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강제개종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김연철(가명, 사진)씨가 자신이 겪은 개종상담에서 납치와 감금이 있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1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강제개종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김연철(가명, 사진)씨가 자신이 겪은 개종상담에서 납치와 감금이 있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1

“모친 출석교회 사모‧전도사가 ‘이단상담’ 명목 직접 개종상담”

충북 청주 시골마을 빈집에 끌려가 납치감금 13일만에 탈출

모두 잠든 사이 나무판자 창문 뜯어내고 탈출… “깊은 상처”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그 집은 문과 창문이 모두 못질돼 있었고, 제가 머물 방은 창문이 나무판자로 가려져 있었어요. 문은 밖에서 자물쇠로 채워서 나갈 수 없게 해놨고요.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2년을 살 작정을 하고 왔다고요. 가족들은 제 두 손을 결박했고, 얼굴에 가져다 댄 전화기 너머로 어머니가 출석하는 교회 사모 목소리가 들렸어요. 개종교육을 받으라는 강요였어요.”

강제개종 피해사례가 또 발생했다. 이미 강제개종 과정에서 살인사건까지 발생한 적이 있지만 이렇다할 대책이 부재한 상황에서 강제개종은 곳곳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다. 이번 피해자는 건장한 20대 후반의 남자 청년이었다. 그간 약자로 분류되는 여성과 미성년을 대상으로 강제개종이 대부분 벌어졌다면, 이번엔 키 180에 80㎏에 달하는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다.

피해자의 약점인 가족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한 후, 소위 ‘이단상담’이라는 명목으로 가족들을 앞세워 작정하고 진행한 이 강제개종은 건장한 성인 남성도 피하기가 어려웠다. 시골 외딴 곳에 방치된 집에 감금돼 개종을 강요받다가 가까스로 탈출한 김연철(가명, 28, 남, 대전시 서구)씨를 최근 만나 그가 겪은 강제개종을 들어봤다. 김씨는 자신이 겪은 개종교육이 물리적인 폭행만 이뤄지지 않았을 뿐 강제적이며 억압적으로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설치된 현관문에 밖에서만 열 수 있도록 이중으로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비밀번호 잠금장치가 설치된 현관문에 밖에서만 열 수 있도록 이중으로 잠금장치가 설치돼 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 강제개종 흔한 수법 ‘납치’ ‘차량 환승’

김씨의 설명에 따르면 원래 가족은 화목했다. 김씨는 2015년 신천지교회에 입교했고, 부모가 이 사실을 안 것은 2017년이다. 2015~2017년까지는 김씨가 신천지교회에 다니면서도 가족의 화목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김씨는 더 노력했다. 김씨의 가정의 평화가 깨지기 시작한 때는 부모가 김씨의 신천지교회 출석 사실을 알게 된 후다. 김씨의 어머니는 신천지교회를 배타시하는 기성교회에 출석하고 있었고, 교회에 김씨의 상황을 알리면서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심각해졌다.

결국 지난 7월 4일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김씨는 부모님과 형 등 가족 4명이 모두 모여 식사 후 차량으로 이동 중이었다. 차 트렁크에 숨어 있던 이모부와 옆에 앉아 있었던 형에게 김씨는 갑자기 제압을 당했고, 강제로 다른 차량에 환승해야 했다.

강제개종 피해자들의 인터뷰에서 그간 주로 등장했던 개종 장소로의 이동 수법이다. 이 과정에서 김씨는 휴대폰 등 소지품을 전부 빼앗겼고, 옷도 강제로 갈아입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김씨 가족과 이모와 이모부 등 6명이 도착한 곳은 충북 청주시 흥덕구 시골마을의 한 빈집이었다. 문에는 도어락 뿐만 아니라 별도의 잠금장치가 달려 있어서 전부 외부에서 잠글 수 있도록 돼 있었다. 베란다 창문은 열 수 없도록 못질이 돼 있었고, 김씨에게 들어가라고 한 방의 창문은 심지어 나무판자로 덧대져 있었다. 밖에서 방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명확히 읽혔다. 방 안에는 매트리스와 서랍장 하나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김씨가 갇혀 있었던 빈 집의 베란다 창문에 잠금장치를 열지 못하도록 나사 못이 박아져 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김씨가 갇혀 있었던 빈 집의 베란다 창문에 잠금장치를 열지 못하도록 나사 못이 박아져 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김씨가 갇혀 있었던 빈 집의 방문에 안에서 열 수 없도록 바깥에 이중으로 자물쇠를  달기 위해 설치된 이중 경첩. 실제로 김씨는 이 문을 열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김씨가 갇혀 있었던 빈 집의 방문에 안에서 열 수 없도록 바깥에 이중으로 자물쇠를 달기 위해 설치된 이중 경첩. 실제로 김씨는 이 문을 열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그는 이곳에서 어머니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듣게 됐다.

“2년 계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2년 살 작정을 하고 왔다고요. 이미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했고, 쌀도 많았어요.”

김씨는 이곳에서 가족들에게 개종상담을 받으라는 강요를 받았다. 개종상담을 받지 않으면 나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빈집에 도착한 지 나흘만인 7월 8일 그는 가족들에게 두 손을 결박당한채 어머니가 얼굴에 가져다 대는 휴대폰으로 통화를 해야 했다. 통화 상대는 어머니가 출석하던 A교회의 B사모였다. 이 사모는 상담에 성실히 임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다.

◆ “개종 상담자, 반박‧저항 용납 안해”

통화 후 반감이 생긴 김씨는 부모와 실랑이를 했다. 그러나 부모의 완강한 요구에 그는 교육기간을 3일로 한정하는 것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그러나 상담시 반항적인 태도는 용납지 않겠다고 하는 요구에 김씨는 거세게 항의했다. 통화 후 금방이라도 찾아올 것 같았던 B사모는 일주일이 다 돼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B사모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김씨가 갇혀 있었던 빈 집의 창문에 잠금장치를 열지 못하도록 나사 못이 박아져 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김씨가 갇혀 있었던 빈 집의 창문에 잠금장치를 열지 못하도록 나사 못이 박아져 있다. (제공: 강제개종 피해자 김연철씨) ⓒ천지일보 2019.8.11

B사모가 나타난 때는 김씨가 감금된 지 12일째인 7월 15일이었다. B사모는 교회 C간사와 D전도사를 대동하고 나타났다.

감금장치가 설치된 집을 보고도 B사모와 C간사, D전도사 등은 놀라지 않았다. 자연스러웠다는 설명이다. 김씨는 이들을 향해 자신은 교육을 3일만 듣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개종을 담당하던 B사모는 그런 교육은 진행할 수 없다고 말하며 교육을 강행했다.

B사모 등은 자신의 간증을 이야기했고, 김씨는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자 B사모 측은 김씨에게 긍정적인 답변만 해야 한다고 강요했다는 주장이다. 김씨의 강한 거부반응에 결국 B사모 측은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B사모 등이 돌아가고 난 후 가족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 김씨는 잔뜩 화가 난 부모를 안정시키기 위해 다시 상담을 받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탈출할 기회를 엿보기 시작했다.

이튿날 김씨는 이모가 외출하고 부모가 잠이 든 사이에 탈출을 감행했다. 창문에 덧대어 있었던 나무판자와 창문을 뜯어내고 몸을 던졌다. 그는 무조건 도로 쪽으로 달렸다. 이 과정에서 신발도 벗겨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지나가는 차를 세워 도움을 요청하려 했으나 아무도 멈추질 않아 그는 절망하기도 했다. 김씨가 탈출한 것을 발견하고 뒤쫒아온 아버지를 피해 달리던 그는 엠뷸런스가 보이자 결심한 듯 차 앞에 나섰다. 놀라서 내린 엠뷸런스 기사에게 종교 때문에 감금됐다고 말하며 경찰에 신고해달라고 했고, 곧 경찰이 출동했다.

김씨는 경찰과 함께 갇혀 있었던 빈집으로 갔고, 집의 자물쇠들은 빼져 있었다. 김씨가 있었던 방만 열려 있고 다른 방은 들어가지 못하도록 잠겨 있었다. 경찰은 경칩만 볼 수 있었다.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강제개종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김연철(가명, 사진)씨가 자신이 겪은 개종상담에서 납치와 감금이 있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1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강제개종 피해를 입었다고 밝힌 김연철(가명, 사진)씨가 자신이 겪은 개종상담에서 납치와 감금이 있었다고 인터뷰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11

“경찰분들이랑 있었던 이야기를 하고, 종교적인 이유로 감금됐다고 하니까, 일단 펜션으로 아빠랑 저를 데려갔다. 감금한 사실을 경찰들에게 들키면 안되니 자물쇠는 다 빼놨더라. 최대한 감금 안한 척 하려고 했다. 경찰이 가족과 이야기하는 것을 거리가 좀 있어서 제대로 다 듣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이라도 이렇게 (감금)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경찰에게 나가겠다는 말을 한 후 김씨는 그 악몽같은 집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감금된 지 13일만인 7월 16일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차분한 성격으로 보이는 김씨는 시종일관 차근차근 자신이 겪은 일을 설명했다. 그는 가족들이 전면에 내세워진 상황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가족 간에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납치 당시 크게 저항하지 않고 일부러 결박을 당해줬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또다시 감금될 수 있다는 위협 때문에 현재 부모님과 함께 거주하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다시 예전처럼 화목했던 부모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연락을 수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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