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오리족 등에 마오리 전통 문양을 새기고 있는 장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7.19
마오리족 등에 마오리 전통 문양을 새기고 있는 장면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7.19

뉴질랜드에 마오리족 문화가 형성된 시기는 760여년 전인 1250년경이다. 이를 기점으로 마오리 부족들 간에는 자신의 부족 및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잦은 충돌과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그런데 이들을 보호함에 있어 표기할 수 있는 글이나 문서가 없었다. 결국 부족장 및 부족들은 얼굴, 몸, 다리 등에 문신을 새겨 기록하는 방법을 택해야 했다.

탐험가인 아벨 타스만(Abel Tasman, 1603~1659)이 1642년 뉴질랜드를 최초로 발견했다. 이후 유럽인들이 뉴질랜드로 이주하기 시작했는데, 이들은 정착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마오리 전사들의 위협과 그들과의 격렬한 싸움으로 큰 피해와 충격을 입었다. 당시 마오리 전사들은 뉴질랜드 땅을 밟으려고 하는 유럽인들에 대해 반항과 저항심을 갖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마오리 전사들은 이들에게 위협감과 두려움을 주고자 얼굴 전체에 문신을 했다. 마오리 전사들의 섬뜩한 얼굴 문신을 본, 영국의 탐험가이자 항해사였던 제임스 쿡(James Cook, 1728~1779)은 뉴질랜드 육지 탐험을 포기했을 정도였다. 이렇듯 마오리족에게 있어서 문신은 적에게 위협, 공포감을 주는 동시에 마오리족의 비장한 각오, 강렬한 인상, 용맹, 다짐을 나타냈다. 하지만 마오리족 문신이 마오리족의 심성 자체가 악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인류 역사에서 문신의 역사는 5천년이 훨씬 넘는다. 문신의 용도로는 신원파악이 대부분이었다. 고대 로마시대에 노예나 범죄자들에게 문신을 한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그들의 도주를 막기 위함이었다.

문신을 의미하는 ‘타투(tattoo)’라는 말은 폴리네시아어에서 유래한 말이다. 이는 사모아, 통가, 키리바시, 파푸아뉴기니, 피지 등에 사는 폴리네시안 원주민들이 오랜 문신 역사를 갖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문신 문화를 갖게 되었는가. 문신을 함으로써 성인이 된다는 믿음, 질병을 치료하는 주술적 목적 외에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능력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현재도 폴리네시안 원주민 젊은 남녀가 성인이 되기 위해 문신을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얼굴과 목 등에 마오리 전통 문양을 새긴 뉴질랜드 마오리족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7.19
얼굴과 목 등에 마오리 전통 문양을 새긴 뉴질랜드 마오리족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7.19

마오리족에서 연상할 수 있는 것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강렬한 인상, 카리스마적 느낌, 얼굴과 몸에 한 소용돌이 모양의 문신을 생각할 수 있다. 마오리족은 전통적으로 뚜렷한 신분과 여러 부족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의 가족, 부족, 신분, 정체성 등을 표시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었다. 그 수단으로 등장한 것이 문신이었으며, 문신의 주제로는 주로 동물이나 자연을 다뤘다. 가족, 부족, 혈통, 권위에 따라 문신의 위치 및 디자인도 당연히 달랐다. 모계 가족의 이야기와 계보를 나타낼 경우 왼쪽 몸에, 부계 가족의 이야기와 계보를 나타낼 경우에는 오른쪽 몸에 문신을 새겼다. 태양무늬의 문신을 했다면 이는 재물이 많거나 뛰어난 리더를 뜻했으며, 거북이 문신은 장수를 기원하거나 사회적 지위가 높음을 나타냈다. 이처럼 마오리족들은 엄격한 문신 문화를 갖고 있었기에 문신을 하는 행위를 대단히 신성하게 여겼다. 그럼에도 사실 마오리족에게 있어서도 문신을 새기는 일은 꽤 고통스러웠다. 문신을 완성하기까지 족히 몇 년씩 걸리는 데다가 끌이나 바늘로 피부를 찌를 때 통증을 줄이는 방법이나 마취하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신을 새기기 위한 도구로는 무엇을 사용했을까. 새 또는 동물의 뼛조각을 사용해 작고 뾰족한 바늘을 만들었다. 또 앨버트로스(albatross)라는 큰 새의 뼈를 갈아 만든 ‘우히(Uhi)’라는 끌을 사용하기도 했다. 문신에 색깔을 넣기 위해 사용한 염료로는 동충하초, 재 등이 있었다.

마오리족에게 문신은 결코 멋을 내기 위한 행위가 아니었다. 남성은 ‘성인으로의 적응 능력’을, 여성은 ‘수태(受胎)의 능력과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문신을 얼굴에 한다면 어떤 이미지를 줄 수 있을까. 대단히 혐오스럽게 보일 것이다. 하지만 마오리족은 얼굴 문신을 대단히 소중하고 자랑스럽게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몸보다 얼굴에 문신을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얼굴 문신이 더욱 품위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얼굴에 새긴 문신의 모양과 정교함을 보고 귀족, 일반 평민, 하층 계급의 노예를 쉽게 구분할 수 있었다. 귀족일수록, 지위가 높을수록 문신의 모양이 아주 정교한 반면, 노예 등 사회적 지위가 낮을수록 문신의 모양이 비교적 간단했다. 따라서 계급이 높은 마오리 부족장과 전사들의 문신은 복잡했으며, 많은 노예를 거느리고 여러 명의 부인을 소유할 수 있는 특권도 갖고 있었다. 정교한 문신은 사람의 손으로 새겼다고 단정하기 힘들 정도로 대단히 섬세했다. 마오리족 전사들에게 있어서 얼굴 문신은 그들을 더욱 용감하게 만든 원천이기도 했다. 이와 반면에 마오리 여성의 문신은 남성에 비해 정교하지는 않았지만, 입술의 선을 그리거나 턱 또는 뺨에 여러 개의 선을 그려 우아함과 매력을 더했다.
 

뉴질랜드의 문신 숍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7.19
뉴질랜드의 문신 숍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19.7.19

마오리족 문신을 마오리어로 ‘모코(moko)’라 부른다. 마오리족에게 있어서 ‘모코’ 문신은 자부심의 상징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물이었다. 또 그들이 지닌 문신의 모양은 지적 재산으로 여겼을 정도로 귀중한 가치를 지녔다. 문신을 새기는 예술가들은 사회적으로 높은 신분을 가질 수 있었으며 전문가로서도 대우를 받았다. 이들 문신예술가를 가리켜 마오리어로 ‘토훙아 타 모코(Tohunga tā moko)’라고 불렀다. ‘모코’를 새길 때 마오리들은 가족과 친지들의 지지와 동의를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모코’에 문신한 사람의 조상, 부족,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마오리 전사들의 경우 전쟁에서 쌓은 공적과 사건을 문신으로 기록해 두기도 했다. 이런 면에서 ‘모코’는 예술적·역사적 가치를 동시에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뉴질랜드는 문신을 하기에 좋은 나라들 중 세계 2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문신이 개성을 나타내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고 있는 추세에 따라 문신관광국으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기 시작한 셈이다. 오늘날 마오리족의 문신 ‘모코’는 문신 자체의 미적 아름다움, 개성을 나타내는 것 외에 조상, 가족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메신저인 셈이다. 그럼에도 문신 문화에 대한 국제 사회의 이해도는 아직 부족하다.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주며 섬뜩하다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이다. 이를 대변하듯 문신으로 인한 오해가 2103년 일본에서 일어났다. 입술과 턱에 문신을 한 마오리족 여성이 2013년 9월 일본을 방문했는데 홋카이도 온천시설에 입장하려다 제지를 당한 것이다.

문신은 더 이상 ‘일탈’ ‘두려움’ ‘위협’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개성을 표현함은 물론, 대중문화로 확장돼 가고 있다. 향후 문신문화는 마오리족 문신 ‘모코’처럼 인류의 보편적 가치관, 신념, 삶의 나침반 등 일상생활 문화의 한 축을 구성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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