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출처: SBS·세계일보)
지난 6월 1일 오전 10시 32분께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살인 등 혐의로 긴급체포되는 고유정의 모습. (출처: SBS·세계일보)

유출 당사자, 박기남 前서장으로 지목돼

민갑룡 청장 “부적절한 면 있을 시 조치”

[천지일보=김빛이나·홍수영 기자] ‘제주 전 남편 살해 사건’ 피고인 고유정(36, 구속기소)의 긴급체포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언론에 공개된 후 영상 유출 경위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영상 유출 당사자로 ‘부실수사’ 논란의 대상자였던 박기남 전(前) 제주동부경찰서장이 지목됐고, 그가 개인적으로 영상을 유출했을 것이라는 의혹까지 나오면서 논란은 점차 커지고 있다.

2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영상 유출 당사자는 박 전 서장이 지목됐다. 그는 지난 인사에서 제주지방경찰청 정보장비담당관으로 이동돼 공보 권한이 없지만, 개인적으로 영상을 유출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박 전 서장이 수사 사건의 공개를 공보 책임자로 한정하는 경찰청 훈령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6조를 위반, 이번 사안에서 징계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가 나왔다.

박 전 서장이 논란의 중심에 서게 된 것은 고유정의 현장검증을 하지 않았던 그의 결정과도 관련 깊다.

앞서 경찰 내부 통신망인 ‘폴넷’에는 경찰관 5명의 공동명의로 작성된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수사 관련 입장문’이 올라왔다. 해당 글에서 작성자들은 범죄입증에 필요한 DNA와 폐쇄회로(CC)TV 영상 등 충분한 증거가 확보된 상태였기에 현장검증의 필요성이 없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현장검증은 ‘야만적인 현대판 조리돌림’이라는 박 전 서장의 결단이 있었다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자 여론은 공분했다. 이는 고유정 사건에 대해 제주 경찰을 불신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경찰이 고유정 집안과 유착됐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민갑룡 경찰청장은 고유정 사건을 조사하는 진상조사팀을 꾸리도록 지시를 내렸다.

전 남편 살해 고유정 얼굴 공개(제주=연합뉴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전 남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36)이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나와 진술녹화실로 이동하고 있다.앞서 지난 5일 제주지방경찰청은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고씨의 얼굴, 실명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출처: 연합뉴스)

◆경찰 “영상, 개인적 제공이면 규칙 위반”

경찰은 박 전 서장이 공보 책임자가 아닌 상황에서 상급 기관에 보고하지 않고 내부 자료를 특정 언론사에 공개했다는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정보화장비담당관으로 자리를 옮긴 그가 어떻게 해당 영상을 소유할 수 있었는지, 또한 영상 유출에 다른 공조자가 있었는지 등을 중점적으로 살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만약 규칙 위반 사항이 발견될 경우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는 방침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2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박 전 서장이 해당 영상을 언론사에 제공한 당사자라고 확인해 준 경찰청 관계자는 전날 “체포 당시 영상을 개인적으로 제공한 행위 자체는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위반”이라며 경찰청 차원의 공식적인 영상배포는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제주지방경찰청도 경찰청의 방침에 따라 해당 영상을 배포하지 않을 계획이다.

올해 3월 11일 배포된 경찰청 훈령 제917호 ‘경찰수사사건 등의 공보에 관한 규칙’ 제4조에 따르면, 몇 가지 예외의 경우를 제외하고 ‘사건 관계자의 명예, 사생활 등 인권을 보호하고 수사내용의 보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수사사건 등은 그 내용을 공표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공개해서는 아니 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범죄유형과 수법을 국민들에게 알려 유사한 범죄의 재발을 방지할 필요가 있는 경우’와 ‘오보 또는 추측성 보도로 인하여 사건관계자의 권익이 침해되었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는 경우’ 등은 예외로 하고 있다.

민갑룡 경찰청장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영상이) 적정한 수준에서 공개된 것인지, 절차상 부적절한 면은 없었는지 진상 파악을 하도록 하겠다”면서 “진상이 파악되는 대로 부적절한 면이 있으면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 전 서장은 전날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고유정 체포 영상 유출과 관련해 “체포 동영상과 관련해 한 번은 동부서장 재직 시절, 다른 한 번은 27일 언론사에 제공했다. 다 제 책임”이라며 말을 아꼈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민갑룡 경찰청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7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민갑룡 경찰청장이 2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강창일 의원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6.27

◆체포당시 고유정 “왜요? 그런 적 없는데”

앞서 고유정의 긴급체포 장면은 세계일보와 SBS 등을 통해 공개됐다. 지난 27일 세계일보와 SBS 등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고유정은 6월 1일 오전 10시 32분쯤 충북 청주시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제주동부경찰서 형사들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당시 고유정은 검정 반소매 의상에 도트가 들어간 검은 치마를 입고 있고 쓰레기를 버리러 가고 있었다. 그 앞을 가로막은 경찰은 고유정에게 “살인죄로 체포합니다. 긴급체포하겠습니다”라고 말한 다음 미란다 원칙을 전하고 곧장 손에 수갑을 채웠다.

그러자 고유정은 “왜요? 그런 적 없는데….” “제가 당했는데…” 등의 말을 하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경찰에게 연행돼 가면서 고유정은 “지금 집에 남편이 있는데 불러도 되느냐”고 말했고, 경찰은 “어차피 올라갈 거예요”라고 답했다.

경찰에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크게 당황하지 않고 태연한 태도를 보이는 고유정의 모습에 네티즌들은 “능청스러운 목소리에 소름이 끼친다” “동영상을 보니 (고유정이) 사람 같지 않다” “인간의 탈을 쓴 악마” 등의 비판을 쏟아냈다.

한편 제주경찰은 이번 사건과 관련한 여러 의혹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그것이 알고싶다’팀에 해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들은 “고유정의 치밀한 범행 계획에 부실수사라고 오해를 받고 있다”고 억울해했다.

고유정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고유정. (출처: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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