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일본 ‘7.21 참의원 선거’ 결과 예상대로 집권 자민당이 57석을 얻어 제1당의 힘을 여실히 보여줬다. 공명당도 14석을 거둬 자민당-공명당 연립여당은 124석 가운데 71석이 돼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개헌세력인 일본유신회가 확보한 10석까지 합쳐도 개헌발의에 필요한 3분의 2 이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이번에 선거를 하지 않은 ‘비개선 의석’까지 모두 합칠 경우 개헌세력이 160석에 불과해 개헌발의에 필요한 총의석(245석)의 3분의 2(164석)에는 4석이 부족하다. 과반의석은 얻었지만 개헌발의까지는 이르지 못한 결과 일본의 주요 언론들은 아베 정권의 ‘절반의 승리’라고 풀이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이번 참의원 선거는 결과적으로 잘 나가던 아베 정권에겐 여러 가지 측면에서 발목이 잡힌 셈이다. 먼저 이번 참의원 선거를 통해 개헌발의를 강력하게 추진하려던 기본 목표는 외형상 좌절됐다. 앞으로 무소속이나 야당 의원 일부를 끌어들일 수는 있겠지만 개헌은 쉽지 않아 보인다. 그리고 내용적으로도 아베 정권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 예전 같지가 않다. 아베 정권에 대한 피로감과 일본정치에 대한 불신 그리고 개헌에 대한 국민적 무관심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베의 승부처, 한국 때리기

이번 참의원 선거는 아베가 사실상 정치생명을 건 개헌발의의 최종 관문이었다. 이미 중의원은 개헌세력이 3분의 2를 훌쩍 넘고 있다. 마지막 관문인 이번 참의원 선거만 잘 치른다면 당초 목표로 했던 ‘2020년 개헌 완수’는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그만 발목이 잡힌 것이다. 이처럼 선거 결과도 아팠지만 아베 정권을 바라보는 일본 국민의 시선도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는 데 더 큰 상처가 있다.

아베 정권의 운명을 걸다시피 한 이번 참의원 선거였지만 투표율은 48.8%에 불과했다. 전후 일본 역사상 두 번째로 저조한 투표율이다. 50%투표율을 넘지 못한 것은 1995년(44.5%)에 이어 24년만의 일이다. 물론 후쿠오카에 쏟아진 폭우 등의 외부 요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일본정치, 특히 지금의 아베 정권에 대한 불신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마이니찌(每日) 신문은 7월 23일자 사설에서 ‘민주정치의 토대가 붕괴되고 있다’는 제목까지 달았다. 게다가 한국의 주력인 반도체 산업의 핵심 부품에 대한 무역보복까지 결단한 시점에서 치른 참의원 선거치고는 투표율이 낮아도 너무 낮았다.

선거 결과도 좀 더 꼼꼼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이번 선거에서 124석 가운데 자민당과 공명당이 모두 71석, 개헌에 동참하고 있는 일본유신회 10석까지 합쳐서 81석이 개헌세력이다. 여기에 이번에 선거 대상이 아니었던 비개선(非改選) 의석까지 합치면 160석이 됐지만 과반일 뿐 개헌발의 3분의 2에는 4석이 부족하다. 그리고 자민당은 6년 전에 비해서도 의석수가 오히려 감소했다. 당시 자민당은 의석 121석 가운데 66석을 얻어 단독으로 과반을 차지했다. 총 의석수는 6년 전보다 3개가 늘었지만 자민당은 이번에 57석을 얻었으니 6년 전과 비교하면 사실상 패배한 선거로 봐야 한다.

게다가 이번 참의원 선거는 비례대표 의석만 50석이다. 지역구가 있는 선거구는 74석에 불과했다. 자민당은 선거구 선거에서는 38석을 얻었다. 선거구 선거만 놓고 본다면 자민당은 과반 의석에 겨우 턱걸이 한 셈이다. 그 마저도 득표율(절대 득표율)은 18.9%에 불과했다. 자민당 역사에서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3년 전의 참의원 선거 때는 21.3%였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20%도 안 되는 득표율로 선거구 선거의 과반 의석을 차지한 것이다. 물론 일본의 독특한 선거제도 결과이긴 하지만 내용적으로도 아베가 승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게다가 일본 정치가 사실상 ‘자민당 일당체제’와 같다는 점을 강조한다면 이번 참의원 선거결과는 내용적으로도 “아베가 졌다”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그렇다면 참의원 선거 직후 아베가 다시 목소리를 높였듯이 과연 개헌까지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도 짚어 봐야 한다. 아베는 기존의 개헌세력에 더해서 무소속 의원을 비롯해 제2야당인 국민민주당 일부 의원들까지 설득해서 개헌발의를 하겠다는 의지다. 물론 가능한 시나리오 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곧 개헌 동력의 회복은 아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 정치권의 충돌은 물론이고 여론까지 등을 돌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아베 정권의 폭주와 장기집권에 대한 일본 정치권 안팎의 시선이 결코 곱지 않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이 각각 실시한 참의원 의원 대상 설문 조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번 참의원 선거에서 당선한 124명 가운데 117명을 대상으로 개헌 문제를 물어 봤더니 찬성보다 반대(41%)가 더 많다는 결론이다. 선거 결과를 놓고 외형적인 분석을 하면 개헌발의에 근접한 것으로 보이지만 의원 개인별 의지를 확인해 보면 단순 계산을 하더라도 40% 넘는 의원들이 개헌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바로 이 대목이 아베의 ‘새로운 승부수’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를테면 중의원을 해산하고 조기총선을 실시한다든지, 자민당 당규를 바꿔 총리 임기를 더 늘린다든지 하는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아베는 개헌에 더 집착할 것이며 그래서 더 강해지려고 할 것이다. 그 연장에서 ‘한국 때리기’도 당분간 유효하다고 볼 것이다. 마침 그 타이밍이 한국의 대선 일정과도 맞물리고 있다. 한․일간 ‘정치전쟁’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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