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투안 마리 로제 드 생텍쥐페리 作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시간이 흐를수록 <어린왕자> 페이지를 넘기는 게 어렵다. 처음에야 내용 중심으로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었지만, 그 속에 담긴 깊이를 미처 알지 못했다. 두 번째 책을 읽어 내릴 때서야 제법 느껴진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읽으면 지루할 법도 한데 <어린왕자>만큼은 늘 새롭다. 단순히 동화가 아닌 주옥같은 철학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잔잔하지만 감동의 여파는 크게 남는다.

<어린왕자> <야간비행> <인간의 대지> <성채> 등 생텍쥐페리의 작품에는 비행사가 자주 등장한다. 그가 ‘비행’을 늘 마음에 염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막은 작가의 페르소나라고 여길 만큼 여러 작품의 배경이다.

<어린왕자>는 유명한 동사 ‘길들이다(apprivoiser)’가 사용된다. 보통 개인성향이 분명한 서양 인간관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동사이지만 그는 ‘길들이다’라는 의미를 사막여우와 어린왕자에게서 찾았다.

이 책은 출간된 이후로 오늘날까지 많이 회자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가수 양희은의 ‘잠들기 전’이라는 노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법” 등 작품 내용의 일부를 인용할 만큼 국적을 불문하고 사랑받고 있다.

대중 친화력을 지닌 <어린왕자>는 동화의 구색을 갖췄으나 관계 책임 연대 사랑 삶 죽음 등 묵직한 철학을 단문에 담아 독자에게 인생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돈과 명예, 권력을 선망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작가 생텍쥐페리는 제2차 세계대전에 공군으로 참여해 독일군과 대항했다. 사실 그는 신체검사에서 왼쪽 반신이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전투기 조종 불가 판정을 받았다. 참전하지 않아도 됐다. 하지만 그는 하늘을 날고 싶어 했다. 공군 장성과 장관에게 청한 끝에 결국 1939년 말부터 1940년 7월까지 고공 정찰과 촬영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이미 인기 작가였고 다른 동료들보다 연령이 높았으나 그는 스스럼없이 모든 상황을 헤쳤다.

늘 어린 왕자이길 바랐던 그는 마지막까지 책 주인공과 같았다. 어린 왕자가 몸뚱이 때문에 자기의 별로 갈 수 없어 조용히 쓰러져 육신을 버린 것처럼 그 역시 1944년 정찰비행 도중 행방불명됐다. 이후에 호르스트 리페르트 전 독일군 조종사가 <생텍쥐페리, 최후의 비밀>이라는 저서에서 생텍쥐페리의 비행기를 격추한 사실을 밝혔으나 생텍쥐페리는 여전히 만인의 어린 왕자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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