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텍사스 주 경찰이 앨패소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로 21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21)를 체포했다. 사진은 총을 들고 앨패소의 대형 마트에 진입 중인 크루시어스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 장면(출처: 뉴시스)
미국 텍사스 주 경찰이 앨패소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 사건의 용의자로 21세 백인 남성 패트릭 크루시어스(21)를 체포했다. 사진은 총을 들고 앨패소의 대형 마트에 진입 중인 크루시어스의 모습이 담긴 폐쇄회로(CC) 장면(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온유 객원기자] 미국 정치권에서의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이 만연한 사회, SNS와 온라인을 통해 잘못된 정보와 혐오들이 뭉쳐져 미국사회에서의 총기사고는 전혀 멈추지 않고 있다.

최근 미국 텍사스와 오하이오주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주말 사이 29명이 숨지면서 미국에서 자국민에 의한 테러, 특히 백인우월주의, 인종차별주의에서 기인한 혐오 범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가디언은 “백인 민족주의자들은 이민자와 혼혈인종을 ‘침략자’라고 인식하며, 백인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범죄자들 대부분이 이전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범행으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진술하고 미국은 백인의 나라라는 고질병을 가지고 있어 서로가 온라인을 통해 정보를 공유하고 범행을 부추기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에서 국토안보부 차관보를 지낸 줄리에트 카옘도 사건 직후 워싱턴포스트(WP)에 비슷한 분석을 내놓았다.

카옘은 “백인 민족주의자들이 온라인을 통해 그들의 분노를 극대화하고,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힘을 얻는다”며 “과거 홀로 내재하고 있던 다른 인종에 대한 분노를 범죄를 통해 표출하는 외로운 늑대와는 다른 형태의 혐오범죄가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백인들이 수적 열세에 빠지면서 사회 주류에서 밀려날 수 있다는 공포감 때문에 거부심리가 크다는 것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연방수사국(FBI)의 조사를 인용해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테러 중 극단주의적 이데올로기에 영향을 받은 백인 남성들에 의한 테러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현재 FBI에서 수사 중인 테러 사건 850건 중 약 40%가 인종적 동기를 가진 극단주의자의 소행이며, 이들 중 대다수가 백인우월주의자라고 설명했다.

지난 5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주말 사이 벌어진 총격 사건과 관련해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모든 미국인은 인종주의와 편견, 백인 우월주의를 규탄해야 한다”면서 “이런 사악한 이념은 반드시 물리쳐야 한다”고 말했지만, 총기규제만큼은 소극적 행동을 보이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 많은 미국인들은 신뢰하지 않고 있다.

트럼프 스스로도 종종 인종차별적 언행을 보이고 백인 우월주의 성향 단체들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미국총기협회(NRA)의 눈치를 보고 있는 미국 민주당 대선주자들도 총기 소유에 관한 규제를 강화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곤 있다.

코리 부커(뉴저지) 상원의원은 6일(현지시간) 고향인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적인 총기 소유 면허 프로그램을 신설하겠다고 공약했다. 이는 총기 소유자들을 연방정부 차원에서 데이터베이스로 관리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카말라 해리스(캘리포니아) 상원의원도 의회에 100일간의 시간을 주고 총기 소유자 및 소유 면허 갱신자에 대해 일반적인 전력조회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도록 하겠다고 공약했다.

각종 선거에서 대체로 총기 소유자의 권리를 옹호하는 공약을 내걸었던 공화당 주자들과는 달리, 민주당 대선주자들은 내년 대선을 염두하고 국민의 눈치도 보고 총기협회의 눈치도 보며 확실한 규제책이 없고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총기 규제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미국에서는 총기규제 강화 목소리가 높아질 때마다 총기소유 옹호론자들은 “총을 쏜 사람의 정신건강 문제지, 총은 무죄”라는 논리로 맞서왔다. 하지만 호주에서는 1996년 강력한 총기 수거정책을 펼쳐 총기 사망자가 극적으로 줄어들었다.

1996년 4월 마틴 브라이언트(28)가 남부 타즈마니아섬 관광지의 한 카페에서 반자동 소총을 난사해 35명이 사망했다. 그후 호주 정부는 모든 총기를 수거했고 국민이 보는 앞에서 ‘총기무덤’을 불태웠다. 지금 호주는 일반소총의 소지는 신고제이며 권총은 허가제이다.

호주는 사막 지대가 많은 내륙에서는 야생동물의 침입이 잦고, 국토가 넓기 때문에 일반 소총은 자위 차원에서 신고하면 된다.

벨기에는 정부의 허가가 있는 공식 딜러를 통해서만 총기의 구입이 가능하다. 네덜란드 등 유럽의 다수의 나라는 총기소지를 허가제로 해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

미국은 세계 어떤 나라보다 개인 총기 보유율이 높다. 국제무기조사기관 ‘스몰 암스 서베이’의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 100명중 89명이 총기를 소지하고 있으며 미국 민간인들이 전 세계 소형 총기의 40%에 가까운 3억 9300만정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미국에서 2017년 한 해 동안 4만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총기로 사망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24일(현지시간)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국 오하이오주 컬럼버스에서 24일(현지시간) 총기규제를 촉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출처: 뉴시스)

미 질병통제예방본부(CDC)에 따르면 2017년 한해에만 미국인 3만 9773명이 총으로 살해됐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는 어느 나라보다 총기규제가 느슨한 미국에서 10만명 당 12명이 총기로 사망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칼럼에서 “미국 역사에서 발생한 모든 전쟁에서 사망한 미국인보다 1968년 이후 총으로 인해 사망한 미국인 숫자가 더 많다”며 “미국 어린이들은 다른 선진국 어린이들보다 총으로 인해 사망할 가능성이 14배나 높다”고 경고했다.

미국 현지에서는 총기구입이 비교적 쉽다. 구글과 아마존 사이트에서는 소총 탄창을 판매하고 있다. 구글 쇼핑 사이트에는 탄환 20개들이 방어 세트가 31달러 25센트(약 3만8000원)에 판매되는 등 산탄총 탄환 박스가 판매 목록에 올라 있다.

미국인들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는 총기사건에 대해 생각 이상의 큰 공포감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메릴랜드에 살고 있는 한나(27, 여)는 이번 총기사건에 대해 “정말 집밖을 나가기가 겁이 날 정도다. 7살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있지만 학교에서 혹시 총기사고가 나지는 않을까 항상 걱정하며 살고 있다”며 “이번 오하이오 총기사건은 엄마와 여동생이 살고 있는 곳에서 불과 자동차로 30분 거리에서 발생된 것이다. 총기규제에 대해 트럼프 행정부는 명확한 답을 내놔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인들은 요즘 2001년 9.11 테러 이후 아프가니스탄이나 전장에 있는 미국인 병사들보다 미국내에 거주하는 미국시민들이 총기로 더 많이 죽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며 현지 상황을 전했다.

미시간에 거주하고 있는 메간(34, 여)은 “왜 총기가 필요한지 여전히 이해가 안간다. 더 강력한 총기규제가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미국총기협회(NRA)의 눈치를 보고 있고 로비를 받고 있는 정부와 의원들이 과연 실행에 옮길까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애리조나에 살고 있는 엘리자베스(37, 여)는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엘리자베스는 “최근 자주 발생하고 있는 총기사건에 많은 희생자들이 늘어나는 건 슬픈일이다”며 “새로운 총기규제법이 나와야되는 것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지키는 총기 소유에 대해서는 우리의 권리이기 때문에 총기소유는 필요하다”는 반대 입장을 던졌다.

이번 텍사스, 오하이오 총기사건과 관련, 트럼프 대통령은 총기 소지를 규제하겠다는 방안 대신 대량 살상 가해자들이 신속히 처형될 수 있도록 새로운 법을 추진하겠다고 밝혀, 한발뒤로 물러서는 모습이다.

대통령과 의원들의 강력한 총기규제 법안 없이는 미국총기협회(NRA)는 앞으로도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요 정치인과 지지세력을 포용할 것이라고 미국인들은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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