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월간 글마루에서 연재한 ‘다시 보는 백제사’ 시리즈를 천지일보 온라인을 통해 선보입니다. 우리의 역사를 알고 더욱 깊이 이해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 연재시기와 현재 노출되는 기사의 계절, 시간 상 시점이 다소 다른 점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글 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사진제공 강진군청

 

월남사지 삼층석탑(사진 제공: 강진군청)
월남사지 삼층석탑(사진 제공: 강진군청)

절터엔 백제식 삼층석탑 우뚝

월남사지는 월출산을 뒤로하고 낮은 구릉에 남쪽을 향해 지어진 절터이다. 절터에는 삼층석탑이 우뚝 서 있으며 고려 진각국사비(보물 제298호) 등이 남아 있다. 백제 연화문 와당의 출토로 미루어 이 시대 창건되어 통일신라, 고려, 조선시기까지 법등이 이어졌음을 알려준다. 절터 주변에서 수습되는 수많은 백제·신라·고려와편들이 역사의 흥망성쇠를 알려주고 있다.

아무래도 월남사지의 중심은 웅장함을 자랑하는 삼층석탑(보물 제298호)이다. 석탑은 단층 기단(基壇) 위에 세워졌으며 백제 구토에 남아있는 여러 석탑과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다. 기단을 비롯한 탑신부(塔身部)를 여러 개의 작은 석재(石材)로 구성한 백제식 석탑이다.

강진와당(사진 제공: 강진군청)
강진와당(사진 제공: 강진군청)

백제 와당의 출토로 이 탑의 조성시기를 백제말기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기단의 허약함과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체감이 급격히 떨어져 시대의 하한을 알려주고 있다.

금당지(金堂址)에는 주초석과 기단으로 보이는 축대가 남아 있다. 마을 어귀의 돌담장 근처에서 기와편과 청자·백자편, 탑재로 쓰인 직사각형의 판석들이 발견됐다. 오래전 삼층석탑 주변의 민가 장독대에서 신라 일반형 석탑의 옥개석이 발견됐다고 한다.

이 탑재들은 월남사지의 오랜 법등을 알려주는 역사적 편린이다. 한 가람 안에서 백제·신라 양식의 석탑이 존재했던 쌍탑 가람이었을까. 한 시기 철천지원수 두 나라의 탑을 조성함으로써 전쟁 없는 평화를 기원한 것인가. 백제, 신라 양식이 공존하는 예는 충남 공주 계룡산 남매탑에서도 찾을 수 있다.

월남사지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월남사지 전경 (사진제공: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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