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규 대중문화평론가

 

일본제품 불매운동이 한 달이 넘도록 사그라들지 않고, 일본에 보란 듯 그 어떤 불매운동보다 강력하게 요동치고 있다. 이번 아베 총리의 부당한 경제 보복 조치로 한국인들은 큰 분노와 함께 강한 맞대응을 보여주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이미 일본색깔 지우기에 나섰다. 이달 8일 개봉한 일본 영화 ‘도쿄 오아시스’는 개봉한 지 닷새가 지났지만 누적관객수 3493명을 모으는 데 그치고 있다. 지난달 24일개봉했던 애니메이션 기대작 ‘명탐정 코난: 감청의 권’은 가장 성수기인 여름방학임에도 불구하고 21만 8743명을 모으며 흥행에 실패했다. 일본 베스트셀러 원작을 토대로 한 ‘극장판 엉덩이 탐정: 화려한 사건 수첩’은 별점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여기에 일본 소니의 자회사인 소니픽처스에서 투자 배급하는 작품들도 불매 대상으로 거론되며 영화계에서 일본 작품 배제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가에서도 일본 아이템을 자제하는 분위기이다. 기존 여행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일본 곳곳의 맛집과 여행지를 소개하며 시청자들에게 일본의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지만, 경제 보복조치 이후 일본을 소재로 한 스토리는 자취를 감쳤다. 방송, 영화, 게임, 도서 등 국민 정서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문화예술계는 언제까지 일본 아이템을 배척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가 불러온 불매운동 파급력이 들불 번지듯 확산하고 있다. 특히 이번 불매운동은 과거와 달리 1020세대 등을 중심으로 SNS를 통해 정보가 빠르고 쉽게 공유돼 확산 속도와 범위가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되게 넓다. 입시전문업체 진학사가 지난 2~6일 자사 홈페이지에서 고교생 회원 372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전체 응답자 중 78.2%가 불매운동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했다. 청소년들도 SNS를 통해 접한 “한국의 불매운동은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유니클로 본사 임원의 발언에 크게 분노하고 있고 즐겨 마시던 일본 맥주, 즐겨 입던 유니클로 웨어, 즐겨 바르던 일본 화장품 등에 등을 돌리고 있다.

한국의 불매운동에 일본에서도 다양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양국 관계가 더 나빠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소수에 불과하다. 대다수의 일본 국민은 아베를 응원하고 있고 자칫 한국을 잘 모르는 일본인들도 감정에 휩쓸려 한국을 적대시하는 문제가 계속 생겨나올 수 있다. 아베가 원하는 과거의 ‘군국주의’ ‘쇄국정책’의 이데올로기로 돌아간다면 한일 양국의 경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자유무역 틀을 흔들면서 한국을 배척하고 일본을 배척하는 형국은 결국 양국에 손해를 끼치게 된다. 주권의식을 통해 국민이 주인으로서 자발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에서는 동의하나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한일은 최악의 상황을 맞았고, 제조업과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에게는 큰 장애물을 만났다.

일본 여행을 거부하는 일본행 한국 관광객도 급격히 줄어들어 공항공사가 항공분야 위기대응 비상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할 정도로 비상이다. 일본은 작년만 해도 한국인이 가장 많이 방문(754만명)한 국가였으나 국내에서 일본행 여행객이 줄어들면서 한-일 항공 수요 감소 현상이 더 심화되고 있다. 일본의 추가 규제는 미중 무역 분쟁과 글로벌 경제 성장 둔화에 더해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대로라면 올해 경제성장률도 2%를 밑돌 가능성도 커졌다.

주요 상장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이 37% 급감하는 등 기업 실적도 크게 둔화됐다. 급기야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도 일본의 2차 보복으로 한국 기업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아베의 만행이 크게 잘못된 것은 분명하지만, 감정적인 상태로 결사항전의 투지를 불태우는 것은 다시 생각해야 할 일이다. 감정적인 불매운동으로 결국 피해를 입는 건 기업이요, 소비자다. 문화예술계에서도 앞으로 일본과 모든 교류를 끊고, 왕래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본을 배척하고, 드라마, 노래, 공연도 자제해야한다고 몰아가는 분위기는 한일 양국의 아티스트들과 많은 팬들에게 모두 상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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