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와당연구가

네모진 형태의 와당은 매우 귀하게 평가받는다. 백제, 신라왕도 유적에서도 출토된 사례가 있지만 고구려 지안에서는 비교적 많이 출토됐다. 여기에 소개하는 와당은 사람의 얼굴을 닮고 있는데 미술사학자 강우방 교수(전 이대교수)는 용면(龍面)이라고 정의 한바 있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이 같은 와당을 귀면(鬼面)이라고 호칭해 왔다. 즉 ‘도깨비’ 얼굴로 본 것이다. 그러나 강박사는 도깨비 라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용의 얼굴로 보기에는 너무 사람을 닮아있다. 왜 고구려인들은 이런 얼굴을 와당 면에 사용한 것일까.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닐까.

지안에서 출토된 용면을 살펴보면 매우 다양하다. 용면이 되기 전의 와당은 사람의 얼굴이다. 건장한 청년 즉 전사의 얼굴이다. 그 전사의 얼굴이 점점 험상궂은 용면으로 발전한다. 이마에 새겨진 삼지창 문양은 구려족의 황제 치우의 모습이다.

치우 인면와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치우 인면와 (제공:이재준 와당연구가)

‘치우’는 누구인가. 구려족(九黎族)의 수령으로 한족의 선조로 꼽히는 황제와 천하를 다툰 동이족의 대표적인 지도자였다. ‘구려’는 고구려의 전신으로 이곳에서 고구려가 태어났다. 설화에는 치우는 철제투구를 쓰고 전투에 나갔으며 성질이 강하고 용감했다고 한다. 치우가 황제와 벌인 탁록 전투는 신화시대 최대의 전쟁으로 꼽힌다.

와당에 표시된 얼굴의 상단에는 3개의 구슬 형 연주(聯珠)를 배치했으며 가운데 이마에 표현 된 뿔 위에 놓여있다. 코의 상단에는 삼지창 같은 문양(뿔)을 장식했으며 눈썹은 위로 올라갔는데 화를 낸 표현이다. 위로 찢어진 눈은 크게 표현됐으며 음각선을 만들어 입체감이 나타나도록 했다.

코는 길고 이중으로 만들어졌다. 입은 옆으로 크게 벌리고 있는데 윗니는 9개, 아랫니는 10개로 표현했다. 양쪽의 이는 송곳처럼 날카롭게 표현했다. 방형의 외연은 주연대가 있는데 무늬는 없다. 적색이며 모래가 섞인 경질이다. 뒷면에는 막새를 접합한 방형의 드림새가 남아있다. 15㎝ X 16㎝, 두께 3㎝.

사진, 글: 이재준 와당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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