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엉망진창인 나라정치가 문제이긴 해도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현재의 경제 상황이다. 당장 먹고 살 일도 걱정되지만 미래 먹거리가 늘어나지 않는 게 더 문제다. 주변에서 자주 듣는 총체적 경제난국에 대한 우려 목소리다. 고용 증진을 위한 정부정책으로 일자리가 다소 늘어났다고는 하나 대부분이 노인일자리 위주이고 청년 일자리가 없다는 푸념이다. 그 말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길에 나선 청년들이 임시적이고 힘든 일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구하기 위해 오랫동안 구직활동하고 준비한다는 것인데, 대부분이 공직이나 대기업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좋은 환경에서 근무하기를 원하는 것은 비단 젊은 사람들뿐만이 아니다. 경제상황이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전전긍긍하면서 직장이 폐쇄되면 하루아침에 일터를 잃는 자리보다는 안정된 직장을 원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러다보니 대기업과 공직사회 취업을 준비 중인 젊은이들은 당연하고 또 일부 취업자들이 정년까지 근무 가능한 안정된 직장 갈아타기를 원하고 있지만 고용 사정이 점점 악화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는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려운 일이다.

이 같이 좋은 직장 구하기에만 몰두하고 있는 현실에 많은 사람들의 걱정이 따른다. 자료를 보니 취준생의 약 40%가 공무원시험 준비생이다. 요즘 청년들이 정년까지 근무가 철저히 보장되는 안정된 직장인 공공분야 취업을 원하는 것은 비단 급여·복지후생 뿐만의 사정이 아니다. 재직 기간, 주말 휴무 등 여러 요인들을 종합 고려한 것이니만큼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그렇지만 공무원시험에서 선발 인원이 한정돼 있으니 매년 합격자보다 불합격자가 훨씬 더 많아 공시생이 취업 준비기간 동안 겪게 되는 정신적·경제적 손실은 막대하다.

관련해 생각나는 게 있다. 예전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통했던 시대였다. 사법고시가 있던 시절의 이야기로 누구든 시험에 합격하고 나면 거의가 판사, 검사로 임용이 됐고, 아니면 변호사가 됐다. 하루아침에 신분이 격상됐으니 사법고시의 열풍이 대단했던바 심지어 10년 이상을 사법시험 준비에만 매달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제도가 개선돼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제도가 정착됐지만 로스쿨을 나와도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지 않으면 현직에 임용되지 않으니 이 제도 또한 청년들에게 정신적·경제적 고통을 주기는 마찬가지다.

로스쿨 졸업생들이 변호사시험에 5회 응시할 수 있다. 이는 사법시험의 폐해를 극복하고 로스쿨 도입 취지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인바 이로 인해 희비쌍곡선이 벌어지기도 한다. 주어진 다섯 번의 응시 기회 내에 합격하지 않으면 변호사시험 응시 자격마저 상실되니 이른바 ‘오탈자(五脫者)’이다. 이러한 오탈자가 생각보다는 많은데, 2009~2011년 입학한 로스쿨 1~3기 졸업생 중에서 변시 오탈자는 441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변시 합격률이 50%가 되지 않아 앞으로 오탈자 수는 계속 늘어날 전망이니 로스쿨 도입 10년의 어두운 그림자이다.

청년들이 공무원과 대기업을 선호하고, 힘들게 로스쿨을 나와도 오탈자가 되는 격랑의 시절이다. 경제 침체와 경쟁사회가 낳은 어두운 그림자, 무직 청년 40%가 공무원 되기를 원하며 합격될 때까지 도전을 일삼는 ‘잠재적 공시생’이 된 한국의 현실이 과연 바람직한 현상일까. 공직 시험 합격과 대기업 취업이 청년들의 바람이겠지만 한국사회가 발전되기 위해서는 다원화된 산업군 육성을 전제로 하는 기업의 창조적 활동이 활발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 정책이 뒷받침돼야하나 그렇지 못하다. 정부의 경제정책은 결과물이 좋지 않은 상태여도 정책 고수 일변도이고, 각종 규제로 인해 한국기업들은 공격적인 직접 투자를 할 엄두를 하지 않고 있다.

그런 상황이 계속 이어져 왔으니 몇 년 전에 한국에 와서 현장을 두루 살펴본 후 “한국의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고 지적한 미국 경영계의 거두 짐 로저스 회장의 진단이 적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공무원학원이 즐비한 서울 노량진에서 공시생 열풍 현장을 목격하고, 또 규제 덩어리가 산업현장의 숨을 옥죄고 있는 기업들을 돌아다녀본 후 한국경제에 관해 종합 평가했다. 공시 열풍 현장과 투자가 위축된 기업 현장을 보고서 “중국 러시아 등 어느 나라에 가더라도 10대들의 꿈이 공무원인 곳은 없다”고 했던바 의미심장한 말이 아닐 수 없다.

젊은이들이 공직이나 대기업 취업을 일생의 목표로 삼고 직장인들도 고용 개선을 바라지만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 기술시대에 직업에 대한 인식이 크게 변화되고 있다. 경제선진국 미국에서는 ‘긱 경제(gig economy)’가 보편화됐다. 근로자가 한 직장에 매이지 않고, 시시때때로 이동하는 경제 현상으로 유연한 고용을 기반으로 해 어느 분야의 직업이든 경험과 숙련공들이 할 수 있어 쉽게 말하면 프리랜서다. 평생 동안 안정된 직장을 추구하는 한국 청년들과 직장인들이 전문성을 바탕으로 도전해볼 미래의 먹거리 ‘긱 경제’에도 눈을 돌려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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