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양승태, 내달 구속만료 앞둬

法, 구속취소 대신 보석 선택

 

성남 자택에서만 거주해야

사건 관계인 연락도 금지

 

운신의 폭 제한 있지만

MB 보석 조건보다는 여유

 

고민 끝에 보석 받은 양승태

“재판 중이니 달라질 것 없어”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사법농단’ 의혹으로 구속된 양승태(71) 전 대법원장의 조건부 보석을 결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구속만료기간을 며칠 앞두고 내려진 직권 결정이었다. 구속만료로 ‘자유의 몸’으로 풀려나는 걸 막고 운신의 폭을 제한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부(박남천 부장판사)는 22일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해 직권 보석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로써 양 전 대법원장은 올해 1월 24일 구속된 후 179일 만에 풀려나게 된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엔 양 전 대법원장의 1심 구속기간 만료가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다음달 11일 0시에 최장 6개월의 1심 구속기한이 만료된다. 구속 만료까지 단 21일만 남아 있었다.

아직 1심에서 해야 할 심리 과정이 많이 남아 있는 상황이지만, 최근 들어 증인신문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등 양 전 대법원장의 재판 과정은 지지부진했다. 양 전 대법원장이 구속 만료로 풀려날 경우 방대한 양의 기록을 검토하고, 자유롭게 변호인을 접견하는 등 방어권을 펼치는데 훨씬 용이하다. 검찰로선 달갑지 않은 상황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이 때문에 검찰도 앞선 의견서를 통해 “양 전 대법원장을 보석으로 석방하되 증거인멸 우려를 최소화할 수 있는 합리적 보석 조건을 부여하는 것을 반대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 ▲증거인멸 금지 서약 ▲보증금 납입 ▲주거지 제한 ▲해외 출국 제한 ▲가족이나 변호사 외 인물 접촉 금지 등 이명박 전 대통령 보석에 준하는 조건을 재판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 측은 “구속 기간 만료가 얼마 안 남은 상황에서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되는 게 타당하다”고 주장해 왔다.

검찰과 양 전 대법원장 측 의견을 청취한 재판부는 이날 양 전 대법원장의 조건부 보석을 결정했다. 재판부도 구속 취소보다는 제약을 걸 수 있는 보석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재판부는 앞서 3월에도 양 전 대법원장의 보석 청구를 심사했다. 당시 검찰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도 구속 상태로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고령이나 주거가 일정하단 것만으론 보석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펼쳤다. 재판부도 이 같은 주장을 인정해 보석 청구를 기각했다.

당시엔 양 전 대법원장 측이 보석을 원하고 검찰이 원하지 않았지만, 현재는 양 측의 입장이 바뀌면서 재판부가 직권 결정을 내리는 정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재판부는 이날 보석을 허가하면서 ▲주거 제한 ▲사건 관계자와 연락 제한 ▲보증금 3억원 납입 등의 조건을 내걸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던 중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재판부는 우선 양 전 대법원장이 석방 뒤 경기도 성남시 자택에서만 주거해야 한다고 제한했다. 3일 이상 여행하거나 출국할 시 미리 법원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이어 양 전 대법원장 직접 또는 제3자를 통해서라도 재판 관련자들이나 그 친족과 어떤 방법으로도 연락을 주고받아선 안 된다고 했다.

아울러 양 전 대법원장이 보증금 3억원을 납입하도록 조건을 달았다. 다만 배우자나 변호인이 제출하는 보석 보험증권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했다.

또 법원의 소환을 받았을 때 미리 정당한 사유를 신고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정해진 일시·장소에 출석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만약 보석 조건을 어긴다면 보석이 취소되고 보증금이 몰취될 수 있다. 1000만원 이하 과태로나 20일 이내의 감치 처분도 받을 수 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변호인들과 구치소에서 법원이 내건 조건을 따져본 뒤 보석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 양 전 대법원장의 변호인은 “양 전 대법원장이 법원의 보석을 수용하기로 했다”고 이날 오후 밝혔다.

구속 만료로 석방됐다면 보석보다 훨씬 자유롭게 지낼 수 있었지만 결국 운신의 폭이 제한되는 걸 감수하면서 법원의 보석을 받아들였다.

법원의 결정에 불복할 수도 있었지만, 보석을 거부하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는 점에서 전직 사법부 수장인 양 전 대법원장이 이를 감행하기엔 부담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구속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22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보석으로 풀려나고 있다. ⓒ천지일보 2019.7.22

보석 조건이 예상보다 가벼웠던 점도 고려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된 이 전 대통령의 경우 외출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법원의 허가를 받는다면 3일 이내 여행과 출국도 가능하다.

연락 제한 여부도 차이가 크다. 이 전 대통령은 배우자, 직계혈족과 그의 배우자, 변호인 외엔 어떤 연락도 금지됐지만, 양 전 대법원장은 사건 관계인과 그 친족만 피하면 된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이날 오후 5시쯤 서울구치소 앞에 검은 양복 차림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구치소 정문 앞에 선 양 전 대법원장은 보석을 받아들인 이유를 묻는 취재진에 “지금 한창 재판이 진행 중이니까 신병 관계가 어떻게 됐든 제가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다”며 “앞으로 성실하게 재판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제징용 재상고 판결을 지연시킨 의혹이 있다는 질문이 나오자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니 더 이상 이야기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고 답을 피했다. 재판 지연 전략을 쓴다는 비판이 있다는 물음엔 “비켜 주시겠느냐”고 불쾌감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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