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는 ‘동대문교회’ 논란… “중건해야”
끝나지 않는 ‘동대문교회’ 논란… “중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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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인, 교회 터서 연합예배

“헐린 교회, 항일독립운동 성지”

 
동대문교회가 철거된 흥인지문 옆 동대문성곽공원. 동대문교회가 위치하던 터를 중심으로 한양도성 성곽 회복 작업을 하던 모습. ⓒ천지일보
동대문교회가 철거된 흥인지문 옆 동대문성곽공원. 동대문교회가 위치하던 터를 중심으로 한양도성 성곽 회복 작업을 하던 모습. ⓒ천지일보DB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동대문교회와 관련된 논란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동대문교회가 서울시의 공원화 계획에 따라 2014년 헐렸고, 올해로 5년째가 됐다. 우여곡절 끝에 동대문교회의 건물이 헐리고 교회 터는 공원으로 조성됐다. 겉으로는 사태가 종결된 듯 보이지만 속사정은 달랐다. 동대문교회 소속 교단 내에서는 아직도 반발이 거세다.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교) 서울연회 300여명은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의 옛 동대문교회 터인 동대문성곽공원 광장에 모여 ‘동대문교회 중건을 위한 연합예배’를 드렸다.

참석자들은 ‘기독교대한감리회 서울연회 393개 교회와 20만 성도’명의로 “서울시가 헐어버린 동대문감리교회는 한국 근대 의학사의 발생지이며,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이다”라는 제목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결의문에 따르면 동대문교회는 스크랜턴과 그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다. 교회는 가난한 이들을 돌보며 최초로 여성들의 진료를 위해서 세워진 ‘볼드윈시약소’와 더불어 시작 됐다. 이 교회에서 목회를 한 헐버트 선교사는 ‘한국을 한국인보다 더 사랑한 선교사’로 한국교회에 알려져 있다. 그는 일제에 의해 강제로 출국 당하기까지 탄압을 받았고, 해방 이후 초대 대통령 이승만의 초청으로 귀국했다가 세상을 떠나 양화진에 묻혔다.

동대문교회가 철거된 터에 세워진 농성 천막이 3일 꽁꽁 싸매진채 방치되고 있다. ⓒ천지일보
동대문교회가 철거된 터에 농성 천막이 설치됐던 2015년 당시 모습. ⓒ천지일보DB

참석자들은 동대문교회 담임목사였던 손정도 목사에 대해서는 “3.1운동 민족대표 33인을 구성시키는 데 산파역을 했다”고 소개했다. 손 목사는 3.1운동 당시 서울 감리교회와 평양 장로교 지도자들을 연합하도록 돕고 연락하는 역할을 했고, 대한민국 상해임시정부 임시의정원 의장을 지냈다. 이들은 손 목사에 대해 “좌우이념을 넘어서서 민족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한 열린 지도자였으며 독립운동가였다”고 평가했다.

동대문교회는 일본 경찰에 항거한 김상옥 의사와 일제 위안부의 참상을 첫 번째로 폭로한 김학순 할머니가 출석했던 교회이기도 하다.

이날 참석자들은 “동대문교회에 1910년대에 세워졌던 벽돌 예배당을 복원하고, 벙커 선교사가 기증한 종을 종탑에 달고, 이 분들을 기념하는 비석이나 동상을 동대문 성곽공원 곳곳에 세워 개화기의 항일독립운동의 역사기념공원을 만들고 성지로 명명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울러 서울시에 동대문교회 옛 예배당 복원과 일대 기념공원화를 요구하고, 이곳을 성지로 선포했다.

앞서 동대문교회는 2007년 시작된 서울시의 공원화 계획에 따라 철거 대상에 올랐고, 이후 교회 담임이었던 서기종 목사가 시 공무원들에게 공사를 승인하는 공문서를 발행해줘 교단 내 반발을 샀다. 2015년 8월 당시 감독회장이었던 전용재 감독은 성명을 통해 “128년 역사의 교회를 서 목사의 요청에 의해 강제수용했고 감리교회가 무수한 희생을 치러가며 지켜왔던 교회건물이자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을 감리교단의 허락 없이 허물었다”고 맹비난하며 범국민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서기종 목사는 감리교단으로부터 출교 처분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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