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8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일본군 사무소와 창고로 쓰다가 미군 USO 건물로 사용됐고, 현재 용산갤러리가 운영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1908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일본군 사무소와 창고로 쓰다가 미군 USO 건물로 사용됐고, 현재 용산갤러리가 운영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갤러리로 시민에게 한발짝

일제강점기부터 현대까지

서울 도심 80여만평 대지

우리 땅인데도 남이 주인

이제 돌아오기 시작한 땅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산의 형세가 푸른 이무기의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 용산(龍山). 용은 동양에서는 숭배의 대상이었지만 기독교 성경에서는 창조주와의 전쟁의 상대였다. 용의 모양을 닮은 용산은 한반도 전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외세 병력이 주둔했던 지역이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넘어 6.25전쟁을 지나 정전협정을 거치면서 한반도 평화 유지라는 명목으로 일본군과 미군이 바통을 이어가며 외국군이 110년이 넘도록 자리한 곳이다.

그러나 2017년 변화가 찾아왔다. 미8군사령부가 평택기지로 이전했고, 이듬해 주한미군사령부도 평택으로 이전했다. 그리고 미군기지로 사용됐던 부지들이 하나씩 개방되기 시작했다. 이 공간 중에는 용산공원갤러리가 있다. 아직 일부 미군기지가 남아있어 전부 개방되지는 않았지만 지도에서 녹지로만 표시됐던 의문의 공간들에 시민들이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1908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일본군 사무소와 창고로 쓰다가 미군 USO 건물로 사용됐고, 현재 용산갤러리가 운영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1908년 건축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축물. 일본군 사무소와 창고로 쓰다가 미군 USO 건물로 사용됐고, 현재 용산갤러리가 운영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용산공원갤러리는 여느 전시회가 열리는 갤러리와는 외관부터가 다르다. 담장은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전쟁의 흔적들을 담고 있으며, 입구 대문도 군사지역을 상징하는 철조그물망으로 돼 있어 선뜻 발을 내딛기 어려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1908년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도 무거운 철문이 건물 입구에 떡하니 자리해 군사시설로서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용산공원갤러리는 용산 미군 ‘캠프 킴(Camp Kim)’ 부지 내 USO(주한미군 미군위문협회) 건물에 자리했다. 일제강점기엔 일본군 사무소와 창고로, 6.25전쟁 이후에는 USO에서 사용했던 건물이다. 이곳은 그간 민간인 출입금지 구역이었다. 주변의 고층 아파트와 빌딩 사이로 세월이 멈춰버린 이 건물이 바로 갤러리로 조성됐다. 2005년부터 추진 중인 ‘용산기지 국가공원화 사업’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11월 30일 용산공원 갤러리가 개관하면서 시민들도 찾아가볼 수 있는 곳이 됐다. 지하철 1호선 남영역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있다. 아직 캠프 킴 내에는 미군이 주둔하고 있어서 담장너머 기지내부 촬영 등이 엄격하게 제한됐다.

이 갤러리에는 서울역사박물관, 국가기록원, 용산문화원, 개인 등이 소장한 사진, 지도, 영상 등 60여 점이 전시됐다. 이 전시에서는 용산기지 역할 및 서울의 발전상을 보여주는 자료들이 주를 이뤘다. 일제강점기 때부터 해방 이후 정전협정, 한미상호방위조약, 대한군사원조 프로그램, 유엔군사령부와 한미연합사령부 등 한·미 동맹의 상징인 용산기지의 역할과 서울과 주한미군과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었다.

1948년 미31보병연대 32보병연대 일대 항공사진이 과거 용산 미군 기지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1948년 미31보병연대 32보병연대 일대 항공사진이 과거 용산 미군 기지를 보여주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한국인 많아 부대 이름 ‘캠프 킴’으로

‘캠프 킴(Camp Kim)’은 한국인들이 많아 마치 미군이 봤을 때 한국군대같이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이곳에는 한국노무단이 오랫동안 있어서 다른 미군에 비해 한국인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성씨였던 김을 사용했다.

주한미군용산기지는 서울 용산구에 있는 80여만평(약 264만 4천㎡)의 주한미군기지다. 1945년 광복 후 미7사단 병력이 일본군의 병영을 접수해 주한미군사령부가 주둔하게 됐다.

주한미군 용산기지 이전 협정에 따라 2017년 미8군사령부가 평택기지로 이전한 데 이어 2018년 주한미군사령부도 평택으로 이전했다.

용산기지 내 모든 건물에는 ‘T’와 ‘S’가 함께 붙은 번호가 있는데. T는 ‘Temporary(임시적인)’, S는 ‘Semi-permanent(반영구적인)’의 이니셜이다. 즉 영구적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이는 미국이 언젠가는 이 부지를 한국인에게 다시 돌려줄 의도였다는 점을 보여준다.

1953년 10월 1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에 참석한 당시 사진이 전시됐다. ⓒ천지일보 2019.8.2
1953년 10월 1일 이승만 전 대통령이 한미상호방위조약 가조인식에 참석한 당시 사진이 전시됐다. ⓒ천지일보 2019.8.2

갤러리 1층에서는 과거 용산기지에서의 미군 응원공연, 골프 등 여가를 보내던 미군의 사진과 항공촬영 미군기지 모습, 용산 지도 등을 전시하고 있었다. 용산구민을 위한 팟캐스트 녹음실과 20분짜리로 구성된 무성영화 상영실도 마련돼 있었다.

2층은 용산구와 관련된 문서자료를 들여다볼 수 있는 아카이브와 용산기지와 관련한 에피소드를 갖고 있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전시공간도 준비돼 있었다. 실제 주민들의 모습을 촬영해 만든 입간판에 있는 큐알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면 유튜브에 올려진 주민들의 인터뷰 녹음을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직접 큐알코드를 찍어 실제 용산기지 안에서 재단사 생활을 하는 장진국씨의 인터뷰 녹음영상을 들어볼 수 있었다.

이 건물은 아직은 미군으로부터 공간을 대여해 사용하기 때문에 콘센트가 110볼트였다는 점도 독특했다.

1층 내부에는 시민들의 모임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유로운 카페 공간도 보였다. 추후 시민들에게 무료로 음료를 제공할 예정이라고 했다.

시민들이 갤러리 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시민들이 갤러리 내 전시물을 관람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용산공원갤러리는 당초 월~금요일까지 개관했지만 7월 1일부터 방침을 바꿔서 화~토요일까지 문을 열고 있다. 전시해설은 화‧목 오전 10시와 오후 2시로 정해져 있지만 갤러리 측에 문의하면 다른 시간에도 해설을 들을 수 있다. 문의는 다산콜센터 120에서 가능하다. 버스투어는 국토교통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에서 문의할 수 있다. 갤러리는 서울시와 주한미군의 공동협약에 의해 임시사용이 허가된 곳으로 향후 국방부로 반환될 때까지 운영할 방침이다.

용산공원갤러리를 찾은 방문객은 전시관 관람뿐 아니라 사전예약에 한해 용산기지 투어버스도 이용할 수 있었다. 근현대 문화유산적 가치가 있는 용산기지 관련 장소를 둘러보는 프로그램으로 일본군 작전센터, 한미합동군사업무단, 일본군 위수감옥, 일본군 병기지창, 둔지산 정상, 조선시대 남단터, 한미연합사령부 방문이 코스로 마련됐다. 사진 촬영은 일부 공개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다.

실제 주민들의 모습을 촬영해 만든 입간판. 일부 입간판에 설치된 큐알코드를 찍으면 생생한 인터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지일보 2019.8.2
실제 주민들의 모습을 촬영해 만든 입간판. 일부 입간판에 설치된 큐알코드를 찍으면 생생한 인터뷰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지일보 2019.8.2

◆ 주한미군 사령부와 미8군 사령부

주한미군은 한미 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해 한국에 주둔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 유지와 동북아시아의 안정 유지에 기여하기 위해서다. 2018년 6월 주한미군 사령부는 평택기지 신청사로 이전했다. 한국에 주둔한 미8군 사령부는 1944년 6월 미국 본토에서 창설됐다. 미8군은 6.25전쟁 중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후 전세가 변화함에 따라 1951년 서울대 문리대 건물(현 혜화동)에 위치하게 됐다. 이후 미8군 사령부가 용산기지에 처음 정착한 것은 정전협정이 체결되기 직전인 1952년이었으며, 일제강점기 때의 일본군 78연대 병영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활용해 사용했다. 미8군의 역사는 한미 군시관계의 큰 줄기가 됐다. 2007년부터 사령부 이전을 준비해왔으며, 2017년 7월 평택기지로 이전했다.

용산공원갤러리 2층에 마련된 아카이브. ⓒ천지일보 2019.8.2
용산공원갤러리 2층에 마련된 아카이브. ⓒ천지일보 2019.8.2

◆유엔군 사령부와 한미연합군 사령부

유엔군 사령부(United Nations Command & ROK)는 1950년 한국전쟁 중 유엔안전보장회의에 따라 1950년 7월 24일 일본 도쿄에서 창설됐다. 유엔군 사령부는 한국군과 유엔군에 대한 작전 통제권을 갖고 1953년 판문점 정전협정 당시에는 중국과 북한과 함께 협정 당사자로 참가했다. 1957년 7월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군 사령부는 용산으로 이동하게 됐고, 1974년 유엔군 사령부·주한미군 사령부·미8군 참모부가 통합됐다. 2006년 유엔군 사령부 인원은 용산기지로 철수했고, 2007년 유엔군 사령부 부지를 반환했다.

용산갤러리 1층에 한켠에 시민들의 쉼터로 마련될 카페에서 시민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용산갤러리 1층에 한켠에 시민들의 쉼터로 마련될 카페에서 시민들이 회의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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