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유영선 기자] “(일본 대사관 앞에) 왜 나올까요? 저기서 좋은 소식이 나올까 해서입니다. 한 번도 내다보지도 않지만 혹시나 회개하고 좋은 소식 전해줄까 해서 나오죠.”

지난 5일 위안부 피해자인 길원옥(83) 할머니가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앞에서 신묘년 첫 수요시위에서 쏟아낸 간곡한 호소의 목소리다.

젊은 사람조차 견디기 어려운 혹한 날씨에도 할머니는 이날 꿋꿋이 자리를 지켰다. 살아 있을 때 일본에게 짓밟힌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기 위한 할머니의 몸부림은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길 할머니는 “일본은 할머니들 마음에 더는 상처주지 말고 한 사람이라도 더 살아 있을 때 사죄를 하든지 배상을 해야 한다”고 외쳤다.

최근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잇따른 별세로 이날 시위는 더욱 숙연하면서도 결연했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공동대표는 “이제 할머니들이 국내 70분과 해외 8분 총 78분이 살아계신다”며 “대부분 병원에 계시거나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부닥쳐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일과 지난달 31일 위안부 피해자인 이기선(88)·정윤홍(91) 할머니가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더욱이 안타까운 점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낸 쌈짓돈으로 시작한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이 답보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정대협에 따르면 2004년부터 모금활동을 시작한 박물관은 2009년 3월 8일, 여성의 날에 서대문 충정로2가 서대문형무소 내에 터를 잡았지만 광복회와 순국선열유족회 등의 반발로 건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위안부 문제가 부끄럽고 수치스런 역사이기에 독립운동가의 혼이 담긴 서대문형무소의 터 안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게 반발하는 단체들의 견해다.

하지만 ‘자신은 부끄러운 존재’로 인식해온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19년간 한곳에서 ‘역사의 피해자’라며 자신의 명예와 인권의 회복을 위해 당당히 외치고 있다.

공식사죄와 법적배상을 거부하고 있는 일본정부와 19년이 넘도록 매주 수요일 문제의 해결을 촉구하는 할머니들의 호소를 외면하는 한국정부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역사의 피해자’를 위해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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