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난 6일 확정)에 등재된 ‘장성 필암서원’ 전경 항공사진. (제공: 장성군) ⓒ천지일보 2019.8.1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난 6일 확정)에 등재된 ‘장성 필암서원’ 전경 항공사진. (제공: 장성군) ⓒ천지일보 2019.8.1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소재

성리학자 김인후 선생 제향
서원, 공부와 제사기능 접목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조선 시대 유생들의 글 읽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필암서원(筆巖書院, 장성군 황룡면 필암리) 주변은 초록빛 수려한 자연경관에 싸여 있어 신성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서원 앞에는 옛 선현의 신위가 봉안된 장소임을 알리는 ‘홍살문’을 지나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와 마주 선 서원의 정문인 ‘확연루(廓然樓)’가 위엄을 과시했다.

특히 홍살문 왼쪽 땅바닥에 사람들이 말이나 가마를 타고 내릴 때 디딤돌로 사용한 넓적한 돌인 ‘하마석’이 눈길을 끌었다. 기자가 지난 5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지난 6일 확정)등재로 경사를 맞은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년) 선생의 위패가 모셔진 호남 제일(第一)의 서원으로 알려진 필암서원 등 유물전시관을 돌아봤다.

손태자 문화관광 해설사는 조선왕조 500년 격동의 시대를 조명한 깊이 있는 해설을 통해 필암서원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는 여러 조건을 조명했다.

이와 함께 “서당은 공부만 하는 곳이었다면 서원은 공부와 제사의 기능을 수행했다. ‘향교’는 국립학교 개념으로 생각하면 쉽다”고 설명했다.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장성 필암서원 입구에서 한 초등학생이 핸드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3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장성 필암서원 입구에서 한 초등학생이 핸드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3

하서 김인후 선생 제향 ‘사액서원’

필암서원은 성리학자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년)를 제향(나라에서 지내는 제사)하는 사액서원(국가 공인서원)이면서 중앙과 연결된 정치 활동의 거점 역할을 했다.

고려 말 이후 성리학이 확산되면서 선비들은 지방에 서재(書齋)라는 학교를 세우고 자제들을 가르쳤다. 16세기에 사화가 빈번히 일어나자 선비들은 유명한 유학자들을 기리고 제사하는 ‘사당’과 ‘서재’의 교육 기능을 합해 서원이라는 새로운 교육 시설을 만들어냈다.

서원 건립은 지방 선비들이 앞장섰으나 인재양성과 교화정책에 깊이 연관돼 조정에서 서원의 명칭을 부여한 현판과 서적·노비 등을 내렸으니 이를 ‘사액서원’이라 한다.

1550년 이황의 요청으로 명종이 백운동서원에 대해 소수서원이라는 현판과 서적 노비를 부여한 것이 효시가 됐다. 필암서원은 평지에 세워진 서원으로 남북을 중심축으로 해 주요 건물이 들어서 있다. 2층 규모의 확연루를 지나면 청절당과 공부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서재인 숭의재와 동재인 진덕재가 양쪽으로 배치돼 있다. 청절당 앞에는 정장각이 있고, 사당의 동쪽에는 책과 문서를 보관하는 장서각, 목판을 보관하는 장판각, 노비 가운데 우두머리가 거처하는 한장사(汗丈舍)가 있다. 경장각 뒤의 내삼문을 통과하면 제향공간으로서 사당인 우동사(祐東祠)와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다.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안에 보관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년) 선생의 작품집. ⓒ천지일보 2019.8.13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필암서원 유물전시관 안에 보관된 하서 김인후(河西 金麟厚, 1510~1560년) 선생의 작품집. ⓒ천지일보 2019.8.13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

장성군에 따르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심사를 맡은 이코모스(ICOMOS,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장성 필암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서원에 대해 조선 시대 사회 전반에 보편화 돼 있던 성리학의 탁월한 증거이자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하는 등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보유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우리나라 서원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한 유네스코는 지난 6일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장성군의 필암서원을 포함 한국의 9개 서원(남계, 도산, 돈암, 무성, 병산, 소수, 옥산, 서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확정했다.

필암서원 선비학당에서 노자 강의를 하는 노강 박래호(남, 77)선생은 천지일보와 통화에서 “전북 순창 유림들도 장성 필암서원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기뻐해 줬다”며 “서원에 몸담고 있는 저로서도 기쁨을 말로 다 할 수 없다”고 표현했다.

박 선생은 또 “유교의 최고 덕목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이 현 교육에 접목돼 제대로 배운다면 이보다 더 좋은 교육이 없을 것이다. 인간다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윤리·도덕을 일깨워 줘야 우리나라 장래가 밝아질 것”이라고 성리학의 통치이념에 대해 강조했다.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지난 5일 필암서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우동사 앞에서 경장각 쪽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3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지난 5일 필암서원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우동사 앞에서 경장각 쪽을 바라보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3

필암서원을 관리하는 김창봉(56)씨 역시 “이제 후대가 잘 보존해서 꽃을 피웠으면 좋겠다”고 세계문화유산 등재 축하 메시지를 전했다. 휴가차 장성에 왔다는 김성진(56, 전주시 완산구)씨 일행은 “손태자 문화관광해설사의 설명을 듣고 보니 이곳이 과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게 당연한 일이었다”고 공감했다. 손 해설사는 “이곳은 봉황이 편지(좋은 소식을 전한다)를 물고 있는 모양의 명당지”라고 귀띔했다.

김인후 선생은 올곧은 성품과 청빈함이 마치 추수빙어(秋水氷魚) 즉 ‘가을 물에 얼음과 같았다고 한다. 신라~조선시대 2000년 역사 중 문묘(성균관 대성전)에 배양된 호남인물이 딱 한사람, 그가 바로 동국 18현인 도학자(道學者) 김인후 선생이다. 손태자 문화관광 해설사는 “필암서원이 없었다면 하서 선생이 문묘에 배양 됐을지 생각해 봐야 한다”며 “그 뒤에 유림이 있었고 울산 김 씨 문중의 어른들과 후학들이 본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한편 유두석 장성군수는 “장성 필암서원을 비롯한 한국 서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는 장성군을 넘어 대한민국의 큰 경사”라며 “문불여장성(학문으로는 장성만한 곳이 없다)의 자랑스러운 전통을 전 세계인과 후손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념사업을 내실 있게 추진해 나가겠다”고 밝힌 바 있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지만 잠시 세속의 시름에서 벗어나 선현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는 것도 좋겠다.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장성 필암서원입구 확연루. ⓒ천지일보 2019.8.13
[천지일보 장성=이미애 기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장성 필암서원 입구 확연루.   ⓒ천지일보 2019.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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