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고교 수행평가를 축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고교 교사의 청원 글이 게재돼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교육청의 지침대로 모든 과목이 수행평가를 학기 중 몇 차에 걸쳐 실시한다. 학생들이 과다한 수행평가 준비로 6월은 거의 반 혼수상태로 지낸다. 장기간 잠을 자지 못해 건강에도 이상 신호가 오는 학생들이 많으며, 수업 시간 집중을 요구하기도 어렵다. 입시와 진학을 위해서는 기초학력이 중요한데, 배운 내용을 학습할 시간은 매우 적다. 학생들이 기초학력을 잘 갖출 수 있는 공교육이 될 수 있도록 수행평가를 대폭 축소해 주시길 간곡히 청원한다”라고 호소했다.

학생들도 “수행평가 진짜 힘들다. 점수 잘 받기 위한 경쟁이 심해 PPT를 본인이 만들기보다 사설업체나 부모의 도움을 받아 퀄리티가 너무 높다. 모둠 수업 과제는 한 두 명이 도맡아 준비를 하고 나머지는 들러리만 서는데 동일한 점수를 받으니 아이들 불만이 많다. 일주일에 수행 과제가 3~4개는 기본이고 중간, 기말고사 시험 준비는 또 따로 해야 한다. 우리는 언제 쉴 수 있는 건지 교육청이 원망스럽다”라고 한다.

한 학부모는 “고2인데 시험 2주전까지 수행과제 준비하느라 하루 3~4시간 밖에 못 잔다. 몇 시간의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과제가 아닌 고난이도 수행과제를 내니 아이들이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수행에 쓴다. 과목마다 연극, 드라마 대본 쓰기, 뮤직비디오 만들기, 클래식 20곡의 원어 제목 외우기,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하기, 소설 창작하기 등 학생이 감당하기 힘든 과제로 수행평가를 하니 새벽까지 준비하는 날이 허다하다. 무엇을 위한 수행평가인지 정말 지옥이 따로 없다. 동아리 활동에 주말에는 봉사활동까지 하며 안 쓰러지고 학교를 다니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라고 울분을 토로한다.

수행평가의 도입 취지는 학습 과정에서 학생의 성취도를 높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초창기에는 총점의 10~20% 정도 배점으로 수업 중에 평가를 하니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많았다. 지금은 학종 전형의 핵심인 학생부에 기록되면서 ‘평가 부담’이 커졌다. 수업시간 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과제를 주고 평가하는 경우도 드물다. 수행과제를 집에서 해오라고 하자, 시험공부 때문에 수행과제 할 시간이 부족한 아이들은 부모가 사설업체를 통해 수행과제를 만들어 내기까지 한다.

2019년도 서울 교육청 지침은 서술과 논술평가, 수행평가가 전체 평가비율의 50%를 넘도록 하고 있다. 무조건적인 암기보다는 사고력을 이끌어내는 수업을 유도하기 위해 수행평가 비중을 높여야 한다는 게 교육청의 논리다. 마치 수능 위주 정시가 문제 잘 푸는 학생에게 유리해, 불공정의 시비가 많은 학종과 수시를 확대하는 이유와 동일하다. 주입식 교육을 지양하고 창의성 교육을 위해 수행평가와 논술 비중을 늘린다고 아이들의 창의성이 늘어나지 않는다. 창의력은 논술 많이 하고 수행평가 과제 많이 한다고 길러지지 않는다. 창의성이 발휘되도록 수행평가 과제를 내는 것도 한계가 있다. 오히려 잘 자고 잘 쉬는 여유로운 삶에서 나온다. 네이버, 구글 같은 IT 회사가 직원들의 창의성을 끌어내기 위해 자율적으로 출퇴근하고 마음껏 쉬도록 사내 휴식공간을 공원처럼 꾸미는 것에서 배워야 한다.

수행평가 점수가 교사 재량권이라 아이들이 교사들에게 잘 보여야 점수가 제대로 나온다. 자칫 밉보이기라도 하면 수행점수를 형편없이 낮게 준다. 필자도 수행평가를 채점 했었지만 학생의 평소 행실에 따라 점수가 좌지우지 되지 않고 100% 객관적 채점은 불가능하다. 이런 수행평가의 불공정성을 이유로 축소를 청원하는데 교육청은 학생과 학부모, 교사의 의견은 무시하고 확대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수행평가 확대는 곧 수시, 학종의 부작용과 연결 돼 금수저에게 유리하고 사교육 업체의 배만 불리는 정책이다.

더 이상 아이들을 괴롭히는 정책을 늘리지 말아야 한다. 입시지옥도 모자라 수행지옥, 학종지옥, 논술지옥까지 아이들을 너무 괴롭힌다. 중학생들마저 수행평가, 시험, 봉사활동, 동아리 활동 등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다. 행복하게 학교를 다니도록 제도를 단순화해야 한다. 지나치게 수행, 서술형 위주로 나가면 오히려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부작용이 생긴다. 걷지도 못하는데 뛰기를 가르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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