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철 기술경영학 박사

 

동작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작은 기능으로 구성된 독립체인 모듈(module) 관련 내용을 지난 주 칼럼에서 언급한 것은 지난 달 시작된 일본의 경제도발에 기인한다. 사실 우리나라는 그 동안 상당 부분 일본에서 생산한 산업의 모듈을 조립하여 이를 가공하고 최종 제품화하여 그 부가가치를 창출해 온 것은 사실이다. 즉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일본이 만든 소재와 그들이 제작한 부품 –이들을 모듈이라 가정해서 무방하다.-을 이용해서 우리가 가진 각종 부가기술을 더하여 더욱 우수한, 혹은 새로운 차원의 성능을 가진 완제품을 수출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구조였던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대일본 무역적자는 지난해 248억달러(약 30조원)로 일본의 250개 교역국 중 가장 높을 뿐 아니라, 광복 후 약 50여년간의 대일 총 무역적자는 700조 가량으로 실로 엄청난 액수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대로 모듈조립을 기반으로 완성품이나 혹은 개량품을 생산, 판매하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를 이해한다면, 이 같은 현상은 그리 이상한 것이라 볼 수 없으며, 그 동안 일본과의 대일 무역적자를 극복하자는 지적도 꽤나 있었지만, 절실한 노력을 기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모듈화를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는 개념이 지배적인 산업 구조를 통해 성장해 온 전형적 양태에 기인한다.

이는 참으로 위험하고도 취약한 조달 시스템이었지만, 우리나라와 일본 간 상호 경제교류를 통한 윈윈(win-win) 전략이 수십년 지속돼 오면서 자연스레 굳어졌고, 정치와 경제는 분리된 것이라는 암묵적 인식에 따라 크게 관심을 두지 않고 생산체계를 고착화 시켜 왔다. 이는 IT, 기계, 화학산업 등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근간이 되었고,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주요 산업제품들이 그 동안 일본산에 매우 크게 의존하고 있었다는 것인데, 정부는 물론 대부분의 기업들도 이에 대한 심각성을 크게 인지하지 못했음은 차치하고라도, 국산화에 대해서도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세계 최고 수준의 소재와 부품을 불편 없이 전달받아 생산에 이용하는데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것이다. 이번 아베의 경제도발이 우리의 생산 시스템의 취약성을 범국가적으로 인식케 해 줬다는 점에서 오히려 고맙다고 해야 할 수도 있다.

현대 경제는 한 국가가, 하나의 기업이 모든 것을 할 수 없는 상호 전략적 이해관계로 묶여져 있다. 그러나 기술력이 강한 어느 특정 국가가 정치논리로 이를 무기화할 경우, 전 세계의 경제고리는 약해지고, 최종 부품을 생산하는 국가나 기업은 치명상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작금의 시점에서 국가나 기업의 모듈화 전략을 새로운 방향으로 재 수립해야 함은, 지금 당장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서도,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매우 중요한 과제라 할 수 있다. 

모듈화를 분업화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두 가지 형태는 같다고 볼 수는 없다. 반도체산업을 예를 들면, 모듈화는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투입되는 각종 요소들, 즉 웨이퍼, 포토레지스터, 불화수소 등 각자 하나의 물질로서 역할을 하는 독립체들이 그 성능에 맞게 역할을 하면서, 세정, 증착 등 작업을 거쳐 하나의 반도체 완성품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의미한다. 분업이란 것은 위에 언급한 반도체 제작과정에서의 노동을 특정 작업만을 전문적으로 세분화해 작업을 시행, 생산성을 높이는 작업 행태를 의미한다. 즉, 모듈화가 소재나 부품 등 개별적으로 독립적 기능을 가진 독립체 각 각의 구성이라면, 분업이란 이들 모듈을 이용, 물질생산 과정에서 분화돼 작업을 하는 기능적 측면이라 볼 수 있으며, 이는 물질(모듈)과 노동(분업)으로 경제 요소를 구분해서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산업의 측면에서 보면, 상당 분야에서 모듈화보다는 분업화에 방점을 두고, 소재나 부품 조달이 막혔을 때의 위기 상황은 크게 고려하지 않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분업화에 초점을 두고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기술독립’이라는 말이 등장하고 있다. 트럼프의 등장으로 이제 글로벌 경제사슬이라는 말은 상당 부분 퇴색해졌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모듈화 산업 형태는 지속될 것이며, 때문에 기술강국들의 ‘기술 무기화’도 시도될 수 있다. ‘기술강국’으로 가는 길은 모듈화와 분업화를 안정적으로 유지해 나가야 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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