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한 개의 복숭아에 한 개의 씨앗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안다. 하지만 그 씨앗 속에 몇 개의 복숭아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구도 이견을 가질 수 없는 참 멋진 말이다. 오늘은 이 문장을 읽으면서 생각이 난 ‘말씨’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물론 사전에는 ‘말하는 태도나 말하는 버릇’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필자는 분명 말씨에는 복숭아씨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위용이 있다고 생각한다.

말이 씨앗이 되어서 몇 수백 배로 돌아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가끔 식당이나 커피숍에 갔을 때에도 예쁜 말씨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런데 진짜 신기한 것은 예쁜 말씨를 쓰는 사람이 있는 음식점은 잘 되는데, 그렇지 않은 집은 잘 안 된다. 여름에 덥고 겨울에는 춥다는 이야기처럼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밑반찬 좀 더 달라고 하는 말에 남는 것도 없다면서 불쾌한 말씨를 던지는 종업원이나 사장님, 돌아서서 나오면서 “이 집은 얼마 못 가겠군”이라고 말하면서 나오게 되는데 백발백중 몇 개월 안에 ‘임대문의’가 붙게 된다.

불쾌한 말씨가 더 씨앗이 된 걸까? 아니면 나오면서 우리끼리 한 이야기가 씨앗이 된 걸까? 연구소에 한 곳에 오래 있어서 십여 년을 지켜봤는데 두 번 정도만 필자가 틀렸고 나머지 수십 번은 다 맞았다. 우선 말을 해버린다는 생각부터 바꿔야 한다. 말은 절대로 버려지지 않는다. 말은 씨앗이 되어서 수십 배, 수백 배의 결과물을 가져다준다.

요즈음 조금 한가한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불경기 때문에 영업이 안 된다고 울상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지금도 줄을 서서 먹는 음식점이나 카페가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일단 ‘영업이 안 된다’는 말의 씨앗을 계속 열심히 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고 반성해야 한다.

필자의 단골 카페 사장님에게서 제일 많이들은 말씨는 “참 감사하죠. 요즘 같이 한 집 건너 카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희 카페를 찾아주시니 제가 참 복이 있는 것 같습니다”이다. 그 집은 갈 때마다 거의 만석이다. 큰길가에 있는 것도 아니고 뒷뒷골목이다.

말씨는 영업하는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어렸을 때 소아마비를 고쳐주셨던 한의원 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필자에게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될 것 같다는 덕담을 해주셨는데 지금도 가끔 정말 훌륭하게 잘 살고 있는지 돌아본다. 때로는 그 말의 씨앗 덕분에 잘 살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 때로는 현재를 반성하면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때만해도 소아마비가 고치기 어려운 병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고쳐주셨으니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끼면서 뭔가 사회에 늘 갚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현재 나의 모습은 평생 살면서 스스로 열심히 심어온 말의 씨앗과 주변에서 뿌려준 말의 씨앗의 결과일지 모른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는 속담처럼 말이다.

우선 사랑하는 가족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좋은 말씨를 쓰도록 하자. 물론 가능하다면 누구에게라도 좋은 말씨를 쓰면 더욱 좋을 것이다. 행복도 불행도 그 말씨 속에 숨어 있음을 잊지 말도록 하자. 필자도 새로운 마음으로 좀 더 좋은 행복씨앗을 심기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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