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박꽃

나석중

이제야 호박꽃을 깨달았다

한 마리 호박벌이 되어서
나 호박꽃하고만 살리라

저 환한 속 깊은 곳으로
나 캄캄하게 실종되리라

귀신도 모르는 무덤되리라

[시평]

이제 여름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것은 이내 곧 무더위가 물러가고 가을의 기운이 서서히 들어찬다는, 그런 예보이기도 하다. 여름 내내 밭에는 호박꽃이 그 노란 모습을 보이며 피어 있었다. 우리는 흔히 못생긴 것을 일컬어 ‘호박꽃’이라고 말하는데, 실은 이러한 이야기에 동의할 수가 없다. 못생겼다니, 천만의 말씀이다. 노랗게 핀 호박꽃은 아름다우며, 또 풍요한 품위마저 지닌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벌들은 꿀 채취를 위해 모든 꽃들을 찾아다니지만, 유독 호박꽃을 좋아하는 듯하다. 호박꽃의 넉넉한 그 깊이 속으로, 또 풍성하게 꿀을 함유하고 있는 그 꽃의 속으로 벌은 온몸을 집어넣고 달디 단 꿀을 딴다. 궁둥이를 밖으로 높이 치켜들고는 열심히 꿀을 따는 호박꽃 속의 벌을 보면, 마치 그 벌이 호박꽃과 무슨 열애라도 하는 듯, 그렇게 보인다. 이러한 벌의 모습을 보고 시인은 ‘이제야 호박꽃이 지닌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라고 노래한다. 그래서 ‘저 환한 속 깊은 곳으로, 나 캄캄하게 실종’되고 싶다고 노래한다. 그래서 호박꽃 속에 마치 꿀을 탐닉하는 벌 마냥 온몸을 파묻고는, 호박꽃 무덤이 되어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술회한다. 이제 머잖아 찬바람이 불어오고, 한여름 풍성했던 모든 것들이 시들어버리고, 호박꽃도 그 풍요로운 모습을 버리고 하나 둘 시들어 떨어지게 되겠지. 그러면 벌들도 또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하여 자신의 집안으로 숨어들어가겠지. 한여름만큼 뜨겁게 사랑을 한 호박꽃과 벌의 열애, 어쩌면 우리의 뜨거웠던 여름의 가장 환한 기억이었는지도 모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