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홍진. (제공: 인천시) ⓒ천지일보 2019.8.8
독립운동가 홍진. (제공: 인천시) ⓒ천지일보 2019.8.8

1946년 비상국민회의가 건립한 묘비 전시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 진행 중

[천지일보 인천=김미정 기자] 인천시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체인 한성정부의 조직을 결의한 날을 기념해 독립운동가 만오 홍진을 추모하는 작은전시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에서 1946년 장례 당시 비상국민회의가 건립한 묘비를 전시한다고 8일 밝혔다.

시에 따르면 홍진은 한성정부를 수립한지 27년 만에 인천으로 돌아왔고, 그의 유언에 따라 선영이 있는 문학산 자락에 잠들었다.

이 묘비는 38년간 홍진의 묘소를 지키다가 1984년 서울 국립묘지로 이장(移葬)할 때에 박물관으로 옮겨온 것으로, 옥외전시를 마친 후 수장고에 보관한 지 15년 만에 공개된다.

오는 10월 27일까지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할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과 공휴일 다음 날은 휴관한다. 관람료는 무료다.

한성정부는 전국 각 지역의 대표자대회를 통해 수립된 임시정부로, 독립운동의 구심점이자 오늘날 대한민국의 시작점인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체이다.

홍진(洪震, 1877~1946년)은 한성정부의 산파 역할을 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수반과 임시의정원을 이끌었던 독립운동가다.

대한제국 법관양성소 출신의 변호사이기도 했던 그는 3·1운동을 경험한 후 한성오·이규갑 등 동료들과 회합, 근대적인 민주공화정체의 정부를 수립하기로 하고, 자신의 선영(先塋)이 있는 만국공원(萬國公園, 지금의 자유공원)에 전국 13도 대표자대회를 열기로 했다. 

1919년 4월 2일 경기 지역과 주요 종교단체의 대표 20여명이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피해 한 자리에 모였다.

인천시립박물관 작은전시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 전경. (제공: 인천시) ⓒ천지일보 2019.8.8
인천시립박물관 작은전시 ‘만오 홍진, 100년의 꿈을 쓰다’ 전경. (제공: 인천시) ⓒ천지일보 2019.8.8

대표들은 민주제와 대의제(代議制) 등 오늘날의 헌법적 가치가 담긴 약법(約法)을 내걸고, 이승만을 집정관총재로 추대한 뒤 각 지역 국민대표의 이름으로 ‘한성정부’가 결의됐다.

이어 그달 23일 서울 종로에서 ‘국민대회 취지서’와 ‘국민대회 선포문’을 배포함으로써 널리 선포했다.

정부수립운동은 이외에도 곳곳에서 일어나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대한국민의회’등의 임시정부가 생겨났다. 홍진을 비롯한 한성정부 요인들은 이 소식을 접하고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 힘을 보탰다.

1919년 9월, 독립운동가들은 국내에서 국민의 뜻을 모은 정통성을 인정해 ‘한성정부’를 중심으로 세 임시정부를 통합한 뒤 마침내 독립운동의 구심점인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범한 것이다.

한성정부의 정부조직안과 약법을 그대로 따른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세계로부터 독립국임을 인정받기 위한 외교활동과 무장 투쟁·의열 투쟁·한국광복군 창설 등 다양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홍진은 그 가운데 임시정부의 수반인 국무령을 맡는 한편 지금의 국회의장인 임시의정원 의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며 민주공화정과 의회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광복 이후에는 비상국민회의 의장직을 맡아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애썼지만, 결실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묘비 외에 한성정부 국민대회 취지서 및 선포문,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의정원장으로서 홍진의 업적을 재조명할 수 있는 사진과 유묵(遺墨) 등을 만나 볼 수 있다.

시립박물관 관계자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임시정부로부터 비롯됐으며, 그 모체는 한성정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며 “자유롭고 평등한, 통일 민주공화국의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일제강점기라는 가장 엄혹한 시기에 100년의 꿈을 처음 써내려갔던 홍진을 기릴 수 있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성정부 국민대회 선포문(독립기념관 제공, 인천시) ⓒ천지일보 2019.8.8
한성정부 국민대회 선포문(제공: 인천시) ⓒ천지일보 20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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