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역대 초유의 사태인 한일 경제갈등이 마치 마주보고 달리는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기관차의 모습을 연상케한다. 양국 간 극도의 긴장감이 조성되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느낌이다. 서로 맞불을 지르며 정면대결을 불사하는 양국의 대처방식을 보며 양국의 국기스포츠인 씨름과 스모의 차이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해보게 됐다. 지난 해 기습적인 ‘선제공격’처럼 일제시대 강제징용에 대한 피해자 배상을 결정한 한국 대법원 판결과 수개월 지난 뒤 은밀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방안을 고심하다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원천적인 반도체 핵심부품의 대한수출규제를 밀어붙인 일본의 맞대응 전략이 양국 씨름과 스모의 대표적인 속성을 보는 듯하기 때문이다.

스포츠는 오랜 문화와 역사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국의 전통 스포츠인 씨름과 스모는 양국민의 기질을 잘 드러내고 양국의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종목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씨름과 스모는 경기운영과 방식 등에서 마치 흡사한 것 같으면서도 큰 차이를 보인다. 오랜 역사속에서 친선과 갈등, 반목과 대립을 보인 양국 간의 모습처럼 말이다.

수년전 요절한 한국전통미술 평론가 오주석의 대표적인 저서 ‘한국의 美 특강’에는 단원 김홍도의 씨름 그림에 대한 명쾌한 해설이 실려 있다. 단오날 장터에서 두 씨름꾼이 샅바를 잡고 경기를 하는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는 구경꾼들의 모습을 표현한 김홍도의 그림을 빼어난 역사감각과 미술 전문성으로 잘 설명했다. 씨름이 양반, 평민들로부터 두루 사랑받는 스포츠임을 강조했다.

매 대회마다 천하장사가 있고 승자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씨름의 대회방식은 역성혁명으로 왕권이 바뀌고 5년마다 정권이 교체되며 ‘무소불위’의 대통령이 통치하는 한국의 정치적 문화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미국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가 ‘일본의 신성한 기원에 대한 신화’라고 묘사한 일본 스모는 여러 대회의 성적을 고려하여 최고 영예인 ‘요꼬즈나’를 정함으로써 여러 명의 챔피언이 탄생한다. 천황이란 상징적인 통치방식을 두고 실제로는 수상이 자주 바뀌는 내각으로 운영하는 일본 정치스타일과 많이 닮았다.

경기방법도 씨름과 스모는 차이가 많다. 씨름은 별도의 의식이 없이 먼저 샅바잡기에 들어가고 힘과 기술이 좋은 선수가 상대를 모래판에 냅다 내리 꽂으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스모는 선수들이 경기를 하기 전 각자 좌우의 양다리를 서로 번갈아 들어올렸다가 힘껏 내리디디는 등의 독특한 동작을 하면서 상대의 기를 꺾는 일종의 탐색전을 갖는다. 마치 지난 해 한국의 대법원 판결이후 한국의 경제적 취약점을 철저히 분석했다가 회심의 역습카드를 내민 일본 아베 정부의 방식은 스모의 탐색전을 느끼게 해준다.

씨름과 스모는 대륙국가 한국과 섬나라 일본이 역사성과 전통성을 살려 만들어낸 스포츠종목이다. 중국과 러시아 등 초강대국을 등에 짊어지고 살아야 하는 한국과 섬나라에서 고고하게 생존한 일본의 역사가 씨름과 스모라는 양국의 전통적인 스포츠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지난 1980~90년대 프로씨름으로 전성기를 누렸다가 지금은 시들해진 한국의 씨름과 아베 수상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스모 경기장으로 초대할 정도로 일본 국민이 열광하는 스모의 모습을 보면서 아쉬움과 허전함을 느끼는 것은 씨름을 전통문화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이라면 당연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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