. 눈에 보이는 성장, 수치적 성장만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성장 일변도’의 정책은 백성들을 속이는 감언이설(甘言利說)의 정책일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함께 깨닫게 한다. 즉, 양적 성장과 질적 성장의 조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놓고 볼 때, 올해 들어 MB정권은 성장 일변도보다 ‘나눔과 안정’을 택했다고 한다. 이 같은 정책은 시대적 흐름을 읽고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인 현상이라 생각한다.

이젠 앞도 봐야겠지만 뒤도 돌아보겠다는 뜻이기에 하는 말이다. 또 표면적 성장이 아닌 진정한 성장은 바로 ‘나눔과 안정’에서 오는 모두의 성장이기에 더욱 그렇다.

요즘 서울시정에선 학생들의 유·무상 급식문제로, 정치권에서는 유·무상 복지 문제로 온 나라를 혼란케 하고 있다.

국민들이 바라볼 때, 어느 공약도 국민을 위한 정책이라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것은 왜일까. 유상이든 무상이든 몇 퍼센트(%)이든, 다만 당리당략(黨利黨略)도 이전투구(泥田鬪狗)도 아닌 ‘나눔과 안정’에 기조를 둔 백성을 위한 정책이기를 국민들은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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