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현 정부 출범 후 국민이 기대했던 관심사는 정치에서의 구태를 완전히 청산하고 침체된 경제의 회복이었다. 구태 청산은 박근혜 정부에서 발생된 갖가지 비리의 발본색원을 통해 책임질 사람은 책임지고, 잘못된 제도는 새롭게 고쳐 다시는 권력형 비리가 정치권에 빌붙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그 요체였다. 또 경제회복은 지난정부가 해결해내지 못했던 경기 부진을 혁신적인 경제정책으로 내수경기를 진작시키고 국민생활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이 핵심이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 내내 전 정부의 잘못을 파헤쳐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고위직을 지낸 관련자들이 사법 처리돼 대부분 유죄 확정판결을 받거나 계류 중에 있다. 관련 자들이 유죄판결을 받은 그 자체가 위법했다는 증명인바, 한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권력 실세인 대통령과 국정원장 등이 오랫동안 재판받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많은 국민들은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을 것이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겠지만 막강한 권력을 기화로 불법을 휘둘렀던 권력자들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연민의 정도 느꼈을 것이다.

고위공직자들의 지루한 재판 과정을 지켜본 많은 국민은 비록 몇몇 사람이지만 정부 관료들이 잘못을 저질러 처벌받는 그 사실에서, 응당 그들이 가져야 했던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더 한층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또 현직에 있는 고위 공직자나 사회지도층 인사들도 직무를 수행하면서 자신을 짚어보는 계기가 됐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것이 지난 2년 넘게 구태 청산과 관련된 전반적인 사회분위기라 할 수 있다.

정부고위직으로 있으면서 직위를 이용한 권력남용으로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거나 국고에 손실을 끼쳤으면 그 위법자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처벌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긴 해도 장기간 전 정부의 잘못을 캐내고 재판받는 과정을 실시간 또는 뉴스 때마다 보도되는 데 대한 역작용도 따른다. 그래서인지 사회분위기는 누구든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있겠느냐? 정도의 문제라며 그 당사자들이 처벌받았으면, 잘못된 제도를 고쳐 다시는 그러한 일이 발생되지 않도록 하자는 것이고, 이제는 새로운 사회분위기에서 국민 삶을 누리자는 의견이 팽배하다.

많은 사람들은 국정농단 등 지금까지 들추어진 전 정부의 비리를 알고서 당시 박근혜 정부와 여당인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을 탓했다. 그렇긴 해도 사법처리를 받은 비리 당사자 개인보다는 정치 조직체로서 한국당의 책임이 큼을 질타하기도 한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획득하는 게 목적이기도 한데, 얼마나 보수정권이 잘못했고, 민심을 잃었으면 정권이 넘어갔을까. 이 점만 봐도 한국당은 뼈저리게 느끼면서 구태 청산에 앞장서서 국민들의 마음을 되돌릴 생각을 가져야함에도 그렇지 못해 사회여론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낮은 편이다.

대선과 총선에 연이어 참패한 후에 핵심 당직들뿐만 아니라 당원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며 환골탈태해야 당이 살아날 수 있다며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몇 차례 우여곡절을 거쳐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졌고, 이제 가까스로 황교안 대표 체제로 정착이 됐다. 그랬으면 반성하고 민심이반을 가져왔던 원인으로 작용된 구태정치의 적폐들을 잘 헤아려 당내 쇄신이 먼저였지만 그들은 유야무야했다. 직전정부 여당으로서의 책임감을 느껴야 함에도 누구하나 책임진 정치인이 없었다. 그런 상태로 대여투쟁에 매달렸던바. 제1야당으로서의 야성을 살린다는 명분이었지만 의정활동 포기에 가까운 정략으로 국회공전의 책임을 져야했다. 또한 선거법 개선 등 패스트 트랙 처리 과정에서 많은 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을 위반하는 위법을 저지르고 말았다.

현시국은 정치분야 뿐만 아니라 외교안보, 경제정책에서 구멍이 뚫린 거나 다름이 없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후 3년을 맞이했지만 경제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국민가계 빚은 늘어나고 영세기업에서는 살 길조차 막막한 지경이다. 그렇다면 제1야당으로서 한국당은 당당히 국회를 운영해 정부의 경제 실정(失政)을 질책하고 대안을 만들어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을 준비해야함에도 그렇지 못하고 강성보수만 주장했던 것이다. 당내 혁신을 통해 심기일전하고 민생법안 처리 등 적극적인 의정활동으로 이반된 민심을 돌려야 마땅한대도 끝내 실기하고 말았다.

당내뿐만 아니라 한국당에 관심사를 보이는 보수층에서마저 원내 전술전략 부재를 탓하고 있다. 원내정당과 국회의원들의 터전은 어디까지나 국회이다. 문재인 정부의 경제 실정 등 호재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국회 운영을 포기한 꼴이니 그것이 제1야당의 한계로 보인다. 초창기와는 달리 국민들은 이 정부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는 ‘적폐청산’ 구호에 지쳐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당에 긴요한 것은 제1야당으로서 대접받기와 기득권 주장보다는 국민을 위한 적극적인 의정활동을 통해 제1야당의 결기를 다지는 대의(大義)의 행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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