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응하기 위해 대학과 연구계가 나서고 있다. 국내 대학과 연구소는 전문팀을 구성하고 첨단 부품·소재 연구개발(R&D) 과제 발굴, 기술 애로 지원, 이공계 인력 양성 등에 나서고 있다. 카이스트(KAIST)는 지난 8월 5일 일본의 수출 규제에 맞서 전·현직 교수 100여명으로 원천기술 자문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자문단은 반도체·에너지·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기업의 원천기술 개발 자문 역할을 한다.

신성철 카이스트 총장은 “과거 무력이 주도하던 시대에는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 전사였지만 4차 산업혁명 기술 패권 시대에는 과학기술인들이 나라를 지켜야 한다”며 “자문단은 단기적으로는 한·일 무역 전쟁의 ‘119 기술구급대’ 역할을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글로벌 경쟁력을 높이는 데 국가 전위대 역할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지금처럼 연구자들이 단기 과제에만 몰리면 일본 수준의 소재나 부품을 절대 개발할 수 없다”며 “이번을 계기로 우리나라 연구·개발(R&D)의 판을 새로 짜자”고 말했다.

포스텍은 외국 의존성이 높은 소재·부품 분야 기업 지원에 집중하기로 했다. 소재·반도체·철강·에너지·통신 분야 교수 100여명으로 구성된 전문가 풀을 마련, 중소·중견기업 애로 기술 자문역을 시작했다. 일본의 수출 규제 대상인 극자외선 포토레지스트 실험 장비를 갖춘 포항가속기연구소도 관련 기업의 R&D를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서울대 공대는 국내 기업의 소재 기술 국산화를 도울 공과대 교수 320명으로 구성된 특별자문단을 운영한다고 발표했다. 당장 공급 안정화가 필요한 100대 품목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경북대는 공대 교수 120여명 중심으로 기업의 부품 국산화를 돕기 위해 기술국산화지원부를 신설할 계획이다. 영남대, 대구대, 대구가톨릭대, 경일대, 대구한의대 등 경북 지역 5개 대학은 공동으로 일본 수출 규제에 대응할 특별전담팀을 구성, 반도체, 디스플레이, 자동차, 기계금속 등 관련 기업의 긴급 기술을 지원한다.

대전·충남 지역 대학도 최근 일본의 경제 침략 대책 마련을 위한 대학총장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 대학 총장들은 대학이 대덕연구단지 내 정부 정부출연연구기관과 협력해 소재·부품 원천 기술 개발을 위한 산·학·연 협력 강화와 관련 인재 양성에 나서며 부산 동명대도 최근 첨단부품소재 학술세미나를 개최, 일본의 수출 규제 대응에 따른 대학 R&D 과제 발굴에 집중하기로 했다. 한국표준과학연구원은 ‘일본 수출 규제 적극대응 위원회’를 구성, 기업의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신뢰성 평가를 돕는다. 다른 정부 연구소들도 기업이 필요로 하는 특허 기술이 있는지 조사하고 있다.

대·학연구계가 나서 기업의 연구 개발을 지원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국내 과학자들이 총동원돼도 단기간에 국산화 성과를 낼 수는 없다. 일회성에 그칠 것이 아니라 차제에 대·학연구계와 기업 간 상시적이고 항구적인 연구 협력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또한 일본 등 선진국과의 기술력, 가용 인력과 재원의 차이를 인정하고 연구개발(R&D) 전략을 근본적으로 점검해서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 투자가 2017년 4.5%로 세계 1위이지만 연구 논문 편수는 12위다. 연구비의 절대 규모는 일본의 절반에 그치고 미국, 중국에 비하면 6분의 1 수준이다. 연구원 수도 일본의 절반이고 중국에 5분의 1, 미국과는 4분의 1수준이다.

아울러 글로벌 분업 경제 체계에서 우리나라가 모든 것을 국산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고 인력과 재원에서도 불가능하다.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우리 기업이 연구 역량을 집중할 분야를 선택하해야 한다. 또한 중소기업이 기술을 개발하면 대기업이 테스트베드 역할을 맡아야 한다. 해외로 눈을 돌려 선진국의 대학, 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획기적으로 늘려 우리의 부족한 연구 역량을 극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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