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세계사적으로 보면 동북아는 역시 불안정한 곳이다. 근현대사에서 크고 작은 분쟁과 전쟁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이후 점차적으로 안정세를 유지하더니, 다시금 시끄러운 핫플레이스가 되어 가고 있다. 그것을 견인한 것은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었다. 뒤이어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G2로의 부상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일본의 타의 추월을 불허하는 경제적 성과를 부인할 수 없다.

서방에서 보면 극동(far east)으로서 저멀리 멀기만 한 곳이었지만, 시끄러우면서도 동양의 특이한 문화를 간직한 한 중 일 3국을 중심으로 산업화를 이루고 첨단화를 이루면서 이제는 세계사에 있어 구동존이(求同存異)를 하고 있다고 믿고 싶었던 지역이다.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세계 최고의 소재산업 국가인 일본이 한국에게 소재를 제공하고, 그 소재를 바탕으로 한국은 상품을 만들거나 한 단계 레벨업시켜 중국에 제공한다. 중국은 잘 가공하고 임가공화 시켜 최고의 상업적 상품으로 만들어 세계의 소비시장에 내놓는 구조이다. 삼국의 자연스러운 분업체계가 경제적 효용성을 뛰어넘어 정착할 수밖에 없는 상호의존성의 전형적인 지역이 된 것이다. 

입으로 선린우호국이라고 하면서 외교적 언사를 서슴치 않게 남발하고 3국의 협력이 절대적 가치가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3국 중 한중은 수교 이후 비약적으로 관계가 호전돼 상호간 무역과 정치에 있어서도 상대적 파트너쉽을 이루면서 굴곡들을 이겨 냈다. 다만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의 속내를 읽기 시작한 한국의 대중들은 일본에 비해 민족적 감정이 덜했던 중국을 다시 한번 살펴보는 계기가 됐다.

사드사태는 중국이 커지면 어떻게 나올지를 실감한 대 사건이었다.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무작정 중국을 이해하기보다는 중국의 전략적 행동들이 한국에 미치는 정치경제적 파장이 일상에 어떻게 파급되고 영향을 주는지 실감 한 것이다. 체제가 다르기에 서방자유민주국가의 보편적이고, 민주적이면서, 합리적으로 중국을 이해하기는 어렵다고 보았다. 체제의 상이점이 결국 중국과의 간극을 좁히는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고 자조적 해석도 해 보았다. 그런데 금번 일본의 수출 규제문제는 체제도 같은 국가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 특히 한일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보호무역주의를 배격하는 무역제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 간에 발생하고 있으니 당황스러움을 훨씬 뛰어넘고 있다.

동북아 3국 중 그래도 속칭 코드가 잘 맞을 것이고 무엇이든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것이라고 믿었던 선진국가 일본이라는 허상이 서서히 벗겨지고 있다. 안보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미국과 함께 중국의 굴기에 대항하는 삼각체제의 고리가, 중국도 얘기치 않았던 곳에서 끊어지는 실수를 일본은 자행하고 있다. 이때를 기회 삼아 중국에서는 불화수소를 한국에 납품하는 기회를 잡았고, 소재의 고급화에 박차를 가해 세계 최고의 소재를 만들겠다고 티브이와 신문에서 연일 보도 한다. 중국은 오히려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국제사회는 영원한 적도 없고 영원한 이웃도 없다는 말이 생각난다. 오로지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만 살펴보아야만 한다는 것이다. 무역에서는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지난번 사드사태나 금번 일본의 수출규제는 정치적 사건이다. 즉 어떠한 입장과 관점에서 해야 할지를 가치적 측면과 외교적 각도에서 하는 판단들이다. 그러기에 해결 방법이 나왔다. 경제적 기술 자립은 당연히 해야 하고 자강 해야지만, 원인과 결과가 있듯이 보기 싫은 정치 지도자들이 나서서 풀어내야만 한다. 3국간의 문제는 더욱 그렇다. 정치 지도자들의 혜안과 통찰력이 요망된다. 친밀도와 소통을 전제로 하는 외교로 총칼을 막아 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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