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 전체 판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금감원이 고강도 검사에 나섰다. 사진은 각 은행의 본점 모습 ⓒ천지일보 2019.8.23
해외금리 연계 파생상품 전체 판매 중 대다수를 차지하는 우리은행과 하나은행을 중심으로 금감원이 고강도 검사에 나섰다. 사진은 각 은행의 본점 모습 ⓒ천지일보 2019.8.23

“위험성 알렸다면 절대 투자 안했을 것”
2008년 키코 사태와 유사
3654명 1인당 2억원 투자
우리·하나은행 대부분 차지
“고도의 사기·탐욕” 전문가 비판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최근 급격한 수익률 악화로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상품인 ‘DLF, DLS’가 원금의 절반 이상이 손실이 예상되며 최악의 경우 원금을 모두 날릴 위험에 처했다.

그런데 글로벌 시장의 둔화와 금리하향 추세가 확실히 예상됐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개인투자자들에게 대규모로 판매한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은행들이 위험성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고 판매 실적을 올리고 이윤만 남기기에만 급급했다며 도덕적 해이 등의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에 대해서는 금융교육의 부재도 한 원인으로 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9일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상품인 DLF(금리연계 파생결합펀드)와 DLS(금리연계 파생결합증권)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 개인투자자 약 3600명의 투자금 7300억원이 물려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DLF와 DLS는 주요 해외금리에 연계된 파생상품이다. 은행에서 DLS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형태로 판매된 게 DLF며. 증권사에서는 직접 DLS를 판매했다. 이들 상품은 금리가 만기까지 일정 구간에 머무르면 연 3.5%∼4.0%의 수익률을 보장한다. 다만 기준치 아래로 내려가면 손실구간에 진입, 최악의 경우는 원금을 모두 날릴 위험이 있다. 따라서 이 상품들의 지표 금리가 현 수준에서 이어진다고 가정할 경우 원금의 절반 이상 손실이 예상된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상품의 판매잔액은 지난 7일 기준으로 8224억원이다. 개인투자자 3654명이 7326억원 어치를, 법인 188곳이 898억원 어치를 사들였다. 개인투자자로는 1인당 약 2억원꼴로 사들인 셈이다. 이들 상품은 우리은행이 4012억원으로 가장 많이 팔았고, 뒤를 이어 하나은행이 3876억원을 팔았다. 그 외에 국민은행이 252억원, 유안타증권 50억원, 미래에셋대우 13억원, NH투자증권이 11억원을 각각 팔았다.

8224억원 중 영국 CMS(파운드화 이자율스와프) 7년물 및 미국 CMS(달러화 이자율스와프) 5년물 금리를 기초자산으로 연동하는 상품이 6958억원이다. 하지만 영국·미국의 CMS 금리가 하락하면서 이 가운데 5973억원(총액의 85.8%)이 손실구간에 진입했고, 현재 금리가 만기까지 유지된다고 가정하면 예상 손실률은 절반이 넘는 56.2%다. 곧 만기까지 금리가 반등하지 않는 한 손실은 불가피하다. 여기서 다가 아니라 금리가 더 내리면 손실률은 더 높아진다.

독일 10년물 국채를 기초자산으로 삼은 금리 연계상품 역시 이미 해당 금리가 -0.7% 아래로 내려가면서 원금 전액 손실 구간에 진입했고, 예상 손실률은 95.1%다. 이 상품의 만기는 올해 9∼11월에 돌아오는데, 판매잔액 1266억원 중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1255억원이 우리은행에서 판매된 DLF다.

금융감독원(금감원) ⓒ천지일보 2019.7.16
금융감독원(금감원) ⓒ천지일보 2019.7.16

금감원은 뒤늦게 해당상품을 설계한 증권사와 판매한 은행, 상품 운용사 등에 대해 합동조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감독당국이 감시를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이번 사태는 제2의 키코 사태란 목소리가 나온다. 2008년 당시 시중은행들은 키코가 손실이 무한히 커질 수 있는 ‘환투기’ 상품임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채 판매했다. 결국 미국발 금융위기로 환율이 상한선 이상으로 폭등하면서 키코에 가입한 중소기업 중 일부는 파산 지경에 이르는 등 많은 기업이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따라서 당시 사태와 매우 흡사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연행 금융소비자연맹 회장은 “금융기관이 과거 데이터만 갖고 상품을 만들었는데, 금리하향 추세가 명백함에도 의도적으로 상품을 개발해 판매했다는 것은 사기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금감원이 불완전 판매요소가 충분함에도 판매하도록 인가를 해준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비자들도 면밀히 따져보고 가입했어야 했는데, 너무 쉽게 투자를 한 것 같다”면서도 이는 “하이리스크 상품인데 은행들이 상품 설명을 제대로 해줬을지 의문이 든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전 금감원 선임국장인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 역시 이번 사태가 은행과 감독당국 모두 책임이 크다는 점을 지적했다. 조 원장은 “이 상품에 대한 설명만 제대로 됐다면 제 정신 아닌 이상 절대 가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는 고도의 사기고 은행들의 탐욕이나 다름없다”고 강도 있게 비판했다.

이어 “은행 자산관리자인 PB(프라이빗뱅커)는 성과금을 받으려는 것이고, 그 피해는 개인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기 때문에 감독당국은 PB에 대해 책임을 세게 물어야 되며, 모니터링을 상시 강화해야 이번과 같은 사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덧붙여 “학생 때부터 금융교육이 필요하겠고, 금융회사는 도덕성을 재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하나은행노동조합 측은 “금리하락 추세가 심각함을 감지한 PB들이 올해 4월부터 관련 부서에 발행사의 콜옵션 행사와 이미 일부 손실이 발생한 상태에서라도 고객들이 손절할 수 있도록 환매수수료 감면 등 적극적인 대응책 마련을 요구한 바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영진이 자본시장법 위배, 중도 환매수수료 우대 시 타고객 수익에 미치는 영향, 배임 우려 등을 내세워 무능과 안일한 대응으로 현재에 이르렀다”고 자사의 미온적 대응을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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