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감옥에 구금되었던 배화여학교 생도 6인. (제공: 인천대학교) ⓒ천지일보 2019.8.13
서대문감옥에 구금되었던 배화여학교 생도 6인. (제공: 인천대학교) ⓒ천지일보 2019.8.13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인천대가 13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550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했다.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에 앞선 이날 오전 인천대 중국학술원 회의실에서 이태룡 박사(인천학 초빙연구위원)를 중심으로 ‘독립유공 대상자 550명 포상신청 설명회’가 열렸다.

이날 설명회에는 조동성 총장과 순국선열유족회(회장 이동일) 임원과, 지광회(회장 김기봉) 임원 및 독립기념관 전영복·서보현 이사, 독립유공자 대상자인 자녀와 손자 등이 참석했다.

이 박사는 설명회에서 “3·1 만세시위에 참여했다가 무더기로 피체돼 1.1평(3.63㎡) 감옥에 16~17명을 구금돼 있었다”며 “한 사람 눕기도 좁은 곳에 이 많은 사람을 구금해 놓은 것은 끔찍하고 치욕적인 형벌 이었을 것”이라며 개탄했다. 이어 “이것도 부족해 심한 매질을 가하면서 많은 사람을 숨지게 한 일본 경찰의 만행이 평안도, 함경도, 황해도 지역 애국지사들의 상고이유에 많이 드러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국가보훈처 포상신청 대상자에는 판결문이 없는 두 분의 독립군 후손이 참석했다.

석주(石洲) 이상룡(李相龍) 선생이 이끈 군정서(軍政署:통칭 서로군정서)의 통의부(統義府)와 정의부(正義府)에서 반일무장투쟁을 벌인 임인호(林仁昊) 선생의 따님 임희숙(80, 대구) 여사다.

임 여사는 “어머니께서 40여 년 동안 선친이 남긴 쪽지를 들고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했지만 계속된 반려로 가슴에 한을 품은 채 돌아가셨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함께 참석한 임 여사의 딸인 김은옥(54, 인천)씨는 “국가보훈처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어머니께서는 더 안 될 것 같다며 ‘포기해야겠다….’고 손때묻은 서류뭉치를 저에게 주셨다”며 “어느날 TV 이 박사가 나온 프로를 보고 장문의 편지를 보낸 후 박사님으로부터 연락을 받게 돼 선친들의 한을 풀게 됐다”고 했다.

또 한 분은 광복군 제2지대 이범석·노태준 부대에서 활약했던 독립군 출신 조상학(趙相學, 경상도) 선생의 따님 조용자(66, 서울) 여사로 “아버지의 자료가 ‘독립기념관’에 보관돼 있던 것을 최근에 알게 됐다”며 “일본군에 강제 징집돼 간도지방에 파견됐다가 탈출하셨다. 광복군 대열에 서서 조국 광복을 위해 일조했던 부친의 생전에 포상을 받아 기쁘게 해 드리려 했지만 지난달 27일 향연 97세를 일기로 별세하셨다”고 눈물을 보였다.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인천대가 13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550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했다. 이날 오전 인천대 중국학술원 회의실에서 설명회를 연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3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인천대가 13일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 550명을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 신청했다. 이날 오전 인천대 중국학술원 회의실에서 설명회를 연 뒤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3

먼저 지난 6월 1일 ‘제9회 의병의 날’을 맞아 인천대는 의병투쟁 유공자 187명과 의열투쟁 유공자 28명 등 215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신청을 한 바 있다.

이렇듯 광복절을 맞아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국가보훈처에 포상을 신청한 것은 인천대의 민족정기 세우는데 가속도가 붙었음을 실감나게 했다.

여기에는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가 조동성 인천대 총장의 왕고모(아버지의 고모)인 관계로 독립유공자 발굴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이 가운데 최용규 전 국회의원이 인천대학교 법인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본격적인 독립유공자 발굴에 이 박사를 연구위원으로 초빙하게 된 것이다.

이번 포상신청 대상자는 3·1혁명 유공자 382명과 간도와 함경도 지역을 중심으로 반일투쟁을 전개했던 유공자 168명 등이다. 전체 550명 중 2명을 제외하고 모두 판결문을 증거자료로 제출했다. 그 서류가 무려 2만 500여 장이다.

포상신청 대상자 중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인물은 배화여학교(배화여고 전신) 6명이다. 이들은 1920년 3월 1일 3·1혁명 1주년을 기념해 학교 뒤편 언덕과 교정에서 만세시위를 벌이다가 피체돼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전신)에서 곤욕을 치른 학생들로 밝혀졌다. 당시 24명 중 아직 포상을 받지 못한 6명은 판결문과 함께 서대문감옥에서 촬영된 사진자료를 발굴해 이번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또 북한 지역 출신이 전체의 2/3가 넘고, 특히 일제에 맞서 반일투쟁을 벌였던 분들은 간도와 함경도를 드나들었던 지역적 특성으로 인해 대부분 함경도 출신인 것이 특이하다.

그중에서 간도 왕청현에서 대한군정서(大韓軍政署) 모연대장(募捐隊長)으로 활약하던 최수길(崔壽吉)이 일본군에 피체돼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그 아들 최령(崔嶺)은 조봉암 선생 등이 발기한 고려공산청년회에 가입, 독립군 자금을 모으다가 피체돼 오랜 구류생활 끝에 징역 8년이 선고되는 등 그 아버지에 그 아들을 발굴, 포상을 신청했다.

이 자리에서 ‘고려인’의 국적회복을 위해 수년 동안 애쓴 끝에 우크라이나에 ‘고려인 촌’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국립인천대학교 학교법인 최용규 이사장은 “저희 인천대학은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기 위해 국내의 각종 기록이나 판결문은 물론 연변대학과 연계해 독립유공자의 행적을 발굴·포상을 신청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동성 총장은 “독립유공자 발굴은 한참 늦었지만, 인천대학에서 앞장서서 매년 수백, 수천 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하여 민족대학으로 거듭나게 하겠다”고 했다.

독립유공자 발굴 방향을 묻는 질문에 이태룡 초빙연구위원은 “평안도, 황해도 재판기록은 고등법원(현 대법원)의 기록뿐이고, 함경도 지방은 1심(원심) 재판기록을 볼 수 없는 한계도 있지만, 남한의 재판기록조차 아직 70% 이상 공개하지 않아 독립유공자의 공적을 찾기에 많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하루빨리 그것이 공개되어야 하고, 국가보훈처에서도 보다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수많은 포상 대상자를 신속하게 심의해 주기를 간절히 요망한다. 그리고 서대문감옥(서대문형무소) 등에 사진자료만 남아 있는 분들 가운데 수백 명이 아직 포상이 안 됐지만 내년 3월까지는 자료를 발굴하여 모두 포상신청을 할 것”이라고 다짐하였다.

한편 인천대에서 독립유공자 발굴단을 이끄는 이태룡 박사는 20여 편의 논문과 ‘한국 의병사(상·하)’ 등 38권의 단행본 출간 및 그동안 1700여명의 독립유공자를 발굴해 포상신청을 한 바 있는 저명한 의병연구가이다.

포상신청자 대상. (제공: 인천대학교) ⓒ천지일보 2019.8.13
(제공: 인천대학교)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