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독립문 같은 규모로 지어진 문덕면의 독립문. (제공:보성군) ⓒ천지일보 2019.8.16
서울의 독립문 같은 규모로 지어진 문덕면의 독립문. (제공:보성군) ⓒ천지일보 2019.8.16

의향, 예향, 다향으로 불려

‘보성 의병사’ 777명 의병 기록

자자손자 대를 이어 의병활동

[천지일보 보성=전대웅 기자] 전국에서 가장 많은 의병이 발굴된 곳 보성군. 지난해 발간한 ‘보성 의병사’ 책에는 777명의 의병이 기록돼 있다. 3경 3보향의 고장으로 대변되는 보성에는 녹차와 서편제 그리고 의병이 있어 의향, 예향, 다향이라 불려왔다. 태양보다 뜨거웠던 의병들의 구국활동에 대한 열정과 희생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는 역사 여행, 보성으로 떠나보자.

◆이순신의 기개 담긴 열선루

보성읍 (구)공공도서관 옆에 있는 열선루는 육군으로 편입해 싸우라 명한 선조의 교지에 ‘신에게는 아직 열두 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금신전선 상유십이(今臣戰船尙有十二)’ 장계를 써서 올린 곳이다. 그는 열선루에서 장계를 올린 뒤 조성 조양창에서 군량미를 얻고 보성 의병을 모집해 회천에서 명량해전으로 나갔다.

보성군청 방면 시가지 중심에는 오충사가 있다. 오충사는 보성 선씨 충신 다섯 명을 모신 사당이다. 그중에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운 선거이 장군이 있다. ‘난 중일기’에는 선거이 장군과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는 ‘증별선수사거이’라는 시가 수록돼 있을 정도로 두 사람은 막역한 사이였다. 그는 임진왜란 당시 한산도 대첩과 행주대첩 등에서 큰 공을 세웠다.

오충사에서 나오면 방진관을 만날 수 있다. 방진은 이순신 장군의 장인으로 1558년경 보성군수로 재직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방진관에는 수군 병영 체험을 할 수 있는 의복이 마련돼 있으며 활을 잘 쏘던 방진을 따라 활쏘기 체험도 할 수 있다.

벌교 방면에는 충절사가 있다. 충절사는 모의 장군 최대성을 기리는 사당이다. 최대성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을 도와 전장에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의병을 모아 항일전을 이어갔다. 충절사로 들어오는 군두 사거리는 최대성 장군의 순절을 기려 지금까지 군두 사거리, 군머리로 불린다. 특히 최대성 장군은 동생과 두 아들, 사노비까지 의병 활동을 했으며 대를 이어 구국 활동을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고흥과 인접한 곳에는 어모장군 전방삭을 기리는 충효사가 있다. 어모장군 전방삭 또한 이순신을 도와 임진왜란 때 해상전에 가담했으며 정유재란 때는 의병 300여명을 모아 향토 수호전을 펼쳤다. 전방삭 장군이 진지를 구축한 영등마을은 바다에 인접해 있고 산이 병목처럼 겹쳐져 있어 안전하게 의병 훈련을 할 수 있었다. 지역의 지형·지물을 파악해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의병 전술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백범 김구 선생 은거 당시 사진. (제공:보성군) ⓒ천지일보 2019.8.16
백범 김구 선생 은거 당시 사진. (제공:보성군) ⓒ천지일보 2019.8.16

◆독립 운동가들의 발자취

벌교읍 금곡마을에는 홍암 나철 기념관과 생가가 있다. 나철 선생은 대종교 창시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1세대이자 정신적 지주이다. 나철은 을사늑약 이후 외교활동을 통해 평화적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을사5적 암살단을 만들어 거사를 준비하기도 했다. 나철의 대종교는 중광단을 거쳐 청산리대첩에서 대승을 거둔 북로군정서로까지 확장해 나가며 대한민국 독립운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백범 김구 선생이 은거한 득량 쇠실마을도 볼 수 있다. 김구 선생은 쇠실마을에 은거하면서 마을 주민과 콩잎으로 죽을 쒀 먹으며 역사에 대해 논하기도 했다. 광복 후에는 고마운 마음을 잊지 못해 쇠실마을을 다시 찾기도 했으며 떠나며 아쉬움을 노래한 한시를 선물했다고도 전해진다.

문덕면에 이르면 안규홍·박제현 가옥도 만날 수 있다. 안규홍은 전투기술과 신출귀몰한 위장술로 인해 일본군이 신원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안규홍을 ‘거괴’로 분류, 일본군 중 가장 악랄한 육군 정규군 14연대를 파견해 안규홍 부대를 말살하려고 하기도 했다.

항일투쟁을 이끈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을 모델로 공연하고 있는 모습. (제공:보성군) ⓒ천지일보 2019.8.16
항일투쟁을 이끈 담살이 의병장 안규홍을 모델로 공연하고 있는 모습. (제공:보성군) ⓒ천지일보 2019.8.16

또 양반 유생들이 뜻을 함께하며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국정신으로 민족이 하나로 융합되는 항일투쟁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갑신정변에 참여하고 독립신문 창간과 독립협회를 창립한 서재필 기념공원도 만날 수 있다.

보성군 관계자는 “보성은 임진왜란 초기 전라좌의병이 창의한 곳이며 이순신과 함께 해상 의병 중심지로 평가받아 남도 의병의 성지라 할만하다”며 “임진왜란에서 정유재란에 거쳐 한말에서 광복까지 아들과 손자들이 대를 이어 의병 활동을 펼친 곳”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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