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작가/문화칼럼니스트

 

TV가 귀하던 시절이 있었다. 동네 구멍가게에서는 과자를 사면 TV를 볼 수 있게 해 주었고, TV가 있는 집 안방은 동네 사랑방이 되곤 하였다. 여름밤이면 동네 사람들이 평상에 둘러 앉아 함께 TV를 봤다. 동네에서 TV가 있는 집 아이는 골목대장을 할 수 있었다. 혹시 녀석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아이들은 TV 있는 집 아이 눈치를 살폈다.

살림살이가 나아지면서 집집마다 TV가 생겼다. 집안마다 TV 한 대씩 거의 다 들어온 게 30년 전이다. 88올림픽이 열린 다음해인 1989년이다. 우리나라에 TV가 처음 선보인 게 1966년, 지금은 LG로 이름을 바꾼 럭키금성에서 생산한 것이다. 세탁기도 1969년 나온 럭키금성 것이 최초다.

학교에서는 ‘집에 TV 있는 사람 손들어’ ‘전화기 있는 사람 손들어’ ‘세탁기 있는 사람 손들어’ 하던 시절이었다. 전화기나 세탁기, TV가 있는 집 아이들이 주로 반장을 했다. 학교라는 게 그랬다. 밤늦게까지 TV를 보지 말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한다고 가르치기도 했다.

TV는 주로 거실에 놓였다. 가족들이 한데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니 자연스럽게 그리된 것이다. 누가 방문이라도 하면 먼저 눈에 띄는 게 거실의 TV였다. TV가 그럴 듯해야 체면이 좀 선다고 생각했다. TV에서 톱스타가 나와서 선전을 하는 TV를 갖다 놓으면 금상첨화였다. 거실 뿐 아니라 안방에 추가로 하나 더 갖다 놓으면 더없이 좋았다. 채널을 놓고 부부가 싸울 일도 줄어들게 되었다.

꾸준하게 상승하던 TV 판매고가 2천년대 중반부터 주춤해졌다. 2009년을 기점으로 TV 보급 대수가 꺾이기 시작했다. 스마트폰이 세상에 나오고 세계적으로 관심을 모을 때였다. 사람들이 TV를 사거나 보는 대신 스마트폰을 선택하기 시작한 것이다. 비단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TV 보는 시간도 줄었다. 아이들이 TV를 보지 않는 대신 책을 보고 공부를 더 했으면, 엄마들이 좋아했겠지만 그게 아니다. 아이들도 TV 대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더 이상 TV에 연연하지 않는다. TV를 켜봤자 열 받을 일밖에 없다며 스마트폰에 시선을 꽂는다. 스마트폰에는, TV에서는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내 입맛에 맞는, 속이 후련한 소식들이 마구 날아오기 때문이다.

마음에 맞는 사람끼리 한 공간에 앉아 TV를 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 중 하나다. 연인끼리라면 더욱 그렇다. 요즘은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들이 늘다 보니 TV 살 일도 줄어들었다. 가족끼리 거실에 한데 모여 TV 보는 일도 별로 없다. 어쩌다 한데 모여도 각자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지 않는다. 한 집에 있으면서도 핸드폰 문자로 대화를 나누는 희한한 일도 생긴다.

가족들이 TV 앞에 오순도순 모여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도 이제 흘러간 시절 이야기가 돼 가고 있다. TV는 함께 보는 게 맛인데, 그 맛을 잃어가고 있다. 대신 파편처럼 흩어져 각자의 세상에서 저마다의 취향대로 살아가는 세상이 돼 가고 있다. 잃어버린 대신, 우리는 무엇을 또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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