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머무는 시] 삼계탕 - 권오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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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계탕

권오범

수컷구실 한번 하지 못하도록
애당초 몽달귀로 낙인찍혔다지만
천명이 턱없이 에누리당해
얼굴마저 저당 잡혀 볼썽사납다
행여 머나먼 저승길 허기질세라
대추 밤 찹쌀 미리 얻어먹고
지옥 물에 목욕재개하고 나니
골수마저 녹아내려 온몸이 녹작지근하다

어린 것이 다리 꼬고 누워
인삼 하나 끌어안고
남세스럽게 누드쇼는 하지만
버젓한 한류스타이기에 여한은 없다
저승사자인 인간들이여
마지막 가는 길 부탁하나하자
젓가락으로 잔인하게 꼬집어도 좋으니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추려 해탈시켜다오

[시평]

장마가 끝나고 본격적인 더위로 인하여 한 밤에도 문을 열어놓고 잠을 자야 하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린다. 이런 복더위 속에서 벌이를 위해 다니다 보면, 땀도 많이 나고, 혹은 더위도 먹을 수 있고, 또 기운도 떨어져, 사람들은 보신을 위한 음식을 먹는다. 예로부터 보신을 위하여 개고기를 먹기도 하고, 또 닭에 인삼, 대추를 넣고 끓여 만든 삼계탕을 즐겨 먹기도 한다.

삼계탕은 아직 덜 자라 그 살이 부드러운 닭을 통째로 넣고 끓이는 것이다. 엄나무도 넣고, 당귀도 넣고, 대추도 넣고, 인삼도 넣고, 찹쌀도 넣고, 온갖 보양이 될 것들은 모두 넣고 함께 끓인다. 닭을 통째로 넣고 끓이는 것이기 때문에, 그릇에 담겨 나오는 닭이 마치 다리를 꼬고 누워, 인삼 하나 끌어안고 누드쇼를 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사람들이 보신을 위해 닭을 통째로 넣어 끓여서 먹으니, 비록 살점을 발라내기 위하여 젓가락으로 이리 뒤지고 저리 찌르며 살을 발라 먹지만, 뼈 마디마디 깔끔하게 추려서, 해탈이라도 시켜줘야 하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우리를 위해 털이 뽑히고 두 다리 가지런히 묶여서 누워 있는 닭에 대한 예의. 무더운 복날, 더위 먹은 생각, 한번 이렇듯 해 본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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