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시대 학문이 높았던 사대부들은 높은 벼슬을 제수 받으면 대개는 사양하는 상소를 했다. 당시 풍속은 ‘성만(盛滿)’하면 스스로 몸을 낮춘다는 용어가 있었다. 성만이란 ‘극성에 다다르면 반드시 쇠 한다’는 뜻이다. 
 
선조 때 호종공신 백사 이항복(白沙 李恒福)은 46세 되는 해 관직에서 물러나 시골에서 쉬고 있었다. 선조는 그를 영의정 직을 제수하며 출사할 것을 명했다. 그러나 백사는 ‘성만’임을 자각하고 겸양으로 완곡하게 사양한다. 자신의 능력에 맞지 않은 자리라는 것이다. 선조가 명을 받으라고 재차 독촉 했으나 나가지를 않았다. 선조가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때 백사는 할 수 없이 영의정 자리를 받았다. 백사는 기회가 있을 때 마다 사직상소를 올리고 학문에 전념하는 것을 원했다. 

유교사회에서는 ‘선비가 수학하여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면 치인(治人)의 단계인 사대부가 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훌륭한 학자들은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는 것을 낙도로 삼은 것이다.  

조선 명종 때 경상도에 살았던 학자 남명 조식(南溟 曺植). 평생 벼슬을 외면하고 초야에 묻혀 학문에만 전념, 진정한 학자로 숭앙 받았다. 그런데 조식은 벼슬을 왜 외면 한 것일까. 그의 낙향 변은 ‘도(道)가 무너진 세상에 출사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전하의 정치는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 하늘의 뜻도, 민심도 이미 떠나갔습니다. 비유하자면 오래 된 큰 나무의 속을 벌레가 다 갉아먹어서 진액이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당장이라도 닥쳐올 것 같은 형국입니다. 조정에 충의로운 선비와 근면한 어진 신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리들이 백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래에서는 시시덕거리며 주색에 빠져있으며, 위에서는 어물쩍거리며 재물만 불리고 있습니다(하략)…-

조식은 젊었을 때 성리대전(性理大全)을 읽다가 뜻을 깨달았다고 한다. ‘배움은 안자(顔子, 공자의 제자)의 자세여야 하며, 세상에 나가면 해내는 것이 있어야 하고, 물러나면 지키는 것이 있어야 한다’라는 글이 가슴에 자리 잡았다. 즉 관직에 출사해선 좋은 정치를 해야 하며, 물러나게 되면 학문에 전념해 학자의 길로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송도삼절로 불리며 명기 황진이와도 일화를 남긴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도 학문의 길을 택해 평생 관변을 외면했다. 처음에는 어머니의 요청으로 생원시에 장원으로 합격했으나 도중에 포기하고 개경에 눌러 앉았다. 서경덕은 학문에만 전념 성리학에 일가를 이룬다. 그의 학문과 사상은 후대 학자들에 의해서 독창성이 높이 평가됐다. 

벼슬에 연연한 학자들은 후학들이 존경하지 않았다. 때로는 정쟁에 얽혀 비난을 받고 귀양을 갔으며 불우하게 만년을 보낸 이들이 많다. 비리에 연루 되거나 관작을 탐하는 학자들은 경멸의 대상이 됐다.

요즈음 조국 법무장관 후보에 대한 폴리페서 논쟁이 거세다. 과거 교수시절 폴리페서를 비난했던 그가 이제는 집중 공격을 받는 위치가 되었다. 조국 후보는 서울대 동문들 사이에서도 인터넷 조사에서 ‘부끄러운 동문상 1위’가 되었다고 한다. 부정적인 여론이 비등한데도 그를 법무장관에 임명한 대통령의 독단과 오만을 지적하는 국민들이 많다.

또 후보 가족이 2017년 7월 10억 5000만원을 납입한 사모펀드 문제가 새로 부각되고 있다. 이게 사실이라면 조국은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한다. 청문회를 앞두고 새로운 의혹들이 계속 불거지고 있다. 그가 학자적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빨리 사퇴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