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행동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일본 고등형사가 학살로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지진과는 상관없는 해안가 뚝길에서 학살과 만행이 있었음을 입증하는 사진이다.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행동이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학살 실체 확실히 알려주는 모습
日교과서에서 계속 왜곡·삭제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본지가 관동대지진 조선인 대학살 사건 96주기를 앞두고 관련 미공개 사진 2점을 단독 공개한다.

관동대지진 사건은 다음과 같다. 1923년 9월 1일 일본 관동지역은 규모 7.9의 대지진으로 인해 건물이 무너지고 화재가 발생하는 등 대부분 폐허가 될 정도로 피해가 심각했다. 당시 이 지진은 일본의 경제가 좋지 않은 공황상태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민심의 추락은 상당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곧바로 계엄사령부를 설치하고 지진으로 인한 경제파탄으로 울분이 터진 민심을 달래기 위해 희생양을 조선인으로 돌렸다.

일본 계엄사령부는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방화했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넣었다’ 등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계엄사령부는 언론에 거짓으로 흘려 일본 민심을 자극시키게 했고, 무전과 전단, 포스터 등을 이용해 유언비어를 유포시킴으로써 관동 일대 조선인들이 숨을 곳이 없도록 했고, 형무소에 수감 중인 죄수들까지 다 내보내 자경단을 구성하도록 해 대학살을 자행하도록 부추겼다.

자경단의 마구잡이 조선인 사냥에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일부 죽기도 했으나 조선인의 피해는 엄청났다. 이들에 의해 학살된 조선인은 독립신문에서는 6천여명으로 발표됐으나 독일 문헌에서는 2만 3000명 이상으로 기록됐다. 곧 일본의 자작극으로 우리 선조들이 무참히 학살된 사건이다.

일본은 계속해서 학살에 대해 부인해오고 있으나, 본지는 계속해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사진들을 모아온 정성길 사진연구가를 통해 일본의 학살 만행을 알려왔다. 이번 사진 중에는 일본의 학살 실체를 가장 확실하게 규명할 수 있는 사진을 공개한다. 바로 일본 고등형사가 죽은 여성 시신의 음부를 대나무 막대기로 찔러보고 있는 모습의 사진이다. 왼쪽에는 일본 경찰 간부가 쪽지를 들고 있고 우측에는 자경단들이 코를 막고 현장을 지켜보고 있다.

정 사진연구가에 따르면 이곳은 요코하마 해안가 뚝길이라 지진과 상관없는 곳에서 전주에 묶여 있다가 학살됐다. 고등형사는 현장에서 자기 모습이 촬영되고 있는 사실도 모른 채 자기만의 호기심 때문에 주변 시선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 일본의 주장처럼 만약 지진으로 희생된 시신이라 한다면 이 같은 행동은 하지 못할 것이다. 여성 시신들이 대부분 옷을 벗고 있는데 지진 발생 중에 옷을 벗는다는 것은 상식에도 맞지 않다. 일본 자경단이 옷을 벗기고 죽였기 때문이란 것이 더 설득력을 얻으며, 그 증거에 대한 사진은 이미 본지가 공개한 바 있다.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관동대지진 때 일본의 야만적 본성과 만행을 확실하게 입증하는 셈이다. 이 사진은 당시 오키나와에서 근무하던 영국인 조지 로스 해군소장이 현장을 직접 촬영한 것들이다. 로스 소장의 용기 있는 사진 한 컷이 천 마디 말이 필요 없도록 한 것이다. 정성길 사진연구가는 “지진 속에서도 그들의 만행이 드러났고, 여성 시신에 다시 악랄한 행위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성추행으로 단죄를 받아야 할 일이다”고 꼬집었다.

또 다른 사진은 연못에 많은 시신들이 빠져 있는 모습이다. 원래는 시신 위로 걸어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차있었으나 다른 곳으로 옮겼고, 남은 시신이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일본은 이 사진에 대해 학살된 것이 아니라 화재로 인해 연못에 뛰어들었다는 변명을 했지만 주변 나무들이 멀쩡한 것으로 보아 화재로 인해 죽은 시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학살한 후 연못 위에 시신을 버려 방치한 모습이다. 많은 시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일부 시신만 남아 있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학살한 후 연못 위에 시신을 버려 방치한 모습이다. 많은 시신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고 일부 시신만 남아 있다. (제공: 정성길 사진연구가) ⓒ천지일보 2019.8.21

일본에서는 당시 일부 의식 있는 언론들이 이 사건에 대해 알아봤고, 결국 잘못된 유언비어에 의해 많은 조선인이 무고하게 학살됐다는 사실을 알아내 기사와 사설 등으로 언론에 내보냈다. 이에 일본 교과서에도 명백히 일본인이 조선인을 학살했다는 내용을 기술했다. 그러나 시간이 점차 흐르면서 일본은 학살이라는 표현을 ‘살해’라고 수정한 데 이어 ‘희생’이라고 변경하더니 급기야 2013년 초에는 교과서에서 내용을 삭제하는 등 자신의 선조들이 저지른 행위에 대해 미화 혹은 왜곡시켜 왔다. 자신의 선조들이 당시 많은 조선인을 죽였다는 사실을 기록으로 남겼음에도 이를 무시하면서까지 왜곡하려는 것이다.

정 사진연구가는 2000년대 초반 일본 고등학교 국정교과서를 입수했고, 이를 확인한 결과 한국인을 6천명 살해했고, 중국인을 200명 살해했다고 기술하면서 교육을 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그 내용까지 빼서 더 이상 교육하지 않고 감추려 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우리나라는 이 사건에 대해 그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부끄러운 현실이지만 정작 우리는 국사 교과서에조차 지금껏 거의 언급이 안 되고 있다. 또한 정부차원의 규명작업 역시 없다. 지난 2014년 19대 국회 여야 의원 103명이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 위원회’를 설치하는 특별법안을 발의했으나 통과되지 못하고 폐기된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유엔 국제법에서는 중국의 난징대학살과 나치에 의한 유태인 학살을 제노사이드(genocide, 집단학살) 범죄로 적용했다.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은 제노사이드로 인정돼야 할 중대한 사건이 분명함에도 아직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없다.

정성길 사진연구가는 “위안부와 강제징용문제는 수도 없이 얘기하고 있으나, 사실상 그 2배 버금가는 관동대지진 대학살 사건을 잊고만 있다. 확실한 사진 입증자료가 있음에도 왜 정부가 나서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답답해했다. 이어 “현재 일본이 수출규제로 경제보복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더 이상 일본 눈치를 보지 말고 적극 규명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한편 로스 소장은 당시 찍었던 사진들을 앨범으로 만들어 지진피해를 가늠할 수 있도록 값진 기록을 남겼다. 로스 소장이 1988년 향년 92세로 사망할 때까지 한 번도 공개되지 않았던 앨범 자료들을 정성길 사진연구가가 입수해 책으로 재차 편집했다.

그 외 관동대지진 사건과 관련한 수백 장의 사진을 모은 정 연구가는 이 사건의 실체를 낱낱이 밝히기 위해 수년간의 작업을 통해 500여장의 사진을 책으로 묶은 ‘사진으로 본 관동대지진의 실체’를 최근 발간했다. 이 책은 온라인(옥션)에서만 판매되고 있다. 또 그는 조만간 대대적으로 이를 알리기 위한 전국순회 전시에 나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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