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포커스] 글 쓰는 변호사 강신업 “공정한 사회 위한 ‘게임의 룰’, 바로 법”
[피플&포커스] 글 쓰는 변호사 강신업 “공정한 사회 위한 ‘게임의 룰’, 바로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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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가 최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법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강 변호사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가 최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법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보장할 수 있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고 싶다는 소신을 밝혔다. 강 변호사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31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

 

방송·칼럼으로 대중과 접촉

“법 제 역할 해야 공정한 사회”

“공정한 룰 위해 목소리 낸다”

“정치인 중 ‘선비’ 많아져야”

“변호사, ‘면기난부’의 직업”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흔히 사람들은 변호사가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그만큼 글도 많이 써야 한다. 재판에 필요한 것들을 서면으로 미리 제출한 뒤 준비한 서류를 뒤적이며 진행되는 우리나라 재판의 특성상 잘 준비한 글이 좋은 변호의 지름길이 되기도 한다.

강신업 변호사는 언론·미디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변호사다. 그는 각종 칼럼과 방송 출연 등으로 꾸준히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그는 왜 법정을 넘어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는 걸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강 변호사를 최근 기자가 직접 만나봤다.

강 변호사는 인터뷰 당일에도 여러 가지 업무를 처리했다. 그는 말 그대로 24시간이 모자란다고 한다. 그가 잠이 드는 시간은 보통 오후 10시쯤. 그렇게 4~5시간을 자고 나면 다음 날 오전 2~3시에 눈을 뜬다.

강 변호사는 이 시간을 활용해 글을 쓴다. 변호사라면 당연히 작성해야 할 준비서면(변론에서 진술하려고 하는 사항을 기재해 법원에 제출하는 서면)부터 그가 꾸준히 언론 매체에 기고하고 있는 칼럼까지 다양한 글을 쓴다.

◆ 칸트·괴테 꿈꾸던 학생, 늦깎이 변호사 되다

왕성한 글쓰기와 방송 활동으로 강 변호사가 추구하는 바는 뭘까. 그는 사실 변호사의 길로 들어선 지는 오래되지 않았다. 중·고등학교 무렵엔 잠깐 법조인의 꿈을 갖기도 했으나 그가 진학한 고려대학교·대학원에선 독일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다. 대학에서 그의 표현에 따라 ‘폭이 넓고 깊은 바다와 같은’ 문학의 세계에서 흥미를 느꼈고, 임마누엘 칸트와 요한 볼프강 폰 괴테 같은 명망 높은 대학자가 되길 꿈꾸며 학문에 정진했다.

하지만 가난한 집에서 혼자 돈을 벌면서 철학을 꿈꾸기엔 현실의 벽은 높았다. 강 변호사는 유명 편입학원과 사법고시 학원 등에서 영어 강의를 하던 중 원장으로부터 사법고시 제안을 받는다. 때마침 그의 장인도 사법고시를 권유했다. 사법고시 학원에서 강의하다 보니 어떻게 하면 고시를 붙을 수 있을지 감이 느껴졌던 강 변호사는 결국 뒤늦게 사법고시 공부에 뛰어들었고, 만 41세의 늦은 나이에 사법고시에 합격하게 됐다.

사법연수원 36기인 강 변호사는 “연수원에 들어가 보니 내 나이가 13번째였다. 연수원 생활이 즐거웠고, 동기들과 사이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10살 이상 차이가 나다 보니 깊게 교류하고 그러진 않았다”라며 “이미 결혼해 가족이 있고 경제활동이 필요하다 보니 연수원 때부터 향후 변호사 활동을 염두에 두고 사회적인 교류를 많이 했다”고 연수원 생활을 회상했다.

2007년 2월, 강 변호사는 드디어 변호사로서 개업하게 된다. 그는 “당시 방문했던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이 ‘마치 전관 변호사 개업식 같다’고 할 만큼 개업식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강 변호사가 재판에 제출할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강 변호사가 재판에 제출할 준비서면을 작성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31

하지만 그가 변호사 일을 시작하자마자 큰 돈벌이에 뛰어든 것은 아니다. 그는 2009년 국선변호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강 변호사는 “늦은 나이에 변호사가 됐으니 사회에 빚을 갚아야겠다는 의미로 국선변호사를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힘이 닿는 한 성실하게 활동했다. 그는 국선변호사를 하면서 맡은 구속된 의뢰인들을 일일이 다 면회를 갔다. 그런 그의 마음이 의뢰인들에게 닿았는지 감사 편지를 받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또 의뢰인의 어머니가 사무실을 찾아와 몇 번을 거절하는 데도 잘 봐달라며 30만원을 건넨 일도 있었다.

◆최초의 승소이자 최고의 승소… ‘급발진 사고’

강 변호사가 맡았던 사건 중 가장 강렬한 기억을 남긴 것은 2009년 급발진 사건에서 국내 최초로 승소한 일이다. 그는 원고 측을 맡아 BMW 상대로 승소했다. 이는 그가 변호사로 데뷔한 이후 거둔 첫 승리이기도 했다. 강 변호사가 1심에서 승소한 원동력은 바로 ‘입증책임의 전환’이었다.

강 변호사는 “급발진은 ‘귀신’을 보는 것과 똑같다. 귀신을 보면 기절할 수 있다. 하지만 나중에 일어나 보면 아픈 데 없이 멀쩡하고, 귀신을 봤다는 증거는 안 남는다”며 “순간의 결함 발생으로 사고가 났다고 해도 나중에 찾아보면 차량 결함이 안 보이는 경우가 많다. 현대 산업 기술의 총아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의 결함을 소비자가 찾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급발진 사고의 특성을 고려해 소비자가 실수하지 않았다는 사실만 증명하면 남은 입증책임은 판매자에 있다는 논리가 처음으로 인정받은 사건이 바로 이 사건이었다. 비록 2심 변호인이 바뀌고 원고 패소했고 대법원에서도 판단이 바뀌지 않았지만, 그에게도 사회에게도 이 사건은 꽤 유의미한 발자국을 남겼다.

이 사건이 대서특필되면서 강 변호사는 언론에 데뷔하게 된다. 수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하면서 다양한 기자와 언론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게 됐다. 여러 매체에 칼럼을 기고하며 조금씩 접촉면을 늘려가던 강 변호사가 본격적으로 언론 앞에 서게 된 건 2015년 변협 공보이사를 맡게 되면서다. 개업식에도 참여했던 하 전 변협회장과의 인연이 계기가 돼 공보이사 업무를 담당하면서 언론을 상대하는 것이 중요한 일과가 됐다.

강 변호사는 “미디어 활동이 사건에 큰 도움은 안 된다.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수도 있다”며 “방송 때문에 변호사 업무 준비에 지장을 받을 수 있고, 의뢰인들이 먼저 ‘과연 이 변호사가 내 사건을 맡을 수 있을까’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고 밝혔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가 최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자신의 철학을 말하는 강 변호사의 모습. ⓒ천지일보 2019.7.3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강신업 법무법인 ‘하나’ 변호사가 최근 진행된 본지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사진은 자신의 철학을 말하는 강 변호사의 모습. ⓒ천지일보 2019.7.31

◆오랜 세월 영향 줄 ‘글’… 즉각적 효과 낼 ‘방송’

그런데도 강 변호사는 이런 활동이 공익에 이바지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미디어를 통해 올바른 법 정보가 전달되면 이를 본 시민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철학을 공부하며 칸트와 괴테를 꿈꿨던 강 변호사는 이제 방송과 글을 통해 사색의 결과물을 전달한다.

그가 제일 큰 큰 관심을 두는 건 인권과 자유의 확대다. 그러기 위해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법이 개인의 인권과 자유를 침해하는 대신 보장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게 공정한 사회이고, 이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해 언론을 활용한다고 강 변호사는 말한다.

강 변호사는 “공정한 사회를 위해선 ‘게임의 룰’을 제대로 갖춰야 한다. 이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바로 법”이라고 설명한다. 사법개혁이 필요한 이유도 현재의 체계가 모두에게 공정한 규칙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판단이다.

강 변호사는 “글의 힘은 즉각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오랜 세월을 두고 서서히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동시대 사람들은 공자가 누군지 몰랐더라도 그의 사상을 정리한 글을 통해 후대의 사람들은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 소크라테스나 예수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공자의 사상은 ‘논어’를 통해 사실상 동양 문화권을 지배하는 유교 사상을 만들어냈고, 예수의 사상이 ‘신약 성경’ 형태로 정리돼 전 세계로 퍼져 인류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는 현재 법률저널에 글을 기고하고 있는데, 어느덧 100회차가 넘었다. 그는 꾸준한 이 과정을 통해 조금이라도 공정한 게임의 룰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믿는다.

강 변호사에 따르면 글은 오랜 시간 영향을 줄 매체라면, 방송은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는 매체다. 방송과 글을 적절히 활용해야 모든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강 변호사가 바라보는 현 세태는 어떨까. 강 변호사는 ‘선비’라고 불리길 좋아한다. 그는 정치권에도 선비가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 변호사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말이 있다. 좋은 돈은 숨고, 나쁜 돈만 나와서 통용되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며 “나쁜 사람들이 누비는 자리에 좋은 사람들이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강 변호사는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늦깎이 법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했다.

“변호사는 스펙트럼을 넓히고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에 기여하고 싶다면 선택해도 좋을 직업입니다. 그러나 변호사는 면기난부(免飢難富, 굶는 것은 면할 수 있으나 부자가 되기는 어렵다)의 직업이에요.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안 하는 게 좋을 것입니다. 변호사로 큰돈을 벌겠다고 생각하면 재고하는 게 좋습니다. 그런 시대는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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