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일본 정치의 겉과 속
[정치칼럼] 일본 정치의 겉과 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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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병 정치평론가

8월 15일. 우리는 이 날을 ‘광복절’로 부르지만 일본은 ‘종전기념일(終戦記念日)’이라고 부른다. 전쟁의 성격도 모호하게, 그리고 전쟁의 교훈도 물타기 하려는 듯 그냥 ‘전쟁이 끝난 것을 기념하는 날’로 부르고 있다. 물론 그 배경에는 자신들도 원자폭탄으로 피해를 입었다는 식의 ‘2차대전 피해국’이미지를 강조하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 그러나 그들은 2차대전을 일으킨 범죄국가이며 침략국이다. 따라서 종전이 아니라 패전이 맞는 말이다. 원자폭탄은 그 바탕 위에서 해석돼야 마땅하다.

이 날 일본 도쿄의 치요다구에 있는 부도칸(武道館)에서는 지난 5월 1일 즉위한 나루히토 국왕을 비롯해 아베 총리 등 정관계 인사들과 전몰자 유족 등 약 7000명이 참석해 2차 대전과 중일 전쟁에서 희생된 약 310만명을 애도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이 날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하나마나 한 진부한 얘기들, 이를테면 “세계가 직면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의 발언이었다. 오죽했으면 일본 언론들도 역대 일본 총리들이 언급했던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애도의 뜻’을 아베 총리는 이번에도 언급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즉위 뒤 처음으로 참석한 종전기념일에서 나루히토 일왕은 어땠을까. 나루히토는 2차대전 이후 74을 되돌아본다며 “깊은 반성(深い反省) 위에서 또다시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의 표현이 반갑다는 뜻이 아니다. 상왕인 아키히토도 일왕 재임 때 몇 차례 사과의 뜻을 밝힌 적이 있다. 1990년 5월 당시 일본을 방문한 노태우 대통령에게 그 뜻도 모호한 ‘통석(痛惜)의 염(念)’을 언급한 것도 아키히토였다. 문제는 진정성이며 일관성이다.

나루히토의 이번 ‘깊은 반성’은 ‘진정성’은 약하지만 그나마 ‘일관성’은 있어 보인다. 최소한 아버지 아키히토의 뜻을 부정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을 반성해야 한다는 것인지는 여전히 믿기 어렵다. 아시아 국가들에 대한 침략전쟁 자체를 반성한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수많은 청년들이 전쟁터에 끌려가서 어떻게 죽어갔는지,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납치되다시피 끌려가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나루히토는 제대로 알고는 있을까.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깊은 반성’ 따위의 표현으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바로 그 자리에 ‘정한론(征韓論)’의 상징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가장 존경한다는 극우주의자 아베 총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베야 말로 ‘신정한론자(新征韓論者)’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요시다 쇼인의 후예가 아니던가.

3대에 걸쳐 일본정치의 명문가로 부상한 아베 총리는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일본 정가에서는 ‘평화주의자’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개헌보다는 현 평화헌법으로 가야 한다는 쪽이었다. 그러나 요시다 쇼인의 고향이자 정한론의 본거지인 야마구치현(山口県)의 시모노세키 등 4구를 물려받은 아베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 2차대전 ‘A급전범’인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의 길’을 택했다. 헌법개정을 완수시켜 일본을 재무장함으로써 다시 ‘제국주의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다. 아베가 ‘신정한론자’로 불리는 것도 이런 배경이다. 마침 아베가 한국에 대해 ‘경제침략’을 도발했다. 100여년 전의 총칼이 이번에는 일부 부품과 소재, 장비 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총칼 없는 전쟁이다. 아베의 일본이 앞으로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아베 총리 옆에서 한 술 더 뜨는 인물이 있다. 얼마 전 주일 한국대사를 부른 자리에서 마치 주먹으로 치기라도 하듯이 몸을 앞으로 내밀며 한국 대사의 말을 가로막은 채 목소리를 높이며 한국정부를 향해 ‘무례하다’고 막말을 해댄 고노 다로(河野太郎) 외무상이다. 외교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언행이며 사실상 ‘추태’에 다름 아니다. 그런 그가 오히려 한국을 향해 ‘무례’라는 말을 했으니 그저 기가 막힐 따름이다.

그러나 이런 고노 외무상도 아베처럼 3대에 걸친 일본 정가의 명문가 출신이다. 우리에게 유명한 1993년의 ‘고노 담화(河野 談話)’ 주인공인 고노 요헤이(河野洋平)는 그의 아버지다. 당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은 담화를 통해 위안부 모집과 관리 등에 일본 정부가 개입됐으며 강제성이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리고 상처를 입은 모든 피해 할머니들께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게다가 제대로 된 역사교육을 통해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런 ‘고노 담화’의 주인공 고노 요헤이의 아들이 고노 다로라니, 참으로 믿기조차 어렵다. 아버지 고노 요헤이는 제대로 된 역사적 사실을 아들에게도 가르쳐 주지 못한 셈이다. 이처럼 정치적 기반을 그대로 물려받은 아들이 아버지의 뜻과는 전혀 다른 길을 걷고 있는 지금의 일본 정치, 그렇다면 지금 일본은 어디로 가는 것일까.

일본 정치는 지금 사실상 위기에 처해 있다. 겉으로는 민주주의를 말하지만 이미 내부로부터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있다는 뜻이다. 우선 ‘아베 천하’의 독주를 막을 수단이 없다. 견제와 균형은 낡은 도구일 뿐이다. 의회정치 운운해 봤자 자민당 세상이다. 언론도 통제의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은 그런 정치에 관심조차 없다. 마치 파시즘의 먹구름이 몰려오는 듯 어두침침하고 끈적끈적한 기운으로 꽉 차 있어 보인다. 이번에도 때를 맞춰 한국에 대한 경제침공이 이뤄졌다. 과연 돌파구가 될까, 아니면 자충수가 될까.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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