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올해 하반기에 접어들고 있지만 상반기 기간 동안 특히 정치권 활동의 부침(浮沈)과 우여곡절이 심했다. 임시국회를 열었으나 실적이 거의 없고 정부가 경제 살리기 대책 등으로 지난 4월 25일 국회에 제출한 추경예산안이 6월국회에서 불발됐으니 빈 껍질 정치를 잘 표현해주고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선거법 개정, 검경수사권 조정 등을 둘러싼 여야 몸싸움 등 신속처리안건(패스트 트랙)과 관련된 사안이다. 현역 국회의원 109명이 국회선진화법 위반, 폭력 등 혐의로 피고소·고발됐다는 것인데 처리 과정이 하반기 정국에 뇌관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권의 치열한 갈등은 따지고 보면 기존에 양대 정당이 누려왔던 기득권 유지와 무관하지 아니하다. 특히 내년 4월 15일에 실시될 21대 총선이 9개월이 채 남지 않았으니 선거제도에서 유리한 국면을 맞기 위해 안간 힘을 쓰고 있다. 소수3야당은 양당이 독식하는 현 선거제도는 문제가 있다며 유권자의 표심이 그대로 의석에 반영되는 비례대표 몫의 증가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만들어진 것이 패스트 트랙을 탄 선거법 개정 내용인바, 그렇게 될 경우 민주주의 제도의 대표성이 보장된다고는 하나. 제1야당에서는 탐탁찮게 여기고 있는 상태다.

우리 주변에서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말을 자주 들어왔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비단 선거 때뿐만 아니라 선거, 정당, 정치 등 전반에서 이 용어를 사용해왔던바 맞는 말이다. 국민의 마음이 담긴 한표 한표가 바로 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데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이왕이면 민심 그대로가 국회의석과 연결되는 좋은 선거제도가 만들어지고, 그 룰에 따라 공정한 공명선거가 치러진다면 정치권의 개선과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렇지만 정치인들의 생명줄이나 같은 선거제도가 하루아침에 쉽게 바뀔 리는 없다. 지금까지 수많은 선거를 하면서도 개선되고 좋다고 만든 것이 현행 선거법이다. 총선이 있을 때마다 여야 합의로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소수 야당에서는 거대양당이 적당히 타협한 결과라며 내년 봄 21대 총선 전에 선거제도를 개선하자고 적극 나섰다. 이에 여당이 동조함으로써 우여곡절 끝에 선거제 개편안이 패스트 트랙으로 지정된 것이다.

지난 4월 30일 정개특위를 통과한 내용을 보면, 지역구 의석(253석)에서 27석이 줄어든 대신 비례대표가 47석에서 75석으로 늘어나게 되고, 전국 단위의 정당득표율에 연동률 50%를 적용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통과 시점부터 최대 330일 안에 여야가 논의를 거쳐 본회의에 상정하게 되겠지만 자유한국당에서는 패스트트랙으로 처리된 선거제도 개선에 적극 반대다. 제1야당의 의사가 반영되지 아니한 선거법 개정을 반대한다는 것이니 법안 내용의 개선 여부에 관계없이 선거법은 여야가 합의 처리가 원칙적으로 맞는 일이다.

패스트 트랙으로 처리된 선거법 개편안이 다음 총선에 그대로 적용될 건 아니다.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날로부터 330일 내 여야간 합의되지 못할 경우 본회의에 부의돼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인데, 시기적으로 여야5당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할 시간은 아직도 많다. 그럼에도 한국당이 패스트 트랙 원천무효를 주장하나 국회법의 정당한 절차를 거쳐 처리된 선거제 개편안인 만큼 그 주장대로 무효되기는 싶지 않아 보인다. 당시 선거법개정, 검경수사권 조정 등 패스트 트랙 처리에 대한 국민여론조사에서도 ‘잘했다(51%)’가 ‘잘못했다(34%)’보다 높았다.

이와 관련돼 유의미한 국민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패스트 트랙에 올려진 ‘선거제도 법안은 반드시 여야 합의로’ 처리돼야 한다는 것이 49.7%이다. 선거제 개편안이 제1야당의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의견이 약간 높은 수치다. 그렇지만 선거법 개정안을 적극 반대해온 입장에서 끝내 합의가 되지 아니할 경우에는 현재 계류 중인 “선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다수결에 의해 처리돼야한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대안으로 봐서도 여론조사는 합당하고 합리적이다. 민주주의를 꽃 피우기 위한 선거제도가 여야가 합의해 올해 안으로는 선거제도가 확정돼야한다. 그래야 다음 총선의 준비 기간 등을 감안해서 차질이 없을 것이다.

국민이익이 우선인 국회의 의정 활동에 있어서는 민주적인 방법의 합의가 우선돼야한다. 이번에 새롭게 정개특위를 이끌고 갈 민주당 홍영표 특위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선거법이야말로 여야 간 합의 처리가 가장 바람직하다”는 말을 했다. 그러면서 다음 주부터라도 특위를 가동해 좋은 선거제도가 탄생하는데 역할을 다짐했다. 여야는 남은 기간 동안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제도로서의 좋은 선거법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누가 무어라 해도 ‘좋은 선거제도’는 민심이 의석과 연계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선거법에서 당연히 당리당략이 개입되지 않을 순 없겠으나 기존의 기득권을 버리면 답이 보인다. 과욕하면 잃는 것이 더 많은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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