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3일 인사동 갤러리M에서 만난 김연화 화가가 자신이 손수 그린 자작나무 그림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김연화 화가
밤잠 줄이며 그림·글쓰기에 몰두
다시 잡은 붓에 열정 담아 꿈 그리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있습니다.//나는 아무 걱정도 없이/ 가을속의 별들을 다 헤일듯합니다.// 가슴속에 하나 둘 색여지는 별을 이제 다 못헤는 것은/쉬이 아츰이 오는 까닭이오,/내일밤이 남은 까닭이오,/아직 나의 청춘이 다하지 않은 까닭입니다.//별하나에 추억과/별하나에 사랑과/별하나에 쓸쓸함과/별하나에 동경과//별하나에 시와/별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생략)….

김연화 작가가 지금까지 그린 작품을 보노라면 한 편의 동화 같으면서 심오하다. 나이프 흔적과 바이올렛이 섞인 푸른색이 화폭에 담겨 감수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하늘을 향해 곧게 뻗은 하얀 자작나무가 띄엄띄엄 서 있어 고적하기까지 하다.

김 작가는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모티브로 색을 채웠다. 캔버스에는 시상(詩想)뿐 아니라 작가의 꿈과 유년 시절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작가는 어릴 적에 도시가 아닌 시골에서 태어나 별이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원 없이 보고 자랐다. 더불어 자연과 함께 살았다.

어린 시절과 자연에 대한 향수는 곧 붓끝에서 재현됐다. 특히 김 작가는 이름 앞에 ‘자작나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만큼 자작나무에 대한 애정이 깊다.

“친구가 미국에서 자작나무 사진을 보내왔는데 나무가 예뻤습니다. 강원도 화천에서 실제로 본 나무는 역시나 아름다웠습니다. 자작나무에서 나무껍데기가 벗겨져요. 그 깨끗함에 반한 거죠. ‘사람은 잘 보이려고 치장하지만 나무는 제 스스로 옷을 벗어서 본래 모습을 보여 주네’라는 작은 깨달음까지 얻었습니다.”

김 작가는 러시아 횡단을 꿈꾸고 있다. 바이칼호 주변으로 펼쳐진 자작나무 숲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에게 나무는 단순히 자연 조물 중 하나가 아니다. 바로 주변 사람들이다.

일상생활에서 공기가 없으면 사람뿐 아니라 동식물이 살 수 없듯, 김 작가 역시 그림과 늘 호흡하고 있다. 다시 붓을 잡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그에게 그림은 분신과도 같다.

김 작가는 전공이 미술이었으나 결혼 후 가부장적인 남편의 권유에 살림과 자녀 양육에만 집중해 그림을 그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집안에만 있다 보니 새장에 갇힌 것처럼 답답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니 협심증이 찾아왔고 이즈음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자니 자신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과 회의가 찾아왔다.

심신을 치유하기 위해 그는 하루에 짬을 내 화실을 찾았다. 처음에는 남이 그린 그림을 감상하면서 화실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게 전부였다. 방문횟수가 잦아지면서 주변의 권유로 붓을 잡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려서 전시해야겠다는 꿈은 전혀 꾸지 않았습니다. 단지 화폭에 제가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니까 점차 몸이 가뿐해지고 활력을 되찾으니 좋았던 거죠. 집에서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등 그림이 절 살린 셈입니다.”

김 작가는 글 쓰는 데에도 일가견이 있다. 정식으로 등단하지 않았지만 시화전과 동인회지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 게다가 요즘 시낭송도 배우고 있다. 그 중심에는 그림이 우선이지만 다양한 예술 재능을 이전처럼 숨기지 않고 유감없이 발휘한다. 예술 영역을 시나브로 넓혀 가면서 다양한 미술 소재를 찾는다.

최근에 작가가 음악인들을 자주 만나다 보니 캔버스에 악기들이 담기기 시작했다. 지난 4일까지 인사동 갤러리 라메르에서 열린 제3회 새아침전에 김 작가는 가느다란 자작나무와 별, 나무, 통기타가 어우러진 작품을 선보였다.

“이제 음악을 소재로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려 합니다. 물론 자작나무는 같이 가야할 친구입니다.”

10여 년이 지나도 아직까지 남편이 그림 그리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겨 김 작가는 밤 느지막할 때 붓을 잡는다. 하지만 그마저도 행복하단다. 더욱이 딸 역시 디자인을 전공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친구가 생겼기 때문이다.

인터뷰 당일, 그는 딸이 만든 가방을 들고 나왔다. 엄마를 생각해서 인지 푸른색 계열로 염색한 듯했다. 김 작가를 만난 곳엔 자신의 작품 외에도 딸이 손수 만든 스카프도 전시돼 있었다. 엄마는 화폭, 딸은 천을 물들인 모습이 모전여전(母傳女傳)이다.

김 작가는 잠을 줄이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쓸 정도로 예술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붓을 다시 잡았을 때부터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늘 한결같다.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그림은 저의 소명이자 곧 생명이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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