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위난(危難) 앞에서…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먼 위정자들”
[천지일보 시론] 위난(危難) 앞에서…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먼 위정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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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습해온 위난, 위기인가 기회인가. 대한민국이 맞은 작금의 현실을 놓고 대부분의 국민들이 우려하고 있다. 혹자는 구한말의 상황과 너무나 닮았다며 호들갑에 가까울 정도로 조바심을 내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려든 호들갑이든 현실이고 사실이라는 점에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일본의 적반하장격 경제보복, 북한의 거듭되는 미사일 발사, 한·미·일 동맹의 소원(疏遠)한 틈을 탄 중·러의 틈새공략, 미국의 아시아권 미사일배치에 대한 중국의 겁박, 남·북·미간의 이상한 기류 등은 한국 정부의 사면초가, 고립무원, 동네 북 등의 부정적 수식어들을 양산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를 초래한 데는 무엇보다 지도자의 지도력 부재에 방점이 맞춰지는 분위기다. 그런 가운데 청와대와 정부 여당은 뾰족한 대안책을 내놓지 못하며 오히려 현실적 해결 대신 이상과 낭만에 가까운 환상적 대안을 발표함으로써 국민들의 불안감은 증폭돼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데는 경제뿐만 아니라 안보 국방외교 등 전반에 걸쳐 일관성 없이 모호한 갈 짓자 횡보를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안타까운 것은 야당 내지 재야에서조차 비난은 거세지만 그야말로 올바른 현실극복을 위한 대안책 있는 비판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여야 할 것 없이 세기에 또 다시 찾아 온 한반도 위기를 “제 버릇 개 못 준다”는 속담과 같이 정쟁의 도구와 다가올 총선 승리의 도구로 삼을 뿐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 없어 보인다. 외세의 위협보다 더 큰 위협은 바로 이러한 위정자들의 부패한 사상과 정쟁과 이념논쟁이며, 이러한 현상들은 지난 역사로부터 유전돼 온 분열의 유전자 때문일 것이다.

결국 국난의 위기에 놓인 이 나라 백성들은 “염불보다 잿밥에 눈이 멀다”는 말처럼, 정치적 손익계산에만 혈안이 돼 있는 위정자들만 쳐다보고 있을 수만 없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현실감각의 부재와 무능은 국민을 선동함으로써 비겁하게 위기모면을 모색해 온 것도 사실이다. 이제 그 잔 꾀가 만 천하에 들어나자 부랴부랴 자제를 촉구하며 신중론과 외교력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나서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한 번 지난 역사를 고찰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기가 닥치면 단 한 번도 지도자와 조종에서 위기를 극복해 본 적이 없다. 극복은커녕 위기를 자초했고 백성을 희생양 삼아 왔을 뿐이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점을 상기해야 할 때다.

그러나 백성들은 위기와 위난이 닥쳐오면 분연히 맞서 왔고 극복해 냈다. 이것이 또 다른 우리의 자화상이다. 

고려 몽고 침입 때는 초조대장경 제작을 통해 불심으로 백성들의 총화를 이끌어냈으며, 임진왜란과 구한말에도 백성들은 스스로 하나돼 위정자들이 불러온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위난으로부터 나라를 구해냈던 것이다.

이는 우리 민족만이 지닌 숭고한 역사며 근성이며 기질이며 자랑이다. 작금의 현실 또한 그 어느 시대보다 뒤지지 않는 위난의 때다. 그리고 역시 지도자와 정부는 그 해결책이 보이질 않는다. 야당 역시 정쟁에 눈이 멀어 있으며 국민 선동에 혈안이 돼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결국 처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몫으로 남게 된 듯싶다.

그렇다 할지라도 분명한 것은 과거의 역사는 외세의 공략에 대처할 힘과 능력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은 다르다. 힘이 있고 경제가 있고 반면교사라 하듯, 피로 얼룩진 역사적 산 경험이 있다.

이러한 때 위기가 곧 기회라 하듯이, 정쟁과 이념으로 갈기갈기 찢긴 이 나라를 하나로 봉합해 통합된 정신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오히려 온 세계를 선도해 가는 위대한 조국으로 승화시키는 절대적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위대한 대한민국 국민의 저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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