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동탁을 집으로 초대한 사도 왕윤은 초선을 불러내었다. 초선의 자태에 혼이 빠져 버린 동탁은 그녀가 춤을 마치자 가까이 불러 곁에 앉혔다. 왕윤이 여포한테처럼 자신의 딸이라고 하지 않고 동탁에게는 가기(歌妓)라고 하자 동탁은 초선의 흰 손을 덥석 잡고 노래를 한 곡조 청했다.

초선은 옥 같이 흰 손에 장단 치는 단판을 잡고 소리를 낮추어 가만히 한 곡조 불렀다. 그녀의 노래 소리는 옥이 바스러지고 앵도알이 흩어지는 듯했다. 방안은 화창한 봄바람이 물결쳐 일어났다.

- 앵도알 같은 새빨간 입술 주(朱) 빛으로 점을 찍었네. 높고 낮은 두 줄기 노래 쌍구슬이 되어 봄을 뿜는다. 향기로운 혀끝은 강철 같은 칼을 뱉어서.

나라 망치는 간사한 난신 적자 베려 하네. -

초선은 노래를 마치자 고개를 숙여 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꼭꼭 눌렀다.

“수고했다. 춤도 일품이지만 노래 또한 명창이로구나.”

동탁은 초선의 등을 가볍게 두드려 주었다.

“내가 술 한 잔을 줄 테니 잔을 잡아라.”

“황공무지하옵니다.”

초선은 상긋 웃고 고개를 숙인 후에 섬섬옥수로 백옥 술잔을 잡았다. 동탁은 친히 술병을 잡아 호박빛 동정 춘주(春酒)를 옥잔에 가득 부어 주었다.

“아이구 너무 많사옵니다. 취하면 어찌합니까?”

“하하하. 나하고 합환주를 같이 하자꾸나.”

초선은 앵도같은 입술에 백옥 술잔을 대어 입을 오그려 한 모금씩 마시다가 상긋 웃으며 동탁의 입술에 옥잔을 대어 주었다. 호색한 동탁이었다. 초선이 마시던 술잔을 자신의 입에 대어 주자 동탁은 입이 함지박처럼 벌어졌다.

“정말 합환주를 주려느냐?”

“소녀는 과해서 다 못 마십니다. 합환은 나중에 일이고 동정으로 소녀 대신 마셔 주십시오.”

술잔을 입에 댄 동탁의 시커먼 윗수염이 너무 길어서 술잔에 거치적거렸다. 초선은 한 손으로 백옥배를 들어 동탁의 입에 대어 주고 한 손으로는 동탁의 수염을 제쳐 주었다. 초선의 따스하고 향기로운 손가락이 동탁의 코에 스쳤다. 그의 코가 향기에 취해 간지러웠다. 그는 영리한 초선의 등을 한 번 어루만지며 주옥 동정춘을 들이켰다.

“네 마시던 술을 마시니 향기가 잔에 가득하구나. 합환주라서 그런지 술맛이 더 좋다.”

“아직 합환주는 아니옵니다. 혼인 약속을 하지 않았습니다.”

초선은 여포를 후리듯 동탁에게 다정한 추파를 보냈다.

“아아, 고것 참, 네 나이가 몇 살이냐?”

“소녀의 나이는 금년에 열여섯이옵니다.”

“하하, 고것 참, 귀엽기도 하다. 바로 선녀로구나.”

그때 왕윤이 동탁에게 슬며시 말을 던졌다.

“태사 어른께 이 애를 헌상하겠습니다. 마음에 드신다면 바치겠습니다.”

“하하. 이 귀여운 선녀를 나에게 주려하시오? 웬 이거 참, 고맙소. 이 은혜를 무엇으로 갚나?”

“이 애가 태사를 모시기만 한다면 복록은 무궁무진할 것입니다.”

“그래, 그래, 데려다가 잘 기르지. 고맙소.”

“그럼, 초선이를 아주 지금 승상부로 먼저 보내겠습니다.”

“그래, 그래, 아주 좋은 생각이오.”

동탁의 입이 또 한 번 찢어지게 벌어졌다.

“그럼 초선이는 안에 들어가서 새 옷을 갈아입고 좋은 수레를 타고 승상부로 먼저 들어가거라.”

초선은 왕윤이 말하는 대로 동탁에게 잠깐 목례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초선이 호화로운 수레를 타고 동탁의 승상부로 향하자 동탁도 왕 사도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자아, 오늘은 참으로 유쾌하게 놀았소이다. 더구나 미녀 초선을 나한테 주시니 참으로 감사하오.”

왕윤도 예를 차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탁이 의장을 차려 돌아가니 왕윤은 동탁을 승상부까지 데려다 주고 한 번 은근한 작별을 한 뒤 말머리를 돌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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