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주요 교통수단인 지하철. 그 노선을 따라가 보면 곳곳에 역사가 숨어있다. 조선의 궁궐은 경복궁역을 중심으로 주위에 퍼져있고, 한양의 시장 모습은 종로를 거닐며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지하철역은 역사의 교차로가 되고, 깊은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와 관련, 켜켜이 쌓여있는 선조들의 발자취를 지하철 노선별로 떠나볼 수 있도록 역사 여행지를 내·외국인에게 소개해 보고자 한다.

창경궁 옥천교(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8.5
창경궁 옥천교(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8.5

4호선 혜화역
통명전, 장희빈 저주물 묻은 곳
사도세자 뒤주에 가둬 죽기도

일제강점기 창경원으로 격하
1983년 돼서야 이름 되찾아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구불구불한 자연의 길을 그대로 잘 살린 또 한 장소. 서울 창경궁(昌慶宮)이다. 서울의 4대 궁궐에서 빠질 수 없는 창경궁. 이곳 역시 교통편이 좋아 오가는 관광객이 많았다. 4계절 색다른 옷을 입고 매력을 뽐내는 창경궁은 야간 명소로도 유명하다. 어둠 속 조명과 함께 펼쳐지는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이처럼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한 창경궁은 어떤 역사를 가진 곳일까.

◆돌담길 따라가면 만나는 정문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4번 출구에서 10여분 걸으면 창경궁 돌담길을 만날 수 있다. 돌담길을 따라 차분히 걷다보면 어느새 정문인 홍화문이 나온다.

창경궁은 조선 성종 때(1418년) 건축한 건물이다. 창경궁은 서족으로 창덕궁과 붙어 있고 남쪽으로는 종묘와 통하는 곳에 위치해 있다. 창덕궁과 함께 동궐(東闕)이라는 하나의 궁역을 형성했다. 이곳은 독립적인 궁궐의 역할을 함과 동시에 창덕궁의 모자란 주거공간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창경궁의 옛 이름은 수강궁이다. 세종이 즉위하면서 상왕인 태종을 모시기 위해 지은 것이다. 이후 성종 14년에 세조비 정희왕후, 예종비 안순왕후, 덕종비(추존왕) 소혜왕후 세분의 대비를 모시기 위해 궁을 개건했다. 이때 이름을 창경궁으로 바꿨다. 창경궁은 궁궐로서의 면모를 갖췄지만 당시 왕이 기거하면서 국사를 돌보는 장소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창경궁 명정전(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8.5
창경궁 명정전(출처: 문화재청) ⓒ천지일보 2019.8.5

◆역사 속 피바람

하지만 역사의 피바람이 분 곳이기도 했다. 이곳의 통명전은 중궁전인데, 역사 드라마 속의 단골소재인 장희빈과 얽혀 있는 곳이다. 숙종의 계비 인현왕후가 사망했을 때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저주한 일이 있었는데, 이때 저주물을 통명전 주변에 묻었다는 자백이 시녀들에 의해 밝혀지게 된다. 숙종은 크게 화가 났고 장희빈에게 목숨을 스스로 끊으라고 했으나, 이를 듣지 않아 결국 사약이 내려졌다. 또한 영조가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를 뒤주에 가둬 죽인 곳도 바로 이곳 창경궁이다.

창경궁도 다른 궁궐과 마찬가지로 임진왜란 때 소실됐다. 광해군 8년(1616)에 재건되긴 했지만, 인조2년(1624) 이괄의 난과 순조30년(1830) 대화재로 내전이 소실됐다.

당시 화재에서 살아남은 명정전, 명정문, 홍화문은 17세기 조선시대 건축양식을 보여주며, 정전인 명정전은 조선왕궁 법전 중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수난을 당한 곳이었다. 동물원과 식물원, 이왕가 박물관이 이곳에 들어섰고, 이름도 ‘창경원(昌慶苑)’으로 격하됐다. 이후 동물원과 식물원은 1983년 서울대공원으로 옮기고 이름도 창경궁으로 되찾았다.
 

식물원 ⓒ천지일보 2019.8.5
식물원ⓒ천지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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