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법 제126조에 ‘피의사실공표죄’라는 형벌이 있다.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서 알게 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하는 범죄이다. 그렇지만 경찰이나 검찰에서는 고소·고발 또는 인지 수사로 범죄 혐의가 있는 자에 대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다반사였고, 공직자의 피의사실 공표 그 자체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는 범죄에 해당하지만 이로 인해 처벌받은 검사는 단 한명도 없고 경찰관들도 거의 없는 편이다.

사장(死藏)된 제도나 마찬가지였던 피의사실공표죄가 검경·수사권 갈등에서 기인된 것은 아니라할지라도 최근 이슈가 돼 사법부뿐만 아니라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발단은 울산경찰에서 면허 없이 약국에서 약을 지어준 여성을 구속했고, 지난 1월 22일 ‘가짜 약사를 검찰에 송치하면서 보도 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이 건과 관련해 울산지검이 기소전 피의사실을 공표한 것이라며 관련 사건에 참여한 경찰관 2명을 입건해 조사하자 경찰에서는 크게 반발했고, 이 사안이 절차를 거쳐 대검찰청 산하 검찰수사심의위원회에서 지난 22일 최종 결과가 나왔던바 ‘울산지검이 수사 중인 경찰관 피의사실공표 사건에 대해 수사를 계속하라’는 결론이다.

이번 대검 결정은 범죄 의혹이 있으나 기소되지 않은 피의자의 인권을 위해 진일보된 조치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검찰과 경찰에서는 수사 관행을 들어 범법행위인 피의사실을 언론 등에 흘러 피의자 인권을 침해해온 것은 사실이다. 검찰에서도 사법행정권 남용 등 수사하면서 중계방송하듯 피의사실을 외부에 흘린 것도 한 두 번이 아니다. 울산지검 사례의 경우처럼 검찰이 경찰 관계자를 수사하겠지만, 경찰도 검찰을 수사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이번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대검의 수사 결정과 관련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서울남부지검 검사에 대해 피의사실공표 위반 행위를 경찰청에 고발했다. 김 의원은 자신의 자녀 KT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3200여 차례 보도와 181건에 달하는 ‘피의사실 공표’를 했다고 주장한바 이쯤 되면 검찰과 경찰에서 피의사실공표를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사용해왔음이 증명된다. 1953년 형법이 만들어질 때부터 규정됐으나 검찰이 이건으로 한 번도 수사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 이 제도가 활성화되면 검경의 언론플레이는 제재 받을 것이고 범죄 혐의가 확정돼 기소될 때까지 피의자의 인권 침해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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