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중국 건국 50주년을 맞아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왼쪽)이 장쩌민 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1999년 중국 건국 50주년을 맞아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왼쪽)이 장쩌민 주석과 건배하고 있다. (출처: 뉴시스)

[천지일보=이솜 기자] 1989년 6·4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 당시 강경 진압을 주장한 리펑(李鵬) 전 중국 총리가 22일(현지시간) 별세했다. 향년 91세.

중국 관영 신화통신 등 현지 언론은 “고령인 리 전 총리가 중국 베이징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보도했다.

화통신은 고인데 대해 “중국 공산당의 우수한 당원이자 걸출한 무산계급 혁명가, 당과 국가의 탁월한 지도자”라고 평가했다. 고인은 방광암으로 오랜 기간 투병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리 전 총리는 중국 현대사의 명암을 두루 체험한 지도자이자 한·중 수교에 역할을 하는 등 한국과도 관계가 깊다.

1945년 공산당에 가입한 그는 1981년 전력공업부장 등을 거쳐 1988년부터 1998년까지 10년간 중국 총리를 지낸 뒤 다시 2003년까지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 재임하는 등 16년 동안 중국의 권력 2위로 군림했다.

리펑 총리는 국무원 총리로 있던 1989년 텐안먼 시위에 강경 진압을 주장하며 서구국가들의 비판을 받았다. 당시 유혈진압으로 수천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리 전 총리 역시 톈안먼 사태 진압에 대해 상당히 부담을 느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2004년 8월 공산당 기관 잡지인 구시(求是)에 기고한 글에서 톈안먼 사태를 무력진압한 것은 덩샤오핑의 확고한 지원 아래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리 전 총리는 1988년 총리 취임 당시 숱한 난제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덩샤오핑 동지의 격려가 필요했던 겁많은 초보자였다고 당시 자신의 심경을 술회했다.

톈안먼 사태로 실세가 됐고 동시에 비난의 표적이 됐던 그는 톈안먼 사태 30주년을 맞은 올해 세상을 떠났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장남인 리샤오펑 교통운수부 부장, 차녀 리샤오린 실크로드규획연구센터 부이사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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